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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 전조명 감독의 '서산대사'(1972)

기자명 법보신문

영웅 이미지 강조 … 수도승 고뇌는 가려

겨울에도 햇살이 따뜻한 남도에서 태어난 필자의 마을엔 영화관이 없었다. 요즘은 채널이 많아 외국영화부터 한국영화를 거쳐 만화영화까지 리모콘으로 원격조정하여 볼 수 있는 볼거리의 천국에 살고 있다. 이제 겨우 30대 중반을 지났지만 시골에서 보낸 유년시절엔 거짓말같지만 연중행사로 영화를 보러갔었다.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에는 세뱃돈과 용돈을 합하면 극장 관람할 정도는 수중에 들어와 주머니를 털어 동네 친구들과 버스를 타고 읍내에 나가 영화를 보았다. 개봉관에서 영화 보는 편수는 1년에 한두 편이 전부였으며, 간혹 재개봉관까지 상영이 끝난 필름을 들고 다닌 천막극장이 마을에 들어오면 감상편수가 더 늘기도 했다.
가끔은 방학을 틈타서 서울에 사는 사촌 형과 동생이 내려오면 손님 대접차원에서 읍내에 극장구경 기회가 주어졌다.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 때 지금은 폐쇄됐지만 읍내 칠 거리를 지나 법원 못미처 우측에 장흥극장이 있었다. 그곳에서 ‘용왕 삼태자’와 ‘홍의장군 곽재우’같은 영화를 봤다. 특히 일본 왜군을 대항하여 의병군을 이끌고 싸우는 의병장의 활약상은 나라를 지켜야한다는 소박한 애국심과 백전불패의 영웅 이미지가 가슴깊이 새겨졌다.
미국영화는 주인공인 착한 총잡이가 악당을 물리치고 난 후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엔딩 크레딧이 오른다. 일본영화는 의리강한 사무라이가 주군의 복수나 자신의 복수를 성공적으로 끝낸다. 우리의 영화는 일본군을 대상으로 승리를 이끌며 주인공은 장렬하게 산화하거나 초인적인 힘으로 침략자의 무리를 파죽지세로 물리친다.
‘서산대사’는 무의식의 창고 속에 있던 유년의 관람 추억을 떠오르게 한 영화다. 첫 장면은 연꽃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태몽을 보여준다. 탄생의 신화는 그래픽으로 처리했으며, 첩보 수집 목적으로 침투한 첩자를 놀리는 장면 역시 코믹하다. 사찰 내에서 닭고기와 돼지고기를 내놓는 것 자체가 파계지만 대사는 첩자들에게 음식을 접대해 그들이 먹을 때 고기가 돌로 변하는 조화를 통해 웃음거리로 만든다. 동자승은 일본으로 귀국하는 이들을 나무에 메달아 버리고, 대사는 기생들을 돼지로 둔갑시켜 불교영화의 엄숙함을 덜어낸다. 일본이 침략하여 전국의 선방에 방을 붙일 때 대사의 친필 서한이 날아가 벽에 붙어 자고있던 수도승들이 의병 대열에 합류한다.
전쟁 장면은 개별 전투장면을 삽입하여 전쟁분위기를 살려냈다. 하지만 보다 공을 들인 장면은 대사가 물 수(水)자와 얼음 빙(氷)자를 허공에 던져 자연의 힘을 빌어 홍수를 일으키거나 계곡을 건너는 왜군을 얼어붙게하는 장면이다. 얼어붙는 왜군은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미흡하여 얼어붙는 과정을 실감나게 표현해 내지는 못했지만 정지화면으로 잡아내어 얼어붙은 이미지를 살려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통해 기술적 열악함을 극복하려는 연출자의 고심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호국불교 영화의 한계를 여실하게 드러낸다. 일본군을 물리치고 나라를 지키는 영웅이미지는 전면 부각에 어느정도 성공을 보였으나 살육을 해야하는 전쟁에 참여하는 수도승의 고뇌는 가려졌다. 또 일본군의 계략으로 모함을 받아 처형되는 작위성과 구름 속으로 사라진 서산대사의 신화화 등이 옥의 티이면서 당시의 호국불교 특징을 잘 드러낸 불교영화의 전범같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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