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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전강 스님 (1898∼1975)

기자명 권오영

현대 선종의 대표적 선지식

1975년 1월 13일 입적

전강(田岡) 영신 스님은 20대 초반에 개안(開眼)을 이루고 30대에 조실의 지위에 오른 현대 한국 선종의 대표적인 선지식으로 추앙 받는 인물이다. 특히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스님 등 당대 최고의 선지식을 찾아 직접 법거량을 통해 인가를 받는가 하면 육조 혜능과 마조, 임제의 사상을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함으로써 경허와 만공 스님 이후 선종의 맥을 잇는 가교 역할을 담당했다.

전강 스님은 1898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 나이 16세 되던 해인 1913년 유기 행상을 하다 만난 한 스님과의 인연에 의해 해인사에서 출가했다.

출가 이후 피나는 수행과 정진을 계속하던 스님은 도반이었던 사미승이 갑작스럽게 죽자 ‘삶의 허망함’을 깨닫고 이 때부터 만공 스님으로부터 ‘無’자 화두를 들고 구도의 길에 오르게 된다.

이후 직지사에서 6년 간의 고행과 당대 선지식이었던 제산·용성·만공 스님 밑에서 정진을 계속한 끝에 1921년 23살 되던 해 마침내 깨달음에 경지를 얻게 된다.


30대에 통도사 조실

이십대에 깨달음을 얻은 스님은 이후 운수행각을 하며 당대의 선지식인 혜봉·혜월·용성·한암·금봉·만공 스님 등을 찾아 수많은 선문답을 통해 그의 철저한 견성을 인가 받았다. 특히 스님은 1923년 그의 나이 25세 되던 해 덕숭산 금선대에서 만공 스님으로부터 전법게를 받고 선종 77대 법맥을 잇는 대선사로 명성을 날리게 된다.


‘지혜제일’ 명성 얻어

근대 선종의 중흥조였던 경허 스님의 오도송에 대해서도 허물을 지적할 정도로 선지가 밝았던 스님은 지혜 제일이라는 명성을 날릴 만큼 대중들에게 알아듣기 쉬우면서도 날카로운 선지의 법문으로 제방의 눈푸른 납자들에게 지혜의 등불을 밝혀줬다.

<사진설명>전강 스님이 주석했던 인천 용화선원.

33세에 통도사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 수도암 선원 등 전국의 선원에서 조실을 역임하며 후진을 양성하던 스님은 1962년 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화선원)을 건립하고 주석하면서 송담이라는 걸출한 제자를 남기기도 했다.

현대 한국 선종의 혜맥을 이은 전강 스님은 1975년 1월 13일 제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세수 77세, 법납 62세로 좌탈입망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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