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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古都 시안으로 달리다

기자명 이재형

길 위에서 중국의 성장과 절망을 만나다

<사진설명>중국의 도로에서는 갑자기 사람이 튀어나오거나 양과 소들이 도로를 점거하는 사태도 흔하다.

어제부터 간간이 내리던 비가 새벽까지 이어지고 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추안청 공원의 탑이 푸른 빛을 뿜어낸다. 거수경례를 하고 있는 호텔 앞 교통경찰 상(像)도 비에 흠뻑 젖었다. 호텔 안내자에게 들은 바로는 이곳 지난(濟南)에서는 교통경찰이 가장 모범적이어서 동상을 세웠고, 사람들도 이를 본받아 질서를 잘 지키라는 의미로 만들었단다. 곧이곧대로 믿어지지는 않지만 이곳도 질서를 꽤나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어쨌든 날씨는 꿀꿀하지만 기분은 상쾌하다. 오늘도 새로운 길과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리라.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할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여행보다 좋은 것은 없을 듯 싶다. 숲 속에 있으면 숲 전체를 볼 수 없는 것처럼 일상을 벗어나 낯선 땅 낯선 사람들에게서 오히려 참나를 대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여행이란 진솔한 자기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사진설명>중국도로는 항상 '공사중'이다.

짐을 챙겨 숙소 앞으로 내려오니 모두들 떠날 준비에 여념이 없다. 거리에는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비옷을 입고 출근하는 모습이 보인다. 비옷 대신 한 손으로 우산을 들고 자전거를 타는 재주 좋은 사람도 있다. 그 때 재미있는 광경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열 살 남짓 되었을까. 뚱뚱한 사람이 거의 없는 이곳에서 아주 비대한 아이 하나가 느긋하게 길을 걷고 있다. 빨리 오라는 엄마의 잇따른 손짓에도 아이는 아랑곳없다. 한 손은 우산을 받쳐들었고 다른 한 손은 큼직한 햄버거를 입으로 옮기느라 분주하다. 꼭 만화 속 풍경만 같다.


교통사고로 매일 300명 사망

어제 저녁때처럼 아침의 도로도 혼잡하기는 마찬가지다. 건널목도 무시하고 달리는 차량도 숱하다. 비록 단편적일지라도 차가 사람을 위해 멈추는지 아니면 사람이 차를 위해 멈추는지에 따라 그 나라의 문화적 수준을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중국도 우리나라처럼 차가 사람 위에 군림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우리는 붉은 신호봉을 다시 꺼내 들고 요란한 경적을 울리며 ‘그들처럼’ 이리저리 빠져나갔다.

<사진설명>백미러도 안보이는 차들이 추월하는 경우도 많다.

1시간 여 지나자 도시를 벗어나 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고속도로라고 사정이 썩 좋은 건 아니다. 여기저기서 수많은 과적차량이 질주하고 있다. 수십 톤의 화물을 적재한 차량부터 백미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짐을 가득 실은 차들도 부지기수다. 그러다보니 곳곳에 전복된 차량이 있고 도로에서 차를 수리하고 있는 모습을 쉽게 발견된다. 차를 고치는 모습도 가관이다. 특별한 표시 없이 앞뒤로 큰 돌 하나 놓으면 수리중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차를 고치고 나면 돌을 치우지 않고 그냥 가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점이다. 심지어 고속도로가 마을 한 가운데로 관통하는 곳도 건널목이 없어 마을 사람들이 무단 횡단해야만 건널 수 있는 곳도 적지 않다.

<사진설명>이 정도 과적은 그래도 양호한 편이다.

이런 탓에 중국의 교통사고 사망자는 타국의 추종을 불허한다. 매일 300여 명이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고 1500여 명이 불구가 되는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또 ‘중국의 길은 공사 중’이라고 할 정도로 보수 작업이 끊이질 않는 것도 중국 도로의 특징 중 하나다. 과적 차량이 일차적인 원인이다. 당국도 무거운 차들이 많아질수록 도로가 금방 망가진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경제 발전의 ‘첨병’들을 막을 수는 없는가보다. 경제성장만을 지상의 목표로 인권은 전혀 돌아보지 않던 60∼70년대 우리나라를 쏙 빼닮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서민들 희생 딛고 ‘경제성장 중’

중국은 지난 10년간 연평균 9.8%라는 눈부신 속도로 경제성장을 이룩해 오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좥2004년 중국경제 전망좦에 따르면 중국은 올해 미국의 경제적인 제재와 사스 등 여러 대외적인 악조건 속에서도 97년 이후 가장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러한 눈부신 성장을 두고 “중국인은 유전적으로 타고난 자본주의적 인간”이라고 다소 비꼬는 학자도 있지만 그렇더라도 중국인의 상술이 가히 세계적이라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여기에 사회주의 경제의 리더라고 일컬어지는 주룽지, 후진타오 등 총리의 탁월한 지도력이 잠자는 대륙의 용을 깨우는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도로를 달리고 있는 우리에게 중국경제의 힘은 어디론가 열심히 달리고 있는 저 운전기사들과 거리의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듯 하다. 열악한 임금에 극심한 피로…. 졸린 눈을 비벼가며 며칠 씩 달려야 하기 일쑤다. 사람은 물론 양이나 소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기 때문에 늘 긴장을 멈춰서는 안된다. 이들 운전자를 비롯해 시골농부, 시장상인, 공장 노동자 등 성실하고 착한 수많은 서민들의 피와 땀을 딛고 중국은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우뚝 서고 있는지 모른다. 당나라 문장가 이신(李紳, 780~846)이 ‘한낮 뙤약볕 아래서 김을 매니/ 땀방울이 벼 아래 흙에 뚝뚝 떨어지네./ 누가 알랴, 그릇에 담긴 밥이/ 한 알 한 알 괴로움이 영근 것인 줄을’이라는 상황은 1200여 년이 흐른 오늘날까지 변함이 없는 것이다.

빗방울이 더 굵어지고 있다. 윈도우 브러쉬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앞차 바퀴에서 튀어 오르는 물보라 수위도 조금씩 높아진다. 갈 길이 먼 우리는 엑설레이터를 힘차게 밟는다. 그렇게 또다시 몇 시간. 해질 무렵에야 허난성(河南省) 정저우(鄭州) 톨게이트를 지날 수 있었다. 30∼40대로 보이는 아줌마(혹 아가씨일수도)들이 트럭 운전사들에게 다가서 뭐라뭐라 얘기한다. 먼 길을 가는 지루한 운전자들에게 말벗이 되어주고 그 거리만큼 돈을 받는 여인들이라고 일행 까오린 씨는 설명했다. 나라가 크다보니 먹고사는 방법도 참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주를 지나 20∼30분 정도 더 가니 멀리 누런 황허(黃河)가 그 거대한 몸통의 일부를 드러내고 있다. 언뜻 보아도 그 폭이 한강의 열 배는 족히 될 듯 하다. 칭하이성(靑海省) 바옌카라산맥에서 발원해 장장 5464km를 흐르는 이 강은 한족들과 소수민족들에게는 젖줄인 동시에 문화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동안 저 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웃기도 하고 울부짖기도 했을까. 과거 3000년 동안 1500회 이상 범람해 제방을 파괴하고, 26번이나 물줄기를 바꾸어 흘렀다는 황허. 누렇게 굽이치는 강물이 보니 왠지 모를 아리함이 솟아오른다.


중국인의 젖줄 황허(黃河) 건너

해는 떨어졌지만 아직 가야할 길은 아직도 400여 km 남았다. 하루 종일 차안에 갇혀 있는 일행들도 조금씩 지쳐가고 있다. 스텝진은 4명의 쌍용자동차 기술진에게 우중(雨中) 밤길 운전을 부탁했다. 시속 120∼140km. 세계 각지에서 달려본 경험이 있는 이들이 운전대를 잡자 확실히 속도가 빨라졌다. 중앙분리대 역할을 하는 사철나무가 건너편 차량 불빛을 막고 있어 그나마 야간운전이 수월하다는 게 쌍용 안부기 대리의 설명이다.

“오 대리, 내일 날씨가 어떨지 전화로 알아보세요.”
그 때, 1호차에서 조선족 오승걸 씨에게 묻는 소리가 무전기를 타고 전해졌다.
“예, 알겠습니다.”
잠시 후, 오승걸 씨.
“내일도 중비가 온답니다.”
“중비????”

이 때 다른 조선족 청년 리철남 씨가 해설을 덧붙였다.
“예 이곳에서는 폭우와 가랑비의 중간쯤 되는 비를 중비라고 부릅니다.”

각 차량으로 웃음소리가 번져나갔고, 그 때 선두차의 노래 소리가 무전기를 타고 들려왔다. 지루하고 힘든데 노래를 부르며 가자는 것이다. 분위기는 점차 5대의 차량에서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는 방향으로 바뀌어 갔다. 그러다가 스님들도 노래를 부르라는 ‘민원’이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독촉에 못 이긴 한 스님이 “찬불가가 아닌 이런 노래는 금지곡인데…”라며 ‘삼포로 가는 길’을 조심스럽게 불렀다. 그래, 가사 말마따나 바람 부는 저 들길 끝에는 시안(西安)이 있으리라. 그렇게 몇 시간, 자정을 넘겨 드디어 오늘 목적지인 시안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설명>간혹 만나는 가로수 길. 이국 여행에서의 큰 즐거움이다.

11개 왕조가 수도로 삼고 70여 명의 황제가 살았던 3000년 역사의 중심지 시안. 머나먼 실크로드의 출발지이기도 한 시안은 퍼붓는 비와 고단함으로 그렇게 와 닿았다.


글·사진=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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