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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書狀)』

기자명 이학종

편지로 당대 지식인 제접

사통팔달 선기 흠뻑
화두 참구
주의사항 제시
참선 수행자 필독서



“천 가지 만 가지 의심이 다만 이 하나의 의심이니, 화두 위에서 의심을 파한즉 천 가지 만 가지 의심이 한꺼번에 부서지리라. 화두를 부수지 못한즉 다시 화두 위에 나아가서 더불어 겨루어 갈지어다. 만약 화두를 내팽개쳐 버리고 도리어 달리 문자 위에 나아가 의심을 일으키거나, 여래의 경교(經敎) 위에서 의심을 일으키거나, 고인의 공안 위에서 의심을 일으키거나, 일상생활의 일 속에서 의심을 일으키면 모두가 사마(邪魔)의 권속이니라.”<答呂舍人 중 일부>

『서장(書狀)』은 문자의 뜻 그대로 편지글이다. 간화선의 체계를 정립한 대혜종고(1089∼1163) 스님이 주로 사대부들에게 ‘선(禪)공부에 관한 여러 가지 요지’를 대답해준 편지를 모아 책으로 묶은 것이다. 『서장』은 대혜 스님의 제자 혜연이 기록하고, 정지거사 황문창이 중편한 것으로 ‘대혜어록’ 30권 가운데 25∼30권에 해당되며 본래의 제목은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이다.

편지글의 모음집이라고는 하나 그 내용이 선문의 요지를 간명직절(簡明直截), 철저친절(徹底親切)하게 설명하고 있어, 일찍이 선문에서는 ‘더 이상의 훌륭한 글은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우리나라의 보조국사 지눌 스님도 ‘육조단경으로 스승을 삼고 서장으로 벗을 삼았다’고 할 정도로 이에 의지해 공부에 큰 진전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황문창이 중편을 했던 1166년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고려에 전해진 것으로 보이는데, 크게 유행한 것은 강원제도가 정비된 조선 이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현존하는 판본은 대략 26종이 있는데, 최근에는 강원에서 사용하는 안진호 스님이 현토와 주를 단 법륜사판과 탄허 스님의 판, 원융 스님의 판 등이 대표적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서장은 승려만이 아니라 일반 재가자들도 손쉽게 서장을 접할 수 있도록 친절한 번역과 해설을 붙인 지상 스님 주해 ‘서장’(불광출판부·1998,11월 간)이다.

62편의 답서와 3통의 문서를 더하여 모두 65편의 서신을 통해 제접, 교화한 대상은 승려 2인, 여성 1인을 제외하고는 모두(39명) 당시의 지식인이자 관료들이다. 자연 속세간적인 색채가 짙지만 그 교리가 매우 깊고 미묘하며, 간명하고 적절해 고래로부터 불안의 ‘보설(普說)’, 만암의 ‘법어(法語)’와 함께 천하의 삼절(三絶)로 꼽힌다. 외려 이런 면에서 선 수행에 관심이 있거나 공부의 진전을 점검 받고자 하는 재가수행자에게 더 없이 요긴한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대혜 스님의 말씀 중에 적나라한 인간성과 사통팔달의 선기를 읽을 수 있는 것은 ‘서장’만의 특징이기도 한데, 재가거사와의 문답에서 잘 나타나 있듯이 당시의 간화선이 출재가를 구분하지 않고 널리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

‘서장’의 대지(大旨)는 한마디로 ‘삿된 견해를 배척하고 바른 견해를 드러내는(斥邪解 現正見)’데에 있다. 그 내용은 크게 간화선법에 대한 것과 묵조선을 비판하는 두 내용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간화선법에 있어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과 아울러 사구(死句)가 아닌 활구참상을 강조하고 있다. 또 화두 중에는 여러 화두 중에 특히 무자(無字)화두를 강조하고 있으며 참구할 때 주의해야 할 ‘무자화두십중병’을 제시하고 있어 공부하는 이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서신 모두가 한결같이 깊고 오묘한 종문의 요지를 간단명료하면서도 자상하게 설파하고 있어 오늘날의 참선수행자들도 반드시 읽어야할 최고의 참선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이학종 기자 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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