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냄-원망 뒤엔 번뇌가 따르며

기자명 이미령

분노는 선정의 하늘까지 태운다

아무리 옷을 잘 차려입었지만 거울에 비친 모습이 추하게 보이십니까?

편안한 침대에 누웠지만 잠을 이루지 못하십니까?

이성을 잃어 선과 악이 뒤바뀌어 보이며 끝내 스스로에게 해가 되는 일을 저질렀습니까?

어렵게 모은 재산을 잃고 송사에 말려들었습니까?

끝없는 노력으로 얻은 명성을 잃었습니까? 친구와 일가 친척들이 당신을 피하고 있습니까?
혹시 당신에게 이런 징후가 보인다면 그것은 바로 당신의 마음이 분노의 검은 회오리에 휘감겼음을 의미합니다.(『중아함 원가경』)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 나라 사람만이 가지고 있다는 병, 바로 화병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화 즉 분노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무거운 병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독 한국 사람의 화가 공식적인 병명으로 기록에 올랐다는 사실은 그만큼 우리 나라 사람이 화라고 하는 번뇌를 현명하게 다스리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간 화병은 가정주부들에게 주로 일어난 병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가족들 뒷바라지에 자신을 온통 희생하기만 한 결과 중년에 접어들어서는 그렇게 살아온 일생이 분하고 억울하고 원통하고 끝내는 한이 맺혀 몸의 병으로까지 전개되고만 여성들이 그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스트레스’라는 세련된 외래어로 마음속의 풀리지 않는 번민을 표현하고 있지만 이제 화나 스트레스는 한 개인의 사소한 짜증을 넘어서 사회문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홧김에’ 저지른 사건들이 신문지면을 연일 채우고 있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는 일 아닙니까? 사실 화를 풀어버리는 가장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화가 치밀어 오를 때마다 마음에 품고 있지 말고 외부로 확 풀어버리는 것입니다.

노래방에 가서 한 시간 꼬박 큰 소리로 노래부르고 나면 쌓인 화가 다 풀어지는 경우를 느끼셨을 겁니다. 신용카드 들고 나가서 평소에는 사지 못하였던 물건들을 한아름 사들이는 것도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에 들어갑니다. 또는 자신을 화나게 하는 대상 앞에 나서서 용감하게 조목조목 따지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후환이 두려워서 그렇게는 못합니다. 그렇다면 못쓰는 가전제품을 부수거나 인형에게 망치질을 하면서 화를 풀게 하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 곳에 가서 몽둥이나 망치를 들고 내가 쓰러질 때까지 분풀이를 하면 됩니다.

하지만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몸부림치듯 마음속의 화를 풀고 난 뒤에 돌아서서 나올 때는 참 허전합니다. 분풀이를 해댄 뒤에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어째 상큼하지도 가뿐하지도 않습니다. 밥을 먹고 난 뒤에 숭늉으로 입가심하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든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보면 ‘아, 산다는 게 뭘까?’ ‘왜 나에게는 이런 일만 찾아오지?’ ‘다 그때 뿐이야’라는 마음이 솔솔 생겨나게 됩니다. 결국 현실적으로 문제는 하나도 풀리지 않았는데 자기 혼자만 북치고 장구치면서 ‘화났네’, ‘풀렸네’를 반복하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 깊은 자괴감…

“원수에게 성내고 원망하는 건 스스로 마음을 볶는 것일 뿐”(『보살본연경』)이라는 부처님 말씀이 틀리지 않습니다. 분노는 이렇게 사람을 망쳐갑니다. 탐욕의 번뇌는 한순간 마약 같은 쾌락이라도 주었건만 분노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 하나를 망가뜨립니다.

“치열한 번뇌에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있다. 이 세 가지 중에서도 분노의 번뇌가 가장 심하니 그 불은 욕계로부터 첫째 선정의 하늘까지 태운다.”『출요경』


이미령/동국역경원 역경위원
lmrcitta@hanmail.net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