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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슬하의 견공들

기자명 김형규
절이 견공(犬公)들로 넘치고 있다. 도심의 거대한 사찰에서 인적 드문 산골의 조그만 암자까지. 인연 따라 흘러 들어온 잡견(雜犬)에서 제법 족보가 있는 진돗개와 삽살개, 그리고 시중에 널리 퍼진 애완용에서 종류를 알 수 없는 외국산 견공들까지. 마치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20여 마리를 한꺼번에 기르는 사찰도 있으니 절 집의 개 사랑은 그야말로 ‘애지중지(?)’. 견공들 가운데는 수행자의 의젓한 풍모로 남다른 사랑과 존경을 받는 개들도 있어 절 집의 여담거리를 풍요롭게 하고 있다.

<사진설명>회룡사 스님들이 무척 아끼는 개.


#절에서 견공을 기르게 된 까닭

예부터 절 집에서는 고양이는 길러도 개는 키우지 않았다. 시끄러운 개소리가 수행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 견공을 기르는 절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제는 개를 기르지 않는 절을 찾아 보기 힘들 정도. 이처럼 견공들이 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인은 각박한 사회적인 현상 때문이다.

90년대 무렵에 이교도들에 의한 사찰 방화가 잇따르고 성보를 노린 절도범이 판을 치면서 대비책으로 개를 기르기 시작했는데 절 집에 견공들이 대거 등장한 것도 이 무렵이다. 특히 스님의 숫자가 줄어들면서 대중 스님이 없는 산 속 조그만 암자는 견공들이 절을 지키는 사천왕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오대산 월정사인 경우 95년 이교도에 의한 훼불을 경험한 이후 견공들을 경비원(?)으로 채용했는데 현재는 새끼를 포함해 20여 마리가 살고 있다.


#가지각색 인연이야기

견공들이 절에 들어온 사연은 다양하다. 신도들이 이사를 가거나, 너무 커버려 집에서 기르기 힘든 개를 맡겨놓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최근에는 버려진 애완견이 들어오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다.

서울 강남 봉은사는 한 마리의 예쁘장한 애완견을 기르고 있다. 버림받은 개로 한때 주인과 헤어져 도심거리를 방황했다. 그러나 현재는 신도들의 귀염을 독차지하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수원 봉녕사의 귀염둥이 봉돌이도 한 때는 동네 쓰레기통을 뒤지며 하루를 연명하던 천덕꾸러기였다. 그러나 스님들 손에 들려 봉녕사로 들어 온 이후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보성 대원사의 백구 ‘이리와’는 종교 화합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인근의 성당에서 종교화합의 의미로 이리와를 선물했는데 절에서는 이리와가 새끼를 낳을 경우 인근 교회로 보낼 예정이다.


#절 집 견공들도 채식을 할까

절 집의 견공들은 대부분 채식을 한다. 스님들의 공양물을 그대로 나눠 먹으니 당연한 일. 그래서 절 집 견공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된장국에 말은 밥이다. 채식이 너무나 몸에 배서인지 어떤 개들은 간식으로 심심찮게 풀을 뜯어먹어 화제에 오르기도 한다. 장난기 있는 신도들이 쥐포나 소시지, 고기 등으로 유혹해 보기는 하지만 개의 본성(?)도 잊고 이것마저도 단호하게 거부하는 견공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새끼를 가졌을 경우 채식으로는 영양분이 부족할 수 있기 때문에 북어 머리를 사다가 푹 고아주기도 한다.

<사진설명>옥잡화를 먹는 강화 정수사 개. 온수진 씨 사진 제공.


#절 집 견공들은 뭔가 특별하다

사찰 견공들의 가장 큰 특징은 무욕과 무심함이다. 그리고 의젓하고 순하다. 그래서 아무에게나 잘 따르며 잘 짖지도 않는다. 어떤 견공들은 너무나 무심한 나머지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눈길 한번 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빛 바랜 사찰 기둥을 배경으로 늘어지게 한 숨 자는 경우나 애써 주는 음식을 마다하고 절 뒤로 느긋하게 사라지는 견공을 보는 것도 절 집에서는 익숙한 풍경이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이미 세속적 흥취를 모두 버린 듯 한 모습에서 ‘불성’을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불성은 있나

있다. 특히 절 집의 견공들은 불성의 존재 유무를 떠나 보살로 불리는 경우도 있다.

전북 순창 장덕사 백구 혜정(慧靜). 보살이라 불리는 ‘견공’이다. 혜정 견공의 소임은 매일 절 뒤 열반상과 지장보살상으로 불자들을 안내하는 일이다. 지난 2년 간 단 하루도 거른 적이 없다. 훈련을 받은 적도 없다. 절 밥을 먹더니 어느 날 갑자기 밥값을 하기 위해 시작했다는 것이 주지 청암 스님의 설명이다.

혜정은 안내를 위해 하루에 10번 이상 계단을 오르내리다 탈진하기도 했다. 이런 혜정의 불심이 화제가 돼 공중파 방송을 타면서 최근에는 바다 건너 일본인들도 혜정을 보기 위해 몰려들고 있다.

<사진설명>장덕사 백구 혜정.

경주 골굴사의 ‘동아 보살’도 그 마음 씀씀이가 예사롭지 않다. 하루도 빠짐없이 예불을 보는 견공으로 이름이 높다. 새벽 4시만 되면 법당 안에 들어가 방석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스님들과 함께 끝까지 예불을 본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동아의 부모’가 죽고 난 다음부터 이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 데 이미 햇수로만 10년째. 동아는 고기보다 나물을 좋아해 신도들 사이에서는 어엿한 ‘사중의 대중’으로 대접받고 있다.


#불교와 견공의 전통적 관계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다(無).”

최고의 공안집 좬무문관(無門關)좭에서 보이는 무(無)자 화두의 내용이다. 깨달음으로 가는 반야용선 화두에 개가 등장했으니, 견공의 입장에서는 과분한 인연일 터. 우리나라에서 불교와 확실한 인연을 맺은 개는 삽살개다.

중국에서 지장보살로 추앙 받고 있는 신라왕자 김교각 스님이 삽살개를 데리고 중국 안휘성 구화산으로 들어가 성불한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또 그 곳에는 지금도 삽살개를 타고 있는 지장보살상이 남아있다.

생활 속에서 견공들은 불교에 큰 빚을 지고 있다. 개를 식용하는 관습에도 불구하고 개고기를 금기시하는 풍속이 남아있는 것은 불교 설화의 영향 때문이다.

목련존자의 어머니가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을 때 목련존자는 부처님께 간청해 어머니를 개로 환생하게 했다. 그리고 우란분재를 베풀어 어머니의 넋을 위로했는데 결국 개가 된 어머니가 극락정토에 태어났다고 한다.

또 절에 갈 때 개고기를 먹으면 호환을 당한다는 이야기가 불자들을 중심으로 넓게 회자되면서 개고기를 금기시하는 풍속이 생겼는데 호환을 당할 염려가 없는 오늘날에도 불자들에게 개고기는 금식의 대상이다.


김형규 기자 kimh@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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