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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안할 땐 늘 ‘옴마니 반메훔’

기자명 지운 스님

라닥 사람들의 일상 <下>

<사진설명>라닥의 티베탄 불자들이 초크람사르 곰빠 인근의 도로에서 달라이라마를 기다리고 있다.

한 겨울이라 하더라도 햇볕을 쬐고 있는 얼굴은 화상을 입고 그늘에 들여놓은 발은 동상에 걸린다는 라닥의 티베탄(라다키)들은 늘 중얼거린다. 각자의 은사 스님으로부터 받은 ‘옴 마니 반메훔’이나 금강살타, ‘참회 보살’, 아미타불 진언을 염송하면서 생활을 하기에 ‘일상=수행’이란 등식이 꼭 들어맞다. 직업이라고 해봐야 먹거리 또는 일상 용품을 파는 상인이나 농사를 짓는 농부 등이 전부인 라닥 사람들은 히말라야의 계곡 아래 논이나 밭에서 농사일을 할 때도 동네 어귀 난전에서 장사를 할 때도 늘 진언을 외우기에 ‘處處가 곧 수행터’란 말도 그리 틀리지 않는다.

농사철이 아닌 겨울엔 조금은 게을러져 오전 8시가 돼서야 일어나는 라닥지역 티베탄들의 하루는 집안에 봉안돼 있는 불단에 일곱잔의 감로수를 올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집안의 불단에는 불상이 아니면 달라이라마나 부처님의 사진을 장엄하고 사진 앞에는 7개의 잔을 나란히 놓는다. 라다키들은 아침 일찍 히말라야의 눈 녹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나 우물에 들러 불단에 올릴 감로수를 떠다 잔을 채우고 향을 사른 뒤 기도를 올린다. 7개의 잔에 감로수를 올리고 내리는 일은 라다키들에게는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는 ‘성스러운 기도’이다. 잔의 수가 7개인 것은 한잔, 한잔이 ‘부처님의 손을 씻을 물’을 비롯해 ‘부처님의 발을 씻을 물’, 꽃, 향, 초, 향수, 공양 등 일곱 종류의 공양물을 의미하며 이 공양물을 물로 대신해 올리는 이유는 ‘상’을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맑은 물을 올리면서 라다키들은 탐진치를 소멸하고 아상을 깬다.

집을 떠나 어딘가를 향할 때 진언이 담긴 통인 ‘마니 콜로’를 꼭 챙겨 진언을 염송하는 일을 잊지 않는 티베탄들은 여럿이 모여 함께 수행을 하기도 한다. 곰빠(절)에서 정진하기도 하나 대개는 마을 한 가운데 있는 불교 회관에서 수행에 전념한다. 주된 수행법으로는 오체투지와 기도 등을 들 수 있고 큰 모임이 있을 땐 마을의 노인들이 대중들을 위해 차를 낸다. 생을 회향할 시간과 더 가깝게 있는 노인들에게 공덕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티베탄들은 부처님이 나고 도를 이루고 열반에 든 날인 ‘음력 4월 15일’을 기념해 4월 한달 동안 마을 회관에서 절하고 또 절한다.

<사진설명>다락의 한 티베탄 상인이 '마니 콜로'를 옆에 둔 채 진언을 외우면서 농산물을 팔고 있다.

이번 생에 선덕과 수행에 진력해 다음 생 또는 그 다음 생엔 반드시 부처가 되겠다”는 원력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특별히 절을 세면서 하지는 않는다. 수를 셀 땐 몇 달에 걸친 ‘10만 배 성만 원력’을 세웠을 때이다. 하루 1000배를 하더라도 100일을 꼭 채워야 가능한 ‘10만 배 정진’을 티베탄들은 결코 무리하면서 하지 않는다. 10만배 정진에는 이생만이 아니라 다음 생에도, 그 다음 생에도 불자로 태어나 결국엔 ‘부처’가 되겠다는 그들 나름의 느긋한 사고와 정신이 배어 있다.

자신을 낮추기 위해 끊임없이 ‘오체투지’에 몰두하는 라닥 티베탄들의 불교 문화 중 우리와 비슷한 점으로는 스님들을 위한 대중 공양을 꼽을 수 있다. 정성스레 음식을 준비한 불자는 곰빠의 원주 스님을 통해 대중 스님 전체를 집으로 초청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음식을 곰빠로 운반해 인천의 스승인 스님에게 공양을 보시한다. 살림이 넉넉하지 못한 불자들은 사찰 소유의 토지를 경작해 생산한 농산물의 절반을 공양물로 내놓기도 한다. 1년 중 4개월만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는 히말라야의 척박한 환경에서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 절반을 내놓기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티베탄들의 이런 마음은 어느 부자가 절 한 채를 짓는 데 필요한 비용을 보시하는 것에 결코 뒤지지 않는 ‘큰마음’임에 분명하다.

거의 모든 라닥의 티베탄들이 지니고 다니는 대표적인 성보는 달라이라마의 사진이다. 이들의 달라이라마에 대한 존경심은 절대적이다. 달라이라마가 라닥의 큰 곰빠에서 법회를 열라치면 라다키들은 우선 길을 청소한다. 청소를 마친 후 달라이라마가 오기 전 몇 시간 전부터 길 양편에 가지런히 늘어서 카타(큰스님들이 불자들에게 가피를 내리며 걸어주는 흰 천)를 손에 들고 성하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양편에 선 불자들의 행렬이 늘 수 십 km를 넘는다니 그 존경의 정도를 짐작할만하다. 다람살라에서 달라이라마의 ‘teaching’이 있을 때 라닥의 불자들은 차비가 없으면 20여 일 씩 걸어서 법문을 들으러 가기도 한다.

스님들이 수행할 땐 존경의 뜻으로 법당에 발을 들이지 않는 라닥의 티베탄들은 오늘도 내일도, 마니콜로를 한 손에 들고 ‘옴 마니 반메훔’ 진언으로 흥을 돋구면서 척박한 땅을 개간하며 살아갈 것이다. 누군가 말을 걸지 않으면 그들의 입에선 늘 진언이 이어진다.

‘옴 마니 반메훔, 옴 마니 반메훔…….’


지운 스님/전 송광사 강원 강주
bhudam@hanmail.net

정리=남배현 기자 nba710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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