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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조경기행[33]-기능을 존중한 공간의 구성 수락산 흥국사

기자명 홍광표

격조있는 공간의 미학 구현

철이 바뀌어 산과 들에 가을 색이 완연해지면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픈 생각이 드는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것도 올해처럼 유난히 단풍빛깔이 고운 때에는 그러한 마음이 더욱 절실해지니 이것도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가 아닐지 모르겠다.

단풍이 좋은 곳이야 설악산이다 내장산이다 하여 이름난 명소들이 많기는 하나 굳이 멀리 나들이를 하지 않아도 서울근교에는 단풍철에 가을 기분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좋은 산들이 많이 있다. 흥국사가 위치해 있는 수락산도 가을이 오면 한번쯤 찾아볼 만한 좋은 산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산이 높다고 해서 반드시 단풍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사실상 단풍이야 단풍나무, 붉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등 낙엽활엽수가 많은 산이 단풍이 좋은 법이니 서울 근교라고 해서 단풍이 좋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흥국사는 조선조 선조 임금이 왕위에 오른 1568년에 그의 생부되는 덕흥대원군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지은 원찰이다. 이 절은 원래 흥덕사(興德寺)라는 편액을 걸었다 하나 인조 4년(1626)에 절 이름을 흥국사(興國寺)로 고쳐짓게 된다.

이 절 역시 우리 땅에 있는 대부분의 다른 절들과 마찬가지로 임진, 병자 양 난에 거의 모든 건물이 소실되기도 하고 화재로 전소되는 운명을 겪기도 하였으나 그때마다 인연있는 사람들의 정성으로 원래의 모습을 간직해온 역사를 지니고 있다. 서울부근에 있는 원찰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흥국사 역시 능침사찰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공간구성기법이 적용된 사찰이다.

특히 흥국사는 공간의 전체적인 구조라든가 중정의 형태 그리고 현재 요사채로 쓰여지고 있는 큰방채의 건물형식이 비교적 원형에 가깝게 유지되고 있어 조선시대 원찰의 형식을 살필 수 있는 훌륭한 텍스트가 되고 있다.

흥국사의 공간구성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사찰의 중심부를 이루는 대웅보전과 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큰방채 사이에서 형성되는 배치상의 시각적 맥락성이라고 하겠다.

즉, 흥국사에서는 사찰의 주불전인 대웅보전 전면에 큰방채를 길게 가로놓음으로써 절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바로 대웅보전을 볼 수 없도록 하였다. 진입과정에서 시각적인 긴장감을 형성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큰방채를 돌아서 들어가야만 비로소 나타나게 되는 대웅보전! 바로 이러한 시각적 전개과정이 흥국사에서 발견되는 진입과정상의 특수장치라고 하겠다. 여기에서 시각조절기능을 가지는 큰방은 일종의 염불당으로 요사채와는 별도로 조성되는 경우가 많은데, 절에서는 이곳에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크고 작은 법회나 행사를 치르곤 한다. 이 큰방이야말로 흥국사에서 원찰의 형식을 가장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건물이다.

이 건물은 좌우대칭의 ‘工’자형 평면을 가지고 있으며, 진입하는 쪽 양단에 장주석을 이용하여 건물을 받치도록 만든 누각구조로 되어있다. 이러한 큰방건물의 일반적인 공통점은 지어진 연대가 조선시대 들어와서야 출현하게 된다는 사실과 주거용 건물이라고 할 수 있는 요사채와는 별도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한 건물 내에 불상을 봉안하여 예불공간으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규모면에서 사찰내의 다른 전각들보다 크고 사찰의 배치에 있어서 주불전 전방의 누각건물 위치에 지어짐으로써 중심공간이 폐쇄성을 갖도록 만든다. “형태가 기능을 따른다”는 말이 있듯이 기능을 존중하여 공간을 짜 맞추는 작업이야말로 고도의 공간미학이 아니겠는가!



홍광표/동국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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