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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으로 걸러진 말

기자명 법상 스님
입은 성냄과 번뇌의 근원

침묵은 수행자의 영원한 벗


이렇게 조용한 산사에 살면서도 많은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가지게 된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다 보니 말이 많아질 때가 종종 있다. 하지 않을 말을 하게 된다거나, 말이 헛나오거나, 후회가 되는 말들을 많이 하고 돌아오는 길은 마음 한 구석이 싸한 것이 허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런 일이 있고부터는 사람들을 만날 일이 있으면 먼저 잠깐 동안 내 마음을 관하고, 내 입을 관하게 된다. 만나는 시간이 길어지거나, 덩달아 내 말이 길어진다 싶으면 바로 내 입을 관하고 말을 관하려고 한다.

사람을 만나도 말 수가 적거나, 대화 가운데에도 오랜 침묵에 익숙한 사람을 만나면 참 믿음이 가고 든든하다. 그런 사람과는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충만하고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그런 사람은 말이 없으면서도 은은하고 향기로운 침묵의 언어, 소리 없는 소리의 가장 강력한 언어를 안으로 움트게 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이따금 끄집어 내는 한 마디에서도 큰 신뢰가 쌓인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말이 많은 사람은 그 말에 믿음이 가지 않고, 말과 함께 사람까지도 가볍게 느껴진다. 말이 많은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은 번거롭고 불편하기 그지없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는 말하는 것을 삶의 가장 큰 행복으로 아는 사람이 몇몇 있는데 말이 시작됐다 하면 끝날 줄 모르고 계속되는 말 앞에서 듣는 사람은 참으로 힘겨운 고행을 해야 한다.

하기야 그런 사람도 나의 소중한 스승이다. 말 많은 사람을 만나고 나면 난 내 속 뜰을 몇 번이고 더 비추어 보고, 내 말의 습관을 자꾸만 돌이켜 보게 된다. 그러면서 나의 말하는 일상에 대해 좀 더 반성하고 면밀히 지켜보리라는 원을 쌓는다.

그러고 보면 꼭 어떤 특정한 사람을 정할 것도 없이 대부분 사람들의 일상을 가만히 관찰해 보면 그다지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참으로 많이 하고 산다. 절제되지 않은 말, 거친 말, 속이는 말들이 자연스러운 용어가 되어 넘쳐나는 세상이고, 심지어 그런 교묘한 술수의 말들을 잘 뱉어낼 수 있어야 성공하고 능력있는 사람으로 인정되는 세상이기도 하다.

말이라는 것은 모름지기 내면의 걸러짐이 있어야 한다. 알아차림의 필터로 인연따라 불쑥 불쑥 올라오는 내면의 숱한 언어들을 침묵으로 걸러낼 수 있어야 한다. 입이 가벼우면 따라서 생각이 가벼워지고, 행동이 가벼워져 경계에 닥쳐 금새 울고 웃고 휘둘리는 일이 많아진다. 입이 그대로 온갖 화의 근원이고, 번뇌의 근원이 되어 우리를 얽어맨다. 그래서 『보은경』에서는 ‘구업은 몸을 깎는 도구이며, 몸을 멸하는 칼날’이라 했고, 『사자침경』에서는 ‘화는 입으로부터 나와서 천가지 재앙과 만가지 죄업이 되어 도로 자신의 몸을 얽맨다.’고 했다.

모름지기 수행자는 크게 침묵할 줄 알아야 한다. 침묵하는 자는 들뜨지 않으며 가볍지 않고 쉽게 행동하지 않는다. 침묵하는 자는 수행에 있어 큰 보배와도 같다.

침묵으로 걸러진 정제된 말은 그대로 종소리가 되어 법계를 울릴 것이다. ‘말을 하더라도 선하게 하여 말 한마디라도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리는 것 같이 하라’고 한 『법구경』의 말씀처럼 우리의 말도 은은하게 울려야 하겠다.


법상 스님/buda11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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