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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호스피스' 개척 혜도 스님

기자명 이학종
  • 사회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죽음 지켜보며 많은 것을 깨닫습니다"

영가를 천도하는 의식도 중요하지만

생사가 둘이 아님을 믿는 불자들에게

의연하게 죽음을 맞도록 도움줘야




세상만사 돌아가는 양태는 본디 결과에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결실을 이루기까지 기울인 과정은 잘 드러나지 않거니와 애써 찾아보려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 과정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또 아무리 의미 있는 것이라 해도 묻혀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과정은 결실만큼이나 소중한 가치를 갖는다. 화려하게 타오르는 모닥불을 만끽하기 위해 땔나무를 구하고 그럴듯한 화덕을 갖추는 일이 더 중요한 것처럼.

중앙승가대학에서 사회복지를 가르치고 있는 혜도(惠棹) 스님은, 이를테면 화려한 불길이라기보다는 그 불길을 뿜어내는 땔나무와 같은 분이다. 스님은 누구도 관심 있게 지켜보지 않았던 호스피스 분야를 미련스러울 만큼이나 고집스럽게 천착했다. 따라서 호스피스라는 용어조차 생경했던 시절에 스님이 결심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을까를 짐작하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제 출가 본사가 석남사입니다. 선(禪)을 중시하는 가풍이 엄격한 터라 강원에 가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강원도 어른 스님 몰래 선방에 다닌다며 다녀야 했을 정도니까요."

스님은 강원을 졸업한 후 중앙승가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입학을 할 때도 소동을 겪어야 했다. 당시 사회복지라는 것은 마치 외도처럼 취급당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왠지 복지를 공부하겠다는 생각이 갈수록 굳어지더라고 스님은 회상한다.

어른 스님들이 반대하는 길을 선택한 대가(代價)는 생각보다 혹독했다. 호스피스 공부를 더 하기 위해 학교 졸업 후 빈손으로 일본 유학을 떠날 때, 빌린 돈을 불과 몇 년 전에야 다 갚았을 정도로 힘겨운 시절을 살아왔다. 용기가 없어 학비를 '보태달라'는 말을 차마 못하고 '빌려달라'고 했던 것이 훗날 큰 부담으로 남은 것이다. 그러나, 스님에겐 이 기간 동안에 겪은 갖은 고생이 보약처럼 소중한 경험으로 남아 있다. 호스피스 캐어(care)야 말로 스님들이 앞장서야할 분야라는 확신을 가진 것, 그리고 최근 들어 차츰 불교계의 관심이 높아가고 있는 것을 지켜보며 자신의 고생이 헛된 것만은 아니었음을 체감할 때면 작은 보람을 느낀다.

혜도 스님이 결정적으로 호스피스에 관심을 가진 것은 승가대학 재학시절 느꼈던 한 '작은 깨달음'이 동기가 됐다.

"말기 암으로 고생을 하는 한 신도가 있었습니다. 그가 죽음을 앞두고 그렇게 고통스러워 할 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그때 비로소 일이란 뜻만 가지고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구나, 거기에 해당하는 지식과 기술이 필요한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지요."

알다시피, 죽음은 인생의 총결산이다. 죽는 모습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질을 그대로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처님 10대 명호 중에도 '선서(善逝)'가 있는 것처럼 삶을 정리하는 마지막 시기는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기간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동안 불교는 정작 임종을 앞둔 중생들에게는 무관심해왔다. 죽음을 맞은 후 상가에 찾아가 염불을 하며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것 이상으로 불자로서 가치관을 가지고 의연하고도 편안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임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불교에는 호스피스 캐어와 관련된 수많은 가르침들이 가득 있는데도.

혜도 스님은 호스피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많이 달라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멀었다고 말한다. 호스피스가 타인의 일이 아닌 나의 문제라는 것을 모든 국민이 인식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스님은 호스피스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충분한 홍보와 전문적인 교육, 그리고 내일처럼 여기는 적극적인 봉사라는 3단계가 필요하다고 제시한다. 불교계의 경우는 아직 홍보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스님의 판단이다.

"원래 불교는 호스피스와 깊은 관련이 있는 종교입니다. 늘 행하고 있는 것인데, 이것을 현대적인 틀로 적용하지 못했을 뿐이지요. 다시 말하지만 세상을 떠난 후 염불을 해서 영가를 천도하는 의식도 중요하지만 생과 사가 둘이 아님을 믿는 불자답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더 중요하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호스피스 캐어야말로 모든 종교의 성직자들이 반드시 실천해야할 복지분야라고 믿습니다."

스님은 이제는 중앙승가대학이나 동국대 불교대학원 등 종단교육기관과 본·말사 주지연수 등 승려재교육 과정에 호스피스 과목을 필수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톨릭 중심으로 되어 있는 우리나라 호스피스 봉사에 불교계도 적극 관심을 기울일 시기가 되었다는, 아니 늦었다는 것이다. 스님은 종단에서 호스피스 캐어 교육을 통해 봉사자와 전문가를 양성하고 모임을 구성하여 정보를 교환하고, 나아가 불교호스피스협회 같은 기구를 설립해 독자적인 자격증을 발급하는 등의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노인복지와 호스피스에 관련한 논문을 수 없이 발표한 현직 교수이자 독보적 권위를 인정받는 전문가이긴 하지만 스님의 호스피스 관련 연구 열정에는 커트라인이 없다. 얼마 전에도 일본을 방문해 말기 암 환자의 통증을 줄여주는 인형 만들기(수작업) 프로그램을 공부하고 돌아왔다. 근기 높은 불자들이야 참선삼매에 들어 통증을 극복하기도 하고, 또 진언이나 염불을 하며 통증을 이겨내지만 그렇지 못한 보통 사람들에게는 손을 놀리며 정신을 집중하는 만들기 프로그램이 큰 효과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스님은 지금까지 약 60명의 임종을 지켜보았다. 그들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깨닫고 배우고 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내가 한 10년 동안 용맹정진을 위해 깊은 산사의 선방으로 갔다고 생각하오. 10년 후쯤이면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지 않겠소."라며 눈물을 흘리는 아내를 격려하던 노 거사, "스님, 극락에 가면 안 아파요?" 라며 고통을 참던 8살 난 어린이, "남아 있는 시간동안 남편을 위해 기도하고 싶으니 함께 기도하며 도와주세요."라며 눈물을 애써 감추던 30대 주부 등. 참으로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던 이들을 생각하면 이 일을 선택한 것에 더 없이 큰 보람을 느낀다.

혜도 스님은 절이 없다. 도반 스님의 절에 방 한 칸 얻어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요즘은 10년 전부터 원장으로 재직 중인 안암 어린이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지만 생각은 늘 불교 호스피스를 활성화시킬 방안을 찾는데 닿아있다.

스님은 '하화중생(下化衆生)'을 이번 생의 목표로 정했다. 또 여건이 허락되면 큰 병원이 가까운 교외에 '임종의 집'을 짓고 말기 암 환자나 만성질환자, 그리고 노인들에게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삶의 의욕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혜도 스님, 스님은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보다도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땔나무에서 느낄수 있는 감동을 전해주는 선지식이다.



이학종 기자
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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