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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방이우(禪房二友)

기자명 이학종

- 죽비와 좌복에 깃든 의미

죽비-입선·방선 신호에서 화두 역할까지 쓰임새 다양

좌복-수행중 몸 보살피는 도구…부처님·수좌 상징도


선방(禪房)은 수선(修禪)을 위한 공간이다. 수선을 위해서는 일정한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주 오랜 과거에는 나무 아래(樹下), 편편한 바위 위(石上), 동굴 등의 고요한 아란야가 있었다. 그러나 이미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에 대중이 늘어나고 차츰 승가가 정비되면서, 일정한 기간동안 수도정진을 위한 공간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오늘날과 같은 선원문화가 정착된 것은 중국 백장회해 선사로부터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백장 스님은 독자적으로 토굴 등 아란야에서 수행하는 것보다 대중적 집단 수도가 절실히 필요함을 절감하고는 곧 백장청규를 제정하고 선방이 딸린 대가람 창건을 추진했다. 총림의 개념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도 이 때가 처음이다.

<사진설명>공주 영평사 선방에서 스님과 재가 불자들이 입정에 들어있다.

선방은 오로지 좌선 수행을 위한 공간이므로 잡다한 기구나 번다한 절차가 거의 없다. 수행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도구와 장치만이 있을 뿐이다. 그 대표 격이 죽비(竹篦)와 좌복(坐服)이다. 예로부터 문방사우(文房四友)라고 해서 공비하는 선비들이 자신들의 글방에 종이(紙), 붓(筆), 먹(墨), 벼루(硯)를 필수적으로 갖추었던 것처럼 선방에는 필수적으로 죽비와 좌복이 갖춰져야 한다. 죽비와 좌복을 일러 가히 선방이우(禪房二友)라고 해도 좋다.


죽비(竹篦)

선가사찰에선 참 많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새벽녘 어둠을 가르는 도량석 소리부터 스님들의 독경 소리, 염불 소리 외에도 바람에 몸을 맡기고 흔들거리는 풍경소리며 저녁예불시간을 알리는 사물소리의 웅장함까지, 사찰의 소리는 한결 같이 듣는 이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하지만 넉넉하고 자비롭기만 한 듯한 사찰의 많은 소리들 가운데 오히려 듣는 이를 퍼득 긴장시키는 소리가 있다. 선잠 깬 이를 깨우듯, 잠시 찾아든 오후의 나른함을 질책하듯, 아집이 들어서려는 순간을 후려쳐 쫓아내는 듯한 소리. 그것은 바로 스님들의 손 위에, 어깨 위에 떨어지는 죽비 소리다.
<사진설명>나란히 서 있는 장군죽비와 죽비.

일반적으로 죽비는 약 40-50센티미터 정도의 길이를 하고 있다. 이만한 크기의 대나무를 길이 3분의 2쯤 되는 곳의 가운데를 타서 두 쪽으로 갈라지게 하고, 나머지 3분의 1은 그대로 두어 자루(손잡이)로 사용하는 형태가 보통이다.

죽비의 기원은 자세하지 않으나 중국의 선림(禪林)에서 유래되어 널리 보급된 것으로 짐작된다. 이를 사용할 때에는 자루를 오른손에 쥐고 갈라진 부분을 왼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대중의 수행을 지도한다. 좌선할 때 입선과 방선의 신호로도 사용됨은 물론이고, 공양할 때도 죽비의 소리에 따라 모든 대중들이 행동을 통일하도록 되어 있다. 말이 필요 없는 선방에서 죽비는 절대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늘 스님들과 함께 선방에서 살아가는 죽비를 높여 죽비자(竹篦子)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죽비의 기능은 좌선에 든 수행자의 졸음이나 자세 등을 지도하는 역할일 것이다. 이때는 특히 2미터 정도 되는 큰 죽비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장군죽비라고 하는데, 경책사(警策師)가 이것을 가지고서 좌선 대중 사이를 오가다가 수마(睡魔)를 못 이겨 졸기 시작한 수행자의 졸음을 내쫓는 도구로 쓰인다. 주로 조실 스님이나 입승 등 구참 수좌 등이 장군 죽비를 어깨에 메고 방 중앙을 조용히 걷다가 조는 사람이 있으면 그 앞에 가서 장군 죽비를 조는 사람의 어깨에 가만히 얹는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기가 졸았음을 깨닫고, 경책(警責)하여 주십사하는 의미의 합장을 한 다음 어깨를 숙이고 등을 내밀면 역시 합장으로 예를 표하고 그 사람의 등을 힘껏 내려친다. 장군 죽비 소리가 물을 끼얹듯 조용한 선방 가운데 울려 퍼지면 다른 사람들도 새로이 정신을 가다듬고 더욱 열심히 정진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죽비는 좌선에 들거나 푸는 입선(入禪)과 방선(放禪)의 신호(세번)로 사용되는데, 예불이나 법회에서의 입정(入定), 참회의식, 공양 의식, 청법(請法) 의식에 이르기까지 그 용처가 매우 다양하다. 선방에서 죽비가 워낙 필수적인 도구로 자리잡다보니 중국 선가에서는 죽비가 화두의 역할도 하는 경우도 종종 발견된다. 선가의 요서(要書)인 《무문관(無門關)》에 나오는 ‘수산(首山)죽비’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어느 날 수산성념(首山省念) 선사가 죽비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이 만약 이를 죽비라고 불러도 어긋나고 죽비라고 부르지 않아도 어긋날 것이다. 그대들은 얼른 말해 보라. 이를 무어라 하겠는가?”
이에 대해 후일 무문혜개(無門慧開) 선사는 《무문관》에서 “죽비를 죽비라 불러도 안 되고 부르지 않아도 안 되는 이치를 알면 자유로울 수 있다”고 송(頌)을 읊었다.

대나무 죽비라는 이름에서 보듯이 재질은 주로 대나무인데, 이따금씩 나무로 만든 것도 볼 수 있다. 나무 죽비, 즉 목비(木篦)는 대나무 죽비에 비해 조각이나 모습이 화려하고 세밀한 문양이나 경구가 새겨진 것이 많다. 10년 가까이 나무 죽비를 만들어 보급하고 있는 정중화 거사에 따르면 죽비 제작을 부탁하는 사찰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나무 죽비의 인기가 높아가는 추세다. 정 거사는 도로공사나 간벌 등 다양한 이유로 벌목돼 버려진 나무들을 주워 모아 죽비를 만들고 있으니 그 의미가 또한 새롭다. 버려진 나무를 다듬어 수행의 스승인 죽비를 만드는 과정이 진흙 속에 감춰진 진주를 드러내는 수선의 과정과 닮았기 때문이다.

정 거사는 죽비 소리를 ‘깨우침의 소리’라고 부른다. 원래는 선방에서 쓰이는 물건이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절제와 자기반성이라는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좋은 물건이니 각 가정에도 하나씩 비치해두고 경책의 도구로 활용하면 좋다고 강조한다. 그는 자신이 만든 나무 죽비에 경전 곳곳에 숨어있는 깨달음의 말씀과 선사들이 남긴 화두가 섬세히 새겨 넣는다. ‘죽비는 자신의 몸을 울려 수행자의 깨달음을 재촉하는 수행의 도반’이라고 강조하는 정 거사. 그는 자기 자신과 이웃을 위한 죽비의 청량음이야말로 세상을 밝히는 법음으로 믿고 있다.


좌복(坐服)

무사는 칼을 차고 있어야 무사답고, 선비는 글을 읽을 때 선비다운 멋이 나며, 수좌는 좌복 위에 앉아 허리를 쭉 펴고 정진할 때 빛이 난다는 말이 있다. 좌복은 수좌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불구이다.
<사진설명>법당에 놓여있는 수행자의 좌복. 선방 수좌들을 위한 필수품으로 죽비와 함께 '선방이우'라 칭할만 하다.

좌복은 기능적인 면만 말하자면 선방에서 사용하는 방석이다. 선은 곧 좌선이라고 할 만큼 앉아서 하는 것이 대표적이니 자연 선방에서의 좌복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 좌복이라는 이름은 참선을 할 때는 방석으로 사용하고, 다닐 때는 손에 걸치고, 잠을 잘 때는 배를 덮는 이불로 활용한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좌복은 앉았을 때 사방으로 5센티미터 이상 여유가 있는 두툼하고 큼지막한 것이 좋다. 좌선 전용으로 각 가정마다, 각 개인마다 하나쯤 준비해 놓고 사용하면 좋다. 좌복은 좌부동(坐不動)이라고 부르는데 지속적으로 좌선을 해나가기 위해 요긴한 도구이다. 좌부동이란 아마도 좌복이 절구통처럼 꿈쩍도 않고 좌선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듯 하다.

좌복에는 넓고 큰 좌복과 작은 보조 좌복이 있는데, 소재는 면(綿)솜과 면천을 사용해야 한다. 면을 소재로 만든 좌복은 일단 솜의 숨이 죽게 되면 앉았을 때 안정감을 주어 힘 있게 몸을 받쳐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좌복의 두께가 너무 두껍거나 푹신하면 쉬이 졸릴 우려가 있고 수좌의 정진력을 해치는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어 유의해야 한다. 보조용으로 쓰이는 작은 좌복은 좌골과 청량골을 받쳐주는 기능을 하는데 골반을 세워주고 척추를 곧게 해서 가슴을 열어주는 효과가 있다. 일반적으로 큰 좌복 하나만 활용하게 되면 골반이 뒤로 젖혀지고 척추는 앞으로 휘어 가슴이 막히게 돼 깊은 호흡이 어렵고 기혈유통이 어려워 정진력을 잃게 되며 상기병(上氣病)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결가부좌 자세를 정확히 바르게 할 경우에는 골반이 바로서고 허리가 펴지기 때문에 따로이 보조 좌복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처럼 좌복은 수행을 위해 몸을 보살피는 소중한 기구이다. 그러므로 이를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좋은 좌복을 차지하려고 다투거나, 함부로 던지거나, 한 손으로 들고 흔들거리거나, 함부로 밟고 돌아다녀서는 안 된다.

좌복은 단순한 방석의 개념을 넘어선다. 때론 부처님을 대신하기도 하고, 수좌를 대신하기도 한다. 적멸보궁에 가면 불상을 모시지 않고 좌구, 즉 좌복만을 모셔놓는 것을 볼 수 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있으므로 좌대위에 불상을 놓지 않고 부처님을 상징하는 좌복만을 놓아둔 것이다. 여기서 좌복의 의미는 부처님이다. 좌복은 이렇듯 대단한 의미를 가진 불구이다. 마찬가지로 선방에서의 좌복은 곧 그 좌복에 앉아 정진하는 스님을 상징한다. 좌복을 뺀다, 들인다는 말이 선방에서 자주 활용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축원문에 나오는 “깔개 좌복 시주하면 앉는 자리 편안하고…” 라는 내용처럼 좌복을 보시하는 공덕도 대단하다. 오늘날에도 신심 깊은 보살님들 가운데 좌복을 만들어 선방에 공양을 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그만큼 공덕이 크다고 믿기 때문이다.

좌복은 수행자의 수행정도를 가늠하는 기준으로도 곧잘 비유된다. 중국의 저 유명한 마조 스님이 회양선사의 회상에서 좌복을 7개를 뚫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좌선을 오래 했다는 이야기는 선문에서는 유명한 일화다.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거량도 전해지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마조라는 수좌가 하도 좌선을 많이 하여 마치 죽은 사람이나 나무등걸 같았다. 그러나 회양선사는 그 때 마조의 공부에 진전이 없음을 알고 마조에게 물었다.
"무엇을 하고 있는가?"
"좌선합니다."
"무엇 때문에 좌선을 하는가?"
"부처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어느 날 회양은 벽돌을 갈고 있었다. 마조가 그 소리를 듣고 찾아가 물었다.
"벽돌은 갈아서 무엇에 쓰려고요?"
"거울을 만들려고 하네."
"어떻게 벽돌로 거울을 만들 수 있습니까 ?"
"그러면 좌복 위에 앉아 있다고 부처가 되겠는가?
"그러면 어찌해야 합니까?"
"수레가 가지 않을 때는 소를 때려야 하나 수레를 때려야 하나?"
이 말끝에 마조는 확연히 깨달았다.


이학종 기자 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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