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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의와 바른 행위

기자명 정승석
  • 불서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불교의 정(正)은 ‘치우치지 않음’(中)을 의미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는 명분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표방했던 작전 명령의 이름이 애초에는 ‘무한 정의’(Infinite Justice)였다. 이 무한 정의는 자신들이 임의로 규정한 적에게 무력을 무한정으로 행사할 수 있음을 선포하는 것이었으므로, 여기서는 무력이 정의이며 엄포, 협박, 오만, 독선 등이 정의의 친족이거나 동맹군이다. 정의가 이렇게 자의적으로 적용되고 왜곡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새삼스럽게 정의에 대해 회의하고 망연자실하기도 한다.



자의적으로 왜곡되기도



그러나 정의 때문에 사람들이 회의하고 망연자실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인도의 고전의 말씀이 오히려 참신하게 와 닿는다.

“정의가 쇠퇴할 때 세속의 법은 항상 힘센 자와 사악한 자에 의해 악용되기 마련이다.”

“영원한 진리여야 할 정의가 사람들끼리 정한 바른 행위와 혼동될 때, 그 정의는 항상 소멸한다. 바로 이 사실 때문에, 현자와 성자와 위인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은 망연자실하게 된다.”

이에 따르면, 무력 행사를 정의의 실현이라고 선포했던 발상에서는 정의가 이미 소멸해 버린 셈이다. 그 발상은 특정한 사람들끼리 무력 행사를 바른 행위라고 확신함으로써 무력을 정의와 동일시한 데서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의에 대한 회의는 무엇이 바른 행위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바른 행위의 준거가 정의에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그 바른 행위는 관습에 의해 결정된다. 관습은 특정한 사람들끼리 묵시적으로 동의해 온 행위의 규범이다.

그런데 이 집단적 규범은 정의라고 오해되기 쉬우며, 또 사람들은 흔히 그런 규범을 정의와 동일시한다. 이것은 사람들끼리 정한 바른 행위와 혼동되는 정의이다.



정의는 규범, 관습 초월해야



그러나 진정한 정의는 사회적 규범이나 관습을 초월한 영원한 진리여야 한다는 믿음도 있다. 진정한 정의는 관습에 의한 바른 행위와는 혼동되지 않는 영원한 진리로서의 정의이다. 이 정의는 종교에 따라 다른 관념을 함축하면서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다. 기독교의 정의가 로고스(하나님의 말씀)이고 힌두교의 정의가 다르마(법)라면, 불교의 정의는 중도이다. 그리고 진정한 정의에 부합하는 행위가 이상적인 바른 행위이다.

이 같은 바른 행위는 세간에서 통용되는 선악의 관념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궁극적 정의는 깨달음에



불교에서 생각하는 정의의 특징은 획일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에서 말하는 정(正)은 항상 중(中)을 의미한다. 중은 중간이 아니라 ‘치우치지 않음’을 의미한다. 불교에서 가르치는 바른 행위는 편향되지 않고 편협하지 않은 행위이다. 이것은 관습적으로 바른 행위가 아니라, ‘항상 신뢰할 수 있는’(聖) 바른 행위이다. 8정도의 원래 명칭이 8성도(聖道)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의를 따르는 것이 바른 행위이며, 바른 행위는 정의를 실현한다. 정의와 바른 행위는 상통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정의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불교의 궁극적인 정의는 부처님의 깨달음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쉽게 택할 수 있는 길은 바른 행위를 체질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이 바른 행위인지를 먼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동국대 인도철학과 교수



정승석 교수는 동국대 인도철학과(학·석·박사)를 졸업하고 상키야 및 요가 철학, 아비달마 불교를 전공했다. 주요 연구실적으로 『인도의 이원론과 불교』 『무아와 윤회의 양립문제』 『불교 원어의 음역 표기 조사 연구』 『무아 윤회의 反불교적 예증』 『윤회관에서 微細身 개념의 전개』 『인도 신화의 고행주의적 전개』등이 있고 현재 추진중인 연구과제로 『인도철학에서 자아 개념의 전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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