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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배운 지혜

기자명 법상 스님
내 안의 법계에 스스로를 맡기면

마음에서 우러나는 지혜의 소리 들려


얼마 전 지리산을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두 팀의 산친구를 만났다. 한 팀은 등산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충분히 갖춘 전문산악인이었고, 다른 한 팀은 그야말로 완전 초보로 뒷산 오르는 기분으로 상식적인 선에서 준비를 해오셨던 분들이다. 그러다보니 한 4일 산길을 걸으며 전혀 다른 산행의 양상을 두 팀에서 보았는데, 그 결과는 사뭇 의외였다.

첫날은 전자의 분들과 걸으며 대화를 나누었는데, 아는 것이 너무 많고 지식이 너무 많으니 대화를 나누면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걷다가 좋은 경치가 나오면 고민할 것 없이 그냥 주저앉아 느끼고 바라보는 것이 우리 모두의 마음일텐데, 이 분들은 대충 50분을 걷고 10분 쯤 쉬어야 몸에 좋다면서 그 경치를 마다하고 걷는다. 또 저녁 때 별빛이 너무 고와 도무지 잠이 들 수 없어서 한참을 별을 바라보며 흠뻑 감상에 젖어 있었더니 내일 아침 몇 시에 일어나 밥을 먹고 출발해야 한다며 꽉 짜여진 일정 때문에 일찍 잠에 드는 것이 좋을 것이란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후자에 만났던 분들과 대화를 나눌 때는 얼마나 마음이 편하고 싱그러웠는지 모른다. 상식 선에서 3일 산에서 머물려면 이정도면 되겠다 싶어 마음 가는대로 가방을 꾸렸고, 딱히 일정을 잡지 않았다 보니 경치 좋은 곳에서는 한참을 앉아 느끼기도 하고, 밤 하늘 별빛을 바라보며 여유있는 별자리 여행도 하고 말이다.

그 뿐 아니라 산행을 하며 모든 부분에서 전자의 분들은 지식이 많으니 그 지식에 내 몸을 의지하는 일이 많아지고, 후자의 분들은 사소한 지식들이 없다보니 그저 마음 가는대로 산을 느끼고 걸을 수 있었다.

아는 것이 많고, 지식이 많으면 그 지식으로 인해 정작 보아야 할 것들을 놓치기 쉽다. 산을 볼 때는 그냥 보고 느끼면 되지 거기에 무슨 지식이 필요하겠는가.

세상 모든 일들이 이와 같다. 수행하는 일도 잡다한 지식과 알음알이가 많다보면 수행에 대해, 마음공부에 대해 머릿속에서 정리하기 바빠 정작 직접 실천을 하는 일은 뒷전이 되고 말 때가 있다. 그래서 지식이라는 것은 나 자신의 텅 빈 맑은 시선을 가리고 왜곡시킬 때가 많다.

우리 몸은 완전한 하나의 소우주이고 법계다. 그대로 나 자신이 온전한 부처님이고 법신이다. 배 고프면 밥을 찾고, 또 부르면 뒷간을 찾고, 졸리면 자고, 짠 음식을 많이 먹었으면 알아서 물을 찾게 마련인 것. 물 흐르듯이 우리 몸도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마련인 것이다. 법계의 이치에, 내 안의 삶의 질서에 턱 맡기고 나면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밝은 지혜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그렇게 살 수 있다.

옛 스님들께서는 ‘배 고프면 밥 먹고, 부르면 똥 누는’ 평상심이 그대로 도라고 말씀하셨다. 근심 걱정이며 욕심과 집착, 알음알이를 다 놓아버리고, 다만 근본 불성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소리 없는 소리를 듣고 물 흐르듯 자유롭게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이다.


법상 스님 buda11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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