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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고통인줄 알아 고요히 하면

기자명 이미령
나고 죽음에서 벗어나게 되리라만일 또 중생이 관세음보살을 공경하고 예배하면 복이 헛되이 버려지지 않으리니, 그러므로 중생은 모두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받들어야 하느니라.

며칠 전 아주 가까운 분의 어머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고인은 평생을 기도로 일관해오신 참 독실한 불자이셨습니다. 당신 스스로 언제나 기도를 올린 것은 물론이요, 며느리가 법회에 참석하는 날이면 손수 집안일을 도맡아주시며 마음 편하게 공부하고 오라시던 분이셨지요. 떠나시는 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일상생활을 하시다가 손주의 이름을 부르며 “이제 가야겠다. 나무 지장보살마하살”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이 모습을 본 손주가 가족들에게 연락하였고 보살님은 일가친척들과 조용히 작별하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 분의 얼굴은 참 편안하고 담담하셨다고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하였습니다.

‘오직 화두 참구에 일생을 바친 눈푸른 선승도 아니요, 대장경의 바다에서 교리를 낚아올린 학승도 아니었을 고인이 어떻게 그리도 자신의 마지막 앞에서 태연하실 수 있었을까.’

인생살이가 얼마나 위태롭고 불안하기 짝이 없는가를 설명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어떤 사람이 광야를 가다가 큰 코끼리를 만났습니다. 코끼리를 피해 미친 듯이 달렸지만 어디에도 의지할 곳이 없었습니다. 마침 기적처럼 우물 하나를 발견한 그는 곧 그 안에 있는 나무뿌리를 찾아 그것을 잡고 우물 속으로 들어가 숨었습니다. 한숨 돌렸나 싶었지만 고개를 들어보니 검은 쥐와 흰 쥐 두 마리가 나무뿌리를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우물 벽에는 네 마리 독사가 이 사람을 물려고 혀를 낼름거리고 있었으며 설상가상으로 우물 밑에는 세 마리 큰 뱀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바람 앞의 촛불 같은 그 때, 마침 다섯 방울의 꿀이 이 사람 입 속으로 떨어졌고, 그는 위험도 잊은 채 맛에 취했습니다. 그 순간 나무 뿌리가 흔들리더니 벌들이 날아와서 이 사람을 쏘았습니다. 하지만 우물 밖에서는 어디선가 들불이 일어나 이 사람이 매달려 있는 나무뿌리를 태우고 있었습니다.

광야는 생사를, 코끼리는 죽음을 비유한 것입니다. 우물은 사람의 몸, 나무뿌리는 수명을, 두 마리의 쥐는 밤과 낮을 비유하였고 나무뿌리를 갉아먹는다는 것은 세월이 쉬지 않고 지나감을 비유하였습니다. 네 마리 독사는 지수화풍의 사대(四大)이고 바닥에 있던 세 마리 큰 뱀은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입니다. 꿀 다섯 방울은 존재의 근간이 되는 오온이고, 벌떼는 나쁜 생각들입니다. 들불이 타오르는 것은 늙음을 비유한 것이지요.(『빈두로위우타연왕설법경』)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얼마나 위태로운 지경인지 새삼 몸서리가 쳐집니다. 이런 속에서 우리는 태어나고 생활하다가 죽어가는 것입니다. 간신히 매어달린 나무뿌리는 쥐들이 갉아먹고 있는데도 우리는 입 속으로 떨어지는 꿀 몇 방울에 취해서 지내고 있습니다. 이런 지경에서 선업을 짓거나 자력으로 깨닫기란 참으로 아득하기만 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덧없고 위태로운 지경에서 관세음보살을 향해 올린 예경은 우리에게 “불에도 타지 않고 바람에도 날아가지 않으며 물에도 젖지 않고 도둑에게도 빼앗기지 않고, 사나운 벼락이 내리쳐도 부서지지 않고, 금고에 넣고 지키지 않아도 줄어들지 않는 복(『출요경』)”을 준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비록 사바세계를 헤쳐오느라 수행을 완성하진 못하였지만 우리는 구제의 약속을 받아낸 것입니다. 이 약속을 받은 이는 이제 그 노보살님처럼 삶을 마감하는 자리, 앞을 짐작할 수 없는 윤회의 회오리 속에서도 조금도 불안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령/동국역경원 역경위원

lmrcitt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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