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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과 부석사

기자명 신경숙

아무나 가게하고 싶지 않은 산사

바다 물결처럼 퍼져 나가는

법고 소리들을땐 '마냥 행복'


몇해 전 일월 일일에 부석사에 간 적이 있다.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친한 사람이 되었지만 그때는 서로 매우 어려워했던 사람과 함께였다. 우리는 둘 다 부석사에 처음 가는 길이었다. 게다가 길은 얼어 있었고 또 게다가 운전은 내가 했다. 원주로 향했다가 제천으로 충주로 영주로 풍기로 해서 부석사에 이르렀을 때는 겨울날 오후 5시였다. 겨울엔 해가 일찍 떨어진다. 새해 첫날의 첫해가 지고 어두워지기 시작한 부석사 경내엔 단 한사람의 인적도 없었다.

<사진설명>부석사 전경.

우리는 그만 그 고요함에 단박 이끌려서 아주 가까이 서서 걸었다. 부석사로 오를 때는 멀리 소백산을 등지었고 내려올 때는 부석사라는 절을 등지었다.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눈 둘 데가 많은 곳이었다. 그런데도 내게 부석사는 해가 떨어진 겨울날의 아무도 없는 고즈넉한 절로 각인되었다. 그 유명한 무량수전이나 부석보다도 인적이 없는 경내의 그 적막과 어울리게 아무것도 꾸미지 않은 대웅전 앞에 서서 무엇인가를 소원했던 기억도 난다. 되돌아 내려오면서 문득 뒤돌아보았을 때 막 켜지기 시작한 불빛 또한 매우 은은하고 아름다웠다. 우리는 다시 떠난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동차에 오를 때까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에 절 한 채가 들어앉은 순간이기도 했다.

부석사에 다녀온 후 나는 “부석사” 라는 제목의 소설을 한편 썼다. 현실 속의 나는 부석사를 그 고즈넉함 속에 마음을 묻었지만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부석사에 이르지 못하고 눈 내리는 소백산 어느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걸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현실의 부석사는 길을 잃을 래야 잃을 수도 없지만 아무나 그곳에 가게 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그렇게 발현되었다.

가을이 끝날 무렵에 다시 부석사에 들렀다. 우연일까. 내가 부석사에 도착한 시간은 또 다시 오후 5시 무렵이었다. 그러나 가을날의 부석사는 겨울과는 또 달랐다. 빼어나게 아름다웠다. 사과밭엔 붉은 사과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고 그 길을 따라 늦은 오후인데도 사람들이 절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처음 왔던 때와는 정반대의 풍경이었지만 부석사는 그 많은 사람들을 다 싸안고도 고즈넉했다.

6시가 되었을 때 스님들이 법고를 쳤다. 나는 처음 보는 풍경이기도 했지만 그 웅장한 소리에 그만 마음을 뺏긴 채 오래 서 있었다. 스님들의 몸짓에 따라 바다 물결처럼 퍼져나가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던 그 시간은 행복했다. 나만이 아니라 그 곁에 둘러선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것 같았다. 어스름 속에 서 있는 사람들 죄다 그 순간만큼은 적어도 누구도 미워하지 않은 표정들이었다. 두 번 모두 인상적인 모습을 남겨준 부석사. 내가 이다음 세 번째 부석사를 찾아갈 때 어떤 모습을 또 보여줄까 사뭇 기대를 가지고 있다.


신경숙/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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