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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파사나 대법고 울린 위대한 스승

기자명 김재성
이제는 낯설지 않은 위파사나라는 수행법이 우리에게 알려진지 15년 남짓 되었다. 위파사나 수행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한 방법으로 우리 시대에 함께 살았던 스승들의 삶과 가르침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19세기 후반까지 미얀마에서 수행은 일부의 수행승들에게 국한된 일이었다. 하지만 숲 속에서 수행에 전념하는 수행승에게 제한되어 있었던 위파사나 수행 전통은 민돈왕(1814~1878)에 의해 왕궁에서 실천되었다. 1910년대를 지나면서 출가자는 물론 재가자에게까지 위파사나 수행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일반 승려는 물론 재가자들에게까지 위파사나 수행이 보급된 것은 미얀마의 초대 수상 우 누의 역할이 컸다.

<사진설명>스님은 교학에 정통해야 불교의 진정하 가치에 고마움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우 누 수상은 우 트윈에 의해 양곤에 설립된 불교협회(후에 마하시 수행센터가 됨)의 창설 멤버이며, 특히 1949년 마하시 사야도를 초빙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얀마에는 24가지 이상의 위파사나 수행법이 행해지고 있다. 이는 20세기 중반에 들어서서 일반에게 위파사나 수행이 널리 알려졌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위파사나 대중화 견인

현대 미얀마에서 위파사나 수행이 발전하게 된 세 가지 계기가 있었다. ①이전에는 전문적인 소수의 수행승들이 한정된 곳에서 수행을 했지만, 현대의 위파사나는 많은 수행자들이 잘 정비된 수행처에서 함께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②이전에는 수행은 교학에 밝고 충분한 연령에 이른 승려들의 특권이었지만, 현대의 위파사나 운동은 재가자는 물론 비불교도에게도 개방되었다. ③이전에는 위파사나 수행이 조직화되어 수행된 적이 없었지만, 현대에는 모든 연령의 재가자, 승려로 구성된 그룹들이 장기적으로 수행처에 머물면서 수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역사적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 미얀마의 위파사나 수행 전통의 바탕에는 세 가지 기본적인 소의 불전(佛典)이 있다. 팔정도의 가르침이 설해진 『초전법륜경』, 위파사나 수행의 주제가 설해진 『대념처경』 그리고 남방상좌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주석문헌인 5세기 붓다고사가 지은 『청정도론』이다.


교학에 대한 충분한 이해 강조

1904년 7월 29일에 태어난 마하시스님은 6세에 처음으로 사원에서 교육을 받게 되었고, 12세가 되자 정식으로 출가하여 사미(예비승)가 되었다. 법명은 ‘빛나는’, ‘아름다운’이라는 의미의 소바나(Sobhana)였다. 사미 시절부터 팔리 삼장과 주석서를 배우고, 복주까지 외울 정도로 공부하였다. 20세 때 비구계를 받은 후 교학에 더욱 몰두하면서 한편으로 실제적인 수행에 대한 관심도 높아갔다. 부처님의 고귀한 가르침이 진실 되고 올바르다는 사실을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을 통해서 알고자 했다.

당시 팔리 교학시험의 최고 단계를 통과한 후, 24세 때 교학의 중심지인 만달래이로 가서 더욱 팔리 삼장과 주석문헌에 대한 공부를 했다. 만달래이에서 많은 스님에게서교학을 배운 1년 후, 몰민(Moulmein)에서 교학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이때 교학지도와 함께 팔리 경전, 주석서, 복주를 더욱 깊이 있게 공부하였고, 특히 『대념처경』과 그 주석서와 복주까지 깊이 연구하였다. 28세에 위파사나 수행을 처음 접한 이후에도, 수행의 기본적인 초석은 교리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마하시 사야도는 1941년, 38세가 되던 해에 처음 실시된 정부 주도의 법사(法師)시험에 응시하여 통과한다.

마하시 스님은 후에 자신을 위해서 수행을 하는 데는 의지할 만한 스승의 지도 아래에서 교학에 대한 지식이 없이도 수행하면 되지만,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고 하는 사람은 교학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하였다. 교학에 정통한 사람만이 부처님 가르침의 진정한 가치에 고마운 마음을 낼 수 있으며, 이론적인 지식을 자신의 수행에 적용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법에 대한 이해를 다른 사람과도 나눌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하시 사야도는 사미 때부터 『대념처경』의 7년 혹은 7일 동안 이 수행을 하면 아라한 아니면 아나함이 된다고 하는 수행의 이익에 대한 가르침에 주목했다. 그리고 증지부의 『칼라마경』에 제시된 스스로 확인한 진리만을 받아들이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따라서 수행을 통한 개인적인 체험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실제적인 수행을 하려는 사람은 많은 수행법 가운데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데, 마하시 사야도는 마음챙김을 통한 통찰 수행(사띠팟타나 위파사나)을 하기로 결심했다.


4개월간 잠 안자고 용맹정진

먼저 『대념처경』을 주석서와 복주와 함께 주의 깊고 면밀하게 공부하여 부처님 말씀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을 때까지 연구하였다. 하지만, 수행이란 실제적인 길이어서, 스승의 지도에 따라서 실천하는 것이 바른 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있는 그대로의 지혜(如實智)를 얻기 위해서는 스승을 찾아야한다.”는 가르침에 따라 수행을 지도해줄 자격 있는 스승을 찾는다.

<사진설명>마하시 사야도의 스승인 밍군 사야도.

당시 위파사나 수행을 통해서 아나함의 깨달음의 선정(果定, phala-samapatti)한 경험이 있다고 알려진 티론 사야도(Thee Lon Sayadaw, U Sandima 1786~1860)의 전통을 전하고 있는, 타톤(Thaton)의 밍군 제타반 사야도, 우 나라다(U Narada, 186 9~1954)스님이 티론 사야도의 손제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마하시 사야도는 우 나라다 스님을 통해서 티론 사야도의 가르침을 만나게 된다.

마하시 사야도는 28세가 되던 1932년, 타톤의 밍군 사야도에게 가서. 도착하는 날부터 곧바로 수행 지도를 받고 수행에 들어갔다. 마하시 사야도는 4개월 동안 한 잠도 자지 않고 수행에 몰두하였다. 잠을 자지 않고 정진을 했어도 몸이 건강했던 이유는 위파사나 수행을 통해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 念, 擇法, 精進, 喜, 輕安, 定, 捨覺支)가 경험되면서 마음이 정화되었고, 마음의 정화에 의해서 육체가 정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재성/경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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