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해특집-2004 한국불교의 과제-“구법승 개척정신이 불교의 힘”

기자명 법보신문

동국대 조 용 록 명예교수

‘백장청규’는 사회개혁 원동력 작용

불교의 개방적 사상 국난극복에 도움


한 해의 말기현상이어서 그런지 매스컴에서는 나라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는 크고 작은 일들이 봇물 터지듯 흘러나오고 있다. 얼마 전 텔레비젼 화면에 스님들이 구세군의 복장을 하고 자선모금 활동을 벌이는 장면을 비추고 있었다.

매우 신선한 충격이다. 그것이 비록 조그만 일이지마는 불교적 구세제민의 정신을 이교적 방법을 동원한 실천행위라는 점에서 우리의 관심을 끈다.

또 다른 시사보도에서는 로마 교황이 노쇠한 몸짓으로 평화를 기원하는 모습을 담고 있었다. 세계가 전쟁과 테러로 들끓고 있는 오늘의 상황에서도 그러한 일관된 종교적 언행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도 남음이 있다.

구세군의 모습을 한 스님의 뜻이나 세계의 평화를 호소하는 교황의 기도는 그 의미가 결코 둘이 아닌 하나이다.

스님구세군의 가두 모금행위는 단순한 이웃돕기의 차원이 아니라 구세제민을 목표로 하는 종교의 본질적 행위라는 점에서 그러한 것이다. 종래 서양의 역사관에서는 동양의 종교와 사회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근자에 미국의 중국계 학자 위 잉쓰(余英時) 교수는 동양사회의 근세적 발전에 불교, 특히 남종선의 역할이 결정적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주장을 제기함으로써 학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여기에 그 내용을 소개하면서 아울러 우리의 역사를 비추어 성찰해 보고자 한다.

위 교수의 이론을 소개하기 위해서는 그 비판의 표적이 되는 막스·베버의 이론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베버에 의하면 근대 자본주의는 중세 봉건사회의 질곡으로부터 인간의 삶의 질이 한 단계 높여준 사회혁명이라고 평가하면서 이 변혁은 어디까지나 서양 기독교정신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동양의 종교와 사회에 대한 정체성 이론에 근거한 것임은 물론이다.

베버의 이론은 그의 대표적인 저작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1905)에 담겨 있다. 여기서 그는 근대 자본주의 사회를 탄생시킨 정신이 다름아닌 프로테스탄트, 즉 기독교의 신교 윤리라는 이론을 제출하였다. 그후 그는 동양의 대표적 종교인 유교와 도교, 그리고 불교와 힌두교 등은 기독교의 신교 윤리가 갖는 자본주의적 정신이 결여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작업을 계속하였다. 말하자면 그의 학설은 동양사회의 근대화도 결국 서양에서 발생한 자본주의 사회를 이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베버의 서양사회 우위론에 대하여 그 후 동양학자들의 산발적 비판이 계속 되었다. 그러다가 80년이 지나 위 잉쓰 교수의 논저중국 근세 종교윤리와 상인정신(1986)이 햇빛을 보게 된 것이다.

책의 제목이 보여 주듯이 그는 베버의 사회학적 연구방법을 이용하여 중국 근세의 여러 종교의 윤리사상에도 상업정신을 갖고 있어 중국사회도 시장경제를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베버의 방법을 사용하여 베버의 학설을 뒤집어엎은 것이다. 그 의미의 중요성과 도덕적 긴장감을 지닌 이 책은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잇따라 번역 간행되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중국 근세의 종교윤리’의 으뜸자리에 당대 남종선의 거장 백장회해의 ‘백장청규(百丈淸規)’를 올려 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근세 종교를 신선종과 신도교, 그리고신유가로 나누고 있는데 신선종은 남종선, 신도교는 전진교 등 송이후 도교의 여러 교파, 그리고 신유교는 송(宋)·명(明)의 주자학과 양명학을 말한다.

백장의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一日不作 一日不食)”고 한 가르침은 승려의 치생은 탁발에만 의지하도록 규정한 불교 원래의 계율을 수정한 것으로서 이는 불교가 사회속으로 뛰어들게 한 엄청난 자기 개혁이라는 것이다. ‘청규’의 이러한 노동중시의 가르침은 특히 명청시대에 오면 양명학의 ‘신사민론(新四民論)’의 등장을 가능케 하였다고 한다. 유가 원래의 사·농·공·상명분서열이 여기와서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신사민관(新四民觀)을 낳았으며, 이에 따라 상업을 중시하는 사회적 변혁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동일한 한문화권에 속하면서도 조선왕조는 유별나게 명분론적 신분질서를 고집하여 승려나 상인이 천시되었다. 우리의 역사를 통하여 보면 구법승이나 무역상은 매우 개방적이고 진취적이었다. 스님은 법을 구하기 위하여 아무리 험난한 곳이라도 길을 개척하여 나아가고, 상인은 이익을 남기려고 적지까지 넘나든다. 도(道)는 인간의 정신을 구하고, 금과 은은 생민의 목숨을 살린다.

9·10세기경, 구산선문이 형성되고 장보고선단이 활약할 때 그들은 동아시아 문화권의 중심 세력을 형성하였다.

우리의 구법승과 무역상인들은 중국의 구화산과 보타산의 개산에 참여하였으며, 법안종의전등과 천태종의 부흥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대륙에 송제국이 세워졌으나 북방 정복왕조의 압박으로 민족의식이 요청되었으며, 이에 따라 춘추대의와 화이이념을 근간으로 하는 성리학이 대두하였다. 성리학은 생래적으로 배타적이며, 폐쇄적이어서 이후 개방적이며, 사해동포주의적 불교가 이단시되는 불행한 시대가 계속되게 된 것이다.

조선은 중국에 비하여 강도높은 성리학적 명분론에 집착하여 외부와의 교섭을 꺼려하였다. 대외적 쇄국정책은 나라의 위약성을 초래하기 마련이었다. 나라가 어려울 적마다 사명당이나 만해와 같은 위인이 속출하여 구국의 대열에 앞장섰으며, 이동인과 같은 개혁승이 나와 문호개방의 길잡이가 되었다.

오늘날과 같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여 우리 불교인은 부단한 자기 수행을 통하여 수처작주(隨處作主)할줄 아는 지혜를 갖는 노력을 계속하여야 한다. 그 방법은 훌륭한 불교적 전통과 선인의 가르침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