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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三寶 정신을 깨닫고 귀의하면

기자명 이미령

어떤 유혹과 환란서도 벗어난다

“물 좀 주십시오.”
아난 존자는 우물가의 한 여인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습니다.
여인은 슬쩍 아난 존자를 훔쳐본 뒤에 답하였습니다.
“저는 천하디 천한 계급입니다. 저와 같은 계급의 사람이 어찌 스님같은 분에게 물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낮은 계급의 사람은 자기보다 높은 사람과 마주 서서도 안되고 바라보아도 안되며 제 손으로 물건을 집어서 줄 수도 없었던 것이 엄격한 인도 계급사회의 법칙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세속의 그런 잣대를 벗어버린 출가자요, 한없이 인자한 아난 존자가 아닙니까?

“저는 물이 먹고 싶습니다. 물을 주십시오.”
차분하고 담담한 어조로 아난 존자는 거듭 물을 청하였고 그런 태도에 여인은 그만 자신도 모르게 물을 떠서 존자의 발과 손을 적셔 드리고 마실 물을 올렸습니다. 아난 존자야 목마름을 풀었으니 그걸로 끝이었겠지만 사단은 여인에게 벌어졌습니다.

언제나 세상사람들의 멸시와 냉대만을 받아오던 천한 계급의 여인이 난생 처음으로 자신을 하나의 인간으로 대해주며 다가오는 남성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스님에게 예를 갖추느라 손과 발을 제 손으로 적셔드리지 않았습니까? 아난 존자의 품위 있는 행동과 따뜻한 눈길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만 여인은 그만 자리에 눕고 말았습니다.

“어머니, 저는 아난 존자와 결혼하고 싶습니다. 아니면 죽어버릴 거예요.”
일의 전모를 안 어머니는 기가 막혔지만 딸의 상태가 예사롭지 않음을 눈치채고는 온갖 술수를 부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남자의 마음을 뒤흔들고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주문을 외워서 아난 존자가 제 발로 딸의 방으로 찾아오기를 기원하였던 것이지요.

한편 아난 존자는 이런 사정도 모른 채 자꾸만 정신이 아득해지는게 이상하였습니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전날 우물가 그 여인의 방에 자신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이미 애욕의 주술에 걸려 헤어나지 못하는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죽기살기로 매달리는 여인의 육탄공세에 정작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아난 존자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그렇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매달리는 여인의 간절함 그 곱절의 마음으로 스승이신 부처님을 불렀습니다.
‘아, 부처님… 왜 저를 구해주지 않으십니까?’

아난 존자의 기도는 부처님에게 닿았습니다. 이내 부처님도 주문을 외우셨습니다. 그 주문의 힘으로 인해 여인의 방에는 검은 회오리 바람이 일어나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고 방안의 그릇들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깨졌습니다. 애욕의 주술은 그 앞에서 맥을 못추었고 놀란 여인도 아난 존자에게서 떨어졌습니다.(좬비나야좭)

부처님의 주문이 궁금하십니까? 그것은 바로 “삼보의 정신을 깨닫고 그에 귀의하나니, 아난이여, 그 여인의 집에서 풀려나라”라는 게송이었습니다.

애욕에 휘감길 때 자신의 무능력함을 깨닫고 다급하게 스승님을 기억해낸 아난 존자의 ‘지혜로움’에 찬탄을 보냅니다. 관세음보살님을 불러야 하는 마음가짐도 그와 같아야 할 것입니다.

마침 세간에는 ‘스와핑’이라는 단어가 떠돌고 있습니다. 부부가 함께 외도를 즐긴다는 뜻이지요. 재가불자가 지켜야 할 불사음계가 휴지조각처럼 내동댕이쳐지는 세태입니다. 세상에서 아름다운 사랑이라 불릴 수 있는 관계는 지금의 배우자와 나누는 사랑입니다. 만일 부당하고 은밀한 유혹이 덮쳐 온다면 올바르지 못함을 빨리 깨닫고 아난 존자처럼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죽기살기로 관세음보살님을 떠올려야 하겠습니다.


이미령/동국역경원 역경위원

lmrcitt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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