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 자연은 둘이 아니다
인간 - 자연은 둘이 아니다
  • 법보신문
  • 승인 2004.08.1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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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환경보존 결의대회가 있었다는 보도를 접했다. 그 중에서 특히 눈에 뜨이는 것이 인간과 자연이 둘이 아닌 하나라는 불교 가르침에서 출발한 ‘죽어 가는 나무를 위한 천도재’ 의식이다.

내가 늦게나마 불교에 매료된 점이 바로 이 ‘둘이 아닌 하나 (不二)’라는 불교의 가르침이다. 숲 속에 들어가 보라. 그리고 거기서 혼자 한참 있으면 나무나 꽃과 하나가 된다.

그들과 생명체로서의 교감이나 대화가 오가며 나무 가지 하나 꺾기가 조심스러워진다. 하물며 우리 인간 끼리야 생사를 걸 일이 뭐가 있겠느냐. 남과 북이 한 뿌리니 총 뿌리를 겨눌 일도 마땅히 없어야 할 것이다.

아랍과 이스라엘이 둘이 아닌 하나 (사실 성경에서는 그들의 조상이 한 뿌리에서 나왔다고 쓰여있다)니 내가 나하고 싸울 일이 없다. 그런데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하고 밤 낮 싸우고 있으니 이 현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데 이런 생사를 가르는 싸움이 쉽게 간단히 없어지지 않을 거라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근본에서 시작해야 되지 않을까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람의 생각, 가치관과 믿음 자체를 바꿔놓거나 새로 출발하는 것이 늦더라도 이것이야말로 확실한 순서일 것 같다.



죽어가는 나무를 위한 천도재



사람은 어차피 자기 핏속에 돌고 있는 원형질이나 세포 구석구석에 뱀 혀처럼 날름거리는 탐진치가 뿌리 깊이 박혀 있다.

그것은 자기 사랑이다.

자기에게 방해가 된다면 그 상대를 없애고서라도 자기 생존에 집착하는 게 생명체다. 그러니 그 무찔러야 될 상대가 남이 아니고 바로 나라는 인식을 핏속, 뼛속 깊이 깊이, 세포 구석구석 심어 주는 일이 필요하다. 바로 불교의 불이 사상에 대한 실천이다.

물론 이것은 단순히 불교의 세를 넓히기 위해서고 아니고 생명체끼리 참 평화의 틀을 영원히 구축하기 위한 지혜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타종교의 자발적 협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이란 어디에 있는가



일전에 어떤 모임에서 국내 유수한 물리학자의 강연이 생각난다.

강연은 ‘생명이란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가’ 라는 궁극적 의문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지수화풍(地水火風)이 서로 어우러져야만 생명체가 살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의 강연내용에 따르면 우주의 나이를 150억년, 지구의 나이를 35억년으로 보는데 앞으로도 지구는 50억년은 더 계속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지구 환경이 오염되고 지구 몸에 이상한 노폐물이 쌓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35억년 동안 없었던 일이 편리와 진보를 위해 벌이는 인간의 끝없는 자연 파괴와 발전 지향적 가치관과 그 탐욕적 노력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하버드대의 윌슨 교수의 추산에 의하면 놀랍게도 1년에 2만 7천 여종의 생물종이 멸종하고 있고 만약 이대로 가면 천 년 이내에 총 2천만 종 내외로 추산되는 지구상의 생물종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자연은 반드시 보존해야 된다



자연과 생명은 영원한 것이다. 이것은 후손들의 것을 지금 살고 있는 우리가 앞당겨 가불해 쓰고 있다. 아무도 파괴하고 오염시킬 권리는 없고 보존할 의무만 있을 뿐이다.

둘 아닌 하나라는 그 사상과 실천만이 구원의 메시지요 가치일 것이다.
발우 공양을 해 보라. 밥 한 톨이라도 남겨 환경을 오염시키는가. 가까운 데에서 길은 열린다.

박준영 (시인/SBS 전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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