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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사발이 주는 교훈

기자명 혜민 스님
가치는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것

소박한 여백의 美 간직한 삶 중요


얼마 전 신문을 통해 우리나라 진주 지방에서 만들어진 멧사발이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건너가 국보가 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진주의 멧사발은 원래 제사 때 밥(메)을 올리는 제기용으로 쓰여졌다는데 일본으로 건너가서는 쇼군이 차를 마실 때 쓰는 찻잔으로 변해 지금 많은 일본 사람들에게 그 아름다움을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사발을 찍어 놓은 사진을 가만히 살펴보면 첫인상이 국보급으로 인정받기에는 참으로 투박하다는 느낌이 든다. 국보라 하면 고려 청자와 같이 잘 다듬어진 화려한 모습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표면이 거칠고 좌우가 대칭을 이루지 않은 비딱한 모습의 사발이 어떻게 일본에 가서는 최고의 가치를 인정받는 국보가 됐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사진을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또 세 번 보고 이렇게 자주 보다보니 사발이 참으로 편하면서 친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어릴 적 어리광을 마구 부려도 그냥 다 받아 주시던 할머니를 뵙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고려 청자와 같이 정교하고 화려한 귀족적인 멋은 없어도 넉넉하고 훈훈한 인심이 배인 듯한 그 모습에 일본의 쇼군도 감동을 받아 그 사발을 자신의 찻잔으로 자주 애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멧사발을 감상하노라니 아름다움이란 꼭 수학 공식처럼 완벽하게 잘 짜여 있는 그런 구성미(構成美)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딘가 모르게 부족한 듯 소박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모습. 그 모습 또한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자신의 멋을 죄다 드러내 놓은 그런 모습보다는 7할 정도 적당히 보여 주고 나머지는 감상하는 사람 스스로가 느끼면서 해석해낼 수 있는 여백의 공간을 갖고 있는 작품이 좀더 고차원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대칭을 이루지 않아 삐딱한 모습이지만 멧사발은 오히려 그러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기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고귀한 존재가 된 것이리라.

인생에 있어서도 멧사발과 같은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소임을 맡은 절에도 그런 스님이 한 분 계시는데 그 스님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많이 따른다. 물론 그 스님이 세력이 있거나, 큰 깨달음을 얻었거나 또는 특별히 교육을 많이 받았거나 하는 그런 것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겨울에 안방 아랫목을 그리워하듯 그 스님의 훈훈함에 매료되어 그 스님을 찾는다. 첫 눈에 완전히 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진가를 드러내는 스님의 모습은 화려한 유약으로 자신을 치장하지 않고 여백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멧사발을 연상케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이 좋다 하면 그냥 따라 하는 경우가 많다. 외국의 유명한 명품이라니까 너도나도 사고, 유명 정치인이 골프를 치니까 너도나도 따라 치는 이것이 우리의 자화상이다. 그래서 소박하면 소박한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자신을 향기를 간직한 멧사발 같은 사람이 그리운 것이다.


혜민 스님/vocalizethis@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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