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꽃에게 배운다

산엔 아직도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건만 도심 근교의 백목련은 피고 졌다. 벚꽃도 피었다가 꽃비로 졌다. 결제를 끝낸 수좌들의 걸음마냥 화려한 외출로 다가왔다가 돌아간 그들이었다. 무(無)가 없는 것이 아님을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님을 침묵으로 보여준 그들이었다. 참으로 청정한 법신들이었다.

어느 선승은 꽃이 피어 있는 좁은 산길을 누군가 올까하여 짐짓 쓸지 않았다고 했다. 수행의 한가로움에서 느껴본 정갈한 고독이었겠지만 허리 굽혀 바라본 자성(自成)이었으리라.

꽃이 법성(法性)이라는 생각을 한다. 때가 오면 피고, 때가 되면 말없이 지는 침묵의 언어를 가지고 위안과 정감을, 평화와 사색을 가르쳐 준다. 진리의 가르침이 항상 있는 것임을 계절의 우체부 마냥 가르치는 것이 꽃이 아닐까 여겨지는 것이다.

하늘과 사람세계에서 볼 수 없는 꽃은 마음에 핀 꽃이라고 경전은 전하고 있다. 마음에 핀 꽃은 도(道)나 믿음, 신심이라고 말해진다. 신심은 부처의 성품이고, 모든 부처는 신심으로부터 눈을 뜨며, 상주(常住)의 이치를 믿는 것을 신심이라고 한다. 신심으로 꽃을 피운다 함은 덕성을 넓혀나가고, 선행과 음덕을 쌓으며 스스로가 짓는 복이 아닐까.

경내에서 마주친 보살님들의 손가락들이 빨갛게 노랗게 물들었다. 연등을 만들며 배어난 물감색이었으나 나에겐 꽃으로 보였다. 양손으로 피우는 꽃을 잡게 된 그들의 손, 마음으로 피우는 꽃은 저마다의 심성을 순화시킨 것이고, 본성을 찾게 하리라는 생각이 미소를 짓게 한다.

계절의 화목한 기운이 만물을 자라게 하고 있다. 회복기의 환자처럼 햇빛속에 앉아 느끼는 나른한 포만감과 상쾌함이 바람으로 지나간다. 좋은 인연 만났으니 우리가 성실하게 구하기만 한다면, 신심의 안과 밖을 제대로 얻기만 한다면, 삶은 그만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이제 산과 들에는 이름모를 꽃들이 기막히도록 정겹게 다가올 것이다. 경쟁하지 않고, 뽐내지 않는 그들의 존재방식이 사람들의 생활과 인생에 배어 들면 좋으리라. 그리되면 자연에 철저히 순응하고, 묵묵히 제 삶을 살아가는 맑은 보람이 사람들의 가슴에 심어지리라.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