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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바욘(BAYON) 사원의 부조

기자명 법보신문
  • 사회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우리에겐 침략과 정복의 역사가 없다. 피침과 식민지의 얼얼한 역사만이 있다. 무뇌아적 사고가 전부라면 무관한 일이나 그렇지 않기에 가끔 분한 생각이 든다. 지금 비록 남루한 일상 속에 묻혀 지내지만 앙코르의 후예들은 우리와 같지 않을 것이다.



벽면은 생활사-전쟁사 박물관



우리 역사에서 남을 향해 칼과 총을 뽑아든 적이 있긴 있다. 고려말 충렬왕(재위1274-1308) 원년, 원나라의 강요로 일본 정벌을 위해 동로군을 파견하였으나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고 패퇴했으며 동왕 7년에도 김방경 등이 원나라 병사들과 함께 제2차 일본 정벌에 나섰으나 일본인들이 ‘신의 바람(神風:가미가제)’이라고 부르는 태풍으로 실패하였다. 가깝게는 베트남전 참전이 남을 향해 총칼을 겨눈 경우이나 자발적 의지와는 거리가 있다.

바욘사원의 벽면은 생활사박물관이자 전쟁박물관이다. 역사의 기록은 종이에 문자로만 하는 것이 아니로구나. 바욘을 둘러싼 모든 벽은 양각부조가 조각된 회랑이다.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앙코르 제국의 생활과 관심사를 파노라마로 볼 수 있다. 벽화가 아닌 부조로, 평면이 아닌 입체로, 인공 채색이 아닌 세월의 채색으로 보는 풍경이 신비하고 경이롭다. 외부 회랑의 동서남북 한 변이 100여미터가 넘는 벽면을 빙 돌아가며 울퉁불퉁하게 양각으로 역사가 새겨져 있다.

부조들은 한 벽면에 두 세 개 층으로 구분되어 조각되어 있다. 원근을 나타내기 위한 장치이다. 하층의 부조는 근경, 상층은 원경을 새겼다. 눈을 지긋이 감고 당시로 돌아가면 광활한 정경이 입체적으로 보일 법도 하다.



닭싸움-투전판 등 생생 묘사



내부 회랑에는 주로 신화의 내용을 새겨 놓았다. 외부 회랑에는 일상생활의 모습이다. 시장 풍경, 고기잡이, 닭싸움, 투전판, 산파의 도움을 받으며 아이를 낳는 여인 등 당시 삶의 모습이 생생하게 보인다. 돌을 쪼는 석공도 잠시 피곤을 잊고 피식피식 웃으며 망치질을 했을 것이다. 나 역시 더위도 잊고 피시식 웃으며 회랑을 돈다.

구경 중에서 최상은 뭐니뭐니해도 싸움구경이다. 직접 싸우자니 다칠까 겁난다. 그래서 꾀많은 자들은 싸움을 붙여놓고 구경한다. 현대에 와서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은 싸움에 대한 대리만족이다. 싸움의 가장 직접적, 감정적 표출이 전쟁이고 이성적 형태는 스포츠이다.






거칠고 투박하나 ‘장중함’ 갖춰



외부 남회랑 부조는 1177년 똔레삽 호수에서 있었던 크메르와 참족(베트남) 간의 해상 전투를 파노라마 형태로 묘사한다. 배에 기어오르는 참족들, 연꽃을 뒤집어 놓은 듯한 모양의 모자를 쓴 적들을 물에 밀어 넣는다. 물에는 악어가 입을 벌리고 있다. 창, 활, 방패로 무장한 전사들, 배로 상륙한 참족들, 크메르족과의 지상전투, 코끼리를 타고 지휘하는 장군들. 코끼리를 탄 지휘관 중 여러 개의 파라솔을 쓰고 있는 이가 자야바르만7세이다. 이 전투의 승자이자 사원의 주인이다. 앙코르제국 영광의 최정점을 이룬 영웅이다.

그 영광이 지금의 캄보디아에 재현되길 기원한다. 침략과 약탈로 만드는 영광이 아니라 지혜와 자비로 황색인의 문화를 꽃피우는 동반자가 되길 기원한다. 부조 감상에는 느린 걸음이 필요하다. 약간의 예비지식을 가지고 그것들을 바라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넉넉하게 하루를 잡아 바욘을 돌아보는 것이 좋다.

바욘은 앙코르왓이 지어진지 100년 후에 지어졌다. 앙코르의 부조가 매끄러운 세련미를 갖추었다면 바욘의 부조는 거칠고 투박하나 장중한 질감을 보여준다.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이 보여주는 성격 대비와 닮았달까.

꼭대기에 올라가야 방문한 보람을 느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계단과 통로를 지나 거대한 관음상의 호위를 받으며 바욘의 정수리 속으로 다가간다. 공간이 마련된 곳마다 불상이 있다. 그러나 온전한 불상은 드물다. 그런 중에 몇몇 곳에는 노비구니 스님들이 앉아서 향공양을 권한다. 체계적인 사원이라기보다 저마다 자리를 잡고 예불을 드리고 있는 것 같다. 모두 선한 인상이다. 피비린내의 질곡을 지나온 이들 같지 않다.

중앙탑 꼭대기에 올라가니 거기에도 법당이 있다. 숨을 고르고 신발을 벗고 들어가 향을 피웠다. 중앙탑을 중심으로 빙 둘러선 관세음보살의 외호를 받으며 나는 잠시 장수가 된 듯 우뚝 섰다. 탑의 꼭대기는 하늘을 향해 뚫려 있다. 합장을 풀고 아득히 뚫린 허공을 응시한다. 우주의 중심에 선 느낌이다. 꼼짝 않고 그 자리에서 굳어지고 싶다. 이런 것이 법열일까?

거대 장엄미에 대한 감탄에도 휴식이 필요한 것 같다. 앙코르 톰에 비하면 앙증맞게 작지만 수반 위에 올려놓은 연꽃을 만나러 다음 여정인 니악 뽀안으로 간다.

글·사진=이우상〈소설가·대진대 문창과 겸임교수〉( asdfsang@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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