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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②

기자명 정태혁

숫자 헤아리는데 모든 정신 집중하라

관법수행은 근본불교와 소승불교의 불교도들이 기본적으로 널리 활용한 것이다. 이들 수행법들은 주로 정(定)인 지(止)와 혜(慧)인 관(觀)을 고루 닦는 것이다. 지가 이루어져야 관이 따른다. 그래서 지는 삼매(三昧, samadhi)를 얻은 다음에 모든 대상을 관하되 그 삼매의 상태를 떠나지 않게 되면, 그때에 지혜가 얻어져서 열반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면 근본불교나 소승불교의 그 복잡하고 수많은 수행법 중에서 대표가 되는 것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 대표가 되는 것은 바로 안반수의(安般守意)라고 하는 6묘문(六妙門)과 16특승법(十六特勝法)과 40업처관(四十業處觀)이니 이것을 소개하겠다.


수식관은 초기-소승불교 대표 수행법

육묘문(六妙門)이란 여섯 가지 문으로 들어가서 절대 안온한 열반의 세계에 이르게 된다는 뜻으로 지어진 관법의 문이다. 이 육묘문의 근본이름은 아나파나사티(anapanasati)라고 하여, 이 이름으로 된 경전이 『아나파나사티수타(anapanasatisutta)』다.(정태혁 저, 『붓다의 호흡과 명상Ⅱ』, 정신세계사 참조) 이 경전의 내용이 육묘문이다. 여섯가지 오묘한 문으로 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중국 당나라 때의 천태 지의대사가 가장 소중히 하여 항상 이 관법을 행했다고 한다. 그래서 한역경전에는 『안반수의경』으로 나온다. 안(安)은 ‘an’, 반(般)은 ‘pan’ 사티(sati)는 뜻으로 수의(守意)라고 하여 『안반수의경』이라고 했다. 안은 입식(入息)을, 반은 출식(出息)의 뜻이다.

이와같이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에 정신을 집중시키는 수행법은 열반의 세계로 가게 하는 오묘한 문이다. 호흡을 명상하는 이 오묘한 관법은 여섯 가지 종류로 설해지고 있기 때문에 육묘문이라고 한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 『대비바사론』 권26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1에 수(數), 2에 수(隨), 3에 지(止), 4에 관(觀), 5에 전(轉), 6에 정(淨)이 있다’고 하였고, 잡아비심론(雜阿毘心論) 권8에서는 수(數), 수(隨), 지(止), 관(觀), 환(還), 정(淨)의 여섯을 들고 있다. 이들 두 문헌으로 보면 다섯 번째의 전(轉)과 환(還)의 명칭을 달리하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같은 것이다. 한문으로 되어있는 『안반수의경』에서는 환(還)이라고 하고 있다.

그러면 이 여섯가지 오묘한 문은 어떤 내용인가? 『아비달마순정리론(阿毘達磨順正理論)』 권 60의 설명에 의하면,

① 수(數)란 수식문(數息門)으로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헤아려서 하나로부터 열까지 헤아리면서 정신이 흩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②수(隨)란 수식문으로서 수행자의 마음이 숨과 같이 따라서 떠나지 않게 하여 숨이 나갈 때에는 그것이 시방에 이르고 들어올 때에는 큰 몸에 두루 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③지(止)라는 것은 지문이라고 하는 것이니 생각을 콧등에 머물게 하여 고요히 숨을 생각하는 것이다.

④관(觀)이라고 하는 것은 관문이니, 이 몸은 부정하므로 우리의 생각은 이것을 통해서 고(苦)를 받고, 마음은 덧없는 것이며, 모든 존재는 실체가 없다고 생각하며, 이에 의해서 내 몸이 깨끗하다고 하거나 지금 나는 즐겁다고 하거나 내 마음은 영원한 것이라고 하거나, 모든 존재는 절대적인 실체가 있다고 하는 그릇된 집착을 가지는 것을 없애고, 올바르게 사물을 관찰하는 것이다.


생각을 콧등에 머물도록 해야

⑤환(還)이라고 하는 것은, 환문(還門)이니, 들어오고 나가는 숨을 관찰하는 것에서 다시 전환하여, 우리의 몸은 부정하여 지나친 애착에서 떠나는 신염처와 우리의 몸에 있는 감각기관을 통해서 고를 받는다는 진실을 철저히 깨달아 그 감각기관으로부터 받는 고통에서 떠나는 수념처(受念處)와 우리의 마음은 덧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는 심념처(心念處)와 모든 존재는 실체가 없어 인연에 의해서 이것과 저것이 모여서 된 것이라는 법념처(法念處)의 네가지를 닦아서, 드디어 열반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⑥정(淨)이라고 하는 것은 정문(淨門)이니, 일체의 번뇌를 없애고 마음이 한 곳에 머물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는 청정한 상태라고 설명하고 있다.


정태혁/동국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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