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⑨UC 버클리대 파드마나브흐 자이니 교수

기자명 박창환

『아비달마 디빠』 출판… 범어-팔리 사본 연구가

3~4년 전 아프카니스탄의 탈리반 정권이 바미얀 대불을 파괴해 전 세계 불교학계가 들끓고 있을 때였다. 이 문제에 대해 답을 구하자 자이니 선생께서는 대뜸 범어 게송 하나를 읊으셨다.

불상과 불탑을 훼손하고 정법을 헐뜯는 자,
부처의 마음자리엔 손끝 하나 못 댈 지니,
내가 그들에게 분노할 것까지야 없지 않는가?
(Bodhicaryavatara 6-64 )

바수반두 논사의 현신인가, 바다와 같은 지혜 (sagaravidya)로 법을 구하는 자를 압도하는 자이니 교수는 반세기에 걸친 긴 학문적 여정을 통해 산스크리트어와 빨리어 사본의 연구로 세계불교학계에 큰 공헌을 남겼다.

특히 1959년 『아비달마디빠』 (Abhidharmadipa) 교정본의 출판은 프라단 교수의 『아비달마 구사론』 출판 (1967)과 함께 이 분야의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서구 불교 학계는 19세기 이후 실비안 레비 등을 중심으로 네팔 사본에 근간한 산스크리트 교정본의 출판을 지속해 오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근대 불교 사본 연구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긴 라훌라 상끄르티야야나가 티베트 샤류사에서 가지고 돌아 온 불교논리학 관련 마이크로필름으로 인해 산스크리트어 사본 연구에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유능한 편집자를 물색 중이던 파트나의 자야스왈 연구소는 당시 바라나시 힌두 대학의 빨리어 강사였던 20대의 자이니에게 『아비달마디빠』의 편집과 교정을 위탁한다. 교정에 착수한 자이니는 사본 수집 차 네팔로 가던 런던대의 죤 브라프 교수의 눈에 띠게 되고 초면에 영국 유학을 권유받게 된다. 런던으로 자리를 옮긴 자이니는 신속하게 『아비달마디빠』 (이하 디빠) 의 교정 작업을 마무리짓고 1959년에 이를 런던대 박사 학위 논문으로 제출함과 동시에 자야스왈 연구소에서 출판하게 된다.


59년 사본연구로 런던대서 박사

1930년대 오기하라 교수에 의해 야소미트라의 구사론소가 출간된 이후 아비달마 관련 학계에는 이렇다할 새 교정본의 출판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1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서론과 빨리 아비담마 및 프라단 교수의 미발표 구사론 교정 원고까지 참조해가며 각주에 공을 들인 『디빠』의 출판은 세계 학계에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었다. 서평에 까다롭기로 소문난 드용 교수조차도 몇몇 오자나 독법의 차이를 제외하고 『디빠』의 출판은 라 발레 쁘시엥의 구사론 불역(佛譯)이후 관련분야 최고의 성과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역이나 티베트어역이 존재하지 않고 전 텍스트의 2/3가량이 유실된 상태에서 배열도 분명치 않은 마이크로필름에만 의존한 채 문맥에 맞게 편집한다는 것은 초인적인 자질과 통찰력을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자이니 교수의 서론에도 잘 드러나 있듯 『디빠』는 바수반두의 구사론이 경량부의 입장에서 유부의 교의학을 재조명하는 방식으로 기술된 것에 반발하여 정통 유부의 입장을 변호하고 바수반두의 경량부적 편향을 비판한다. 이 점에서는 상가바드라 (衆賢)의 순정리론과 같은 유부 계열의 논서임이 분명하지만, 순정리론이 오직 한역으로만 전해져오는 반면, 『디빠』는 범어로 살아남은 유부계통의 유일한 논서라는 점에서 상당한 의의를 지닌다.

『디빠』는 또한 소위 소승 아비달마 논서로서는 드물게 바수반두의 대승적 편향을 “마구니의 목소리” (marabhasita) 라고 힐난하는 등 대승의 존재를 강하게 부정한다는 점에서 단연 주목할 만한 논서이다. 이 점과 관련하여, SOAS의 인도학 관계 저널을 통해 1958년에 발표한 「세친 이인설에 대해서」 (On the theory of two Vasubandus) 라는 논문에서 자이니 교수는 『디빠』에 보이는 바수반두 비판의 구절들을 근거로 당시 유럽학계에서 정설처럼 굳어져 가던 프라우발르너 교수의 ‘세친 이인설’을 논박한다. 『디빠』의 저자 (dipakara) 눈에 비친 바수반두는 단 한 사람으로 소승을 버리고 대승으로 전향함으로써 당시 보수적 승단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이해된다는 것이다.

금광석을 캐내는 광부의 심정으로 사본의 발굴과 출판을 통해 근대불교학의 처녀지를 차례차례 개척해가던 자이니 교수는 80년대 초, 당시까지 학계의 관심 밖이었던 자타카 문학의 동남 아시아적 전개에도 주목하게 된다. 그의 이러한 관심은 1981년과 1985년에 PTS(빠알리성전협회)에서 연이어 출간된 『빤냐사 자타카』 (Pannasa-Jataka) 의 교정본과 그 번역으로 결실을 맺는다. 『빤냐사 자타카』는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등지에서 빨리어로 구전되어 오던 오십 개의 전생담을 모은 것이다. 이『자타카』는 따라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빨리어 『자타카』와는 달리 불교가 동남아시아로 유입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지역불교인들의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각색된 지역판 전생담이라는 점에서 귀중한 문헌 자료인 셈이다. 교토의 오타니 대학에 최근 설치된 판냐사 자타카 연구 프로젝트는 자이니 교수의 이러한 안목과 연구가 얼마나 선구적이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최근 교토를 다녀간 태국 출라롱콩 대학의 피터 스킬링 교수도 불교 설화 문학의 지역적 전개에 일찍부터 주목하고 텍스트 발굴과 번역에 착수한 자이니 교수의 업적을 인정하는데 결코 인색하지 않았다.


자타카 연구로 동남아 설화문학 주목

세계 불교학계에서는 보기 드문 인도출신의 불교학자이면서, 동시에 태생적으로 자이나 교도였던 자이니 교수는 여타 문명권의 학자들이 가질 수 없었던 독특한 자신만의 시점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인도사상사를 국외자의 비판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 네이티브의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도 불교나 자이나교 등을 힌두 브라흐만 사상의 방계 정도로 파악하는 여타 인도 출신 학자들과는 달리, 슈랴마나 (沙門) 전통이라는 인도사상의 또 하나의 큰 흐름 속에서 파악한다는 점이다.

1979년 출판된 자이나교 입문서인 ꡔ자이나 청정의 길ꡕ (The Jaina Path of Purification)은 주류의 편견을 넘어 소위 비주류의 시점에서 인도사상사를 다시 파악하고자 하는 자이니 교수의 균형 잡힌 시각이 잘 반영되어 있다. 이 책에서 자이니 교수는 방대한 분량의 원전 연구에 기초해 브라흐마나와 슈라마나 두 전통을 종횡으로 넘나들며 해탈이라는 인도문명 전체의 관심사에 대한 자이나교적 해법을 교리와 역사, 문화적 배경에 이르기까지 특유의 역동적이고 총체적인 필치로 기술한다. 자이나 연구의 또 한 명의 권위자인 영국의 폴 둔더스 교수로부터 서구에서의 자이나교 연구는 이 저작을 통해 Pre-Jaini 와 Post-Jaini로 나뉜다고 할 만큼 『자이나 청정의 길』은 자이나교 연구사에 한 획을 그은 기념비적 노작이다.


인도-불교학 회통… 인도사상사 재정립

자이니 교수의 거의 두 세대에 걸친 방대한 연구 성과, 특히 그의 아비달마 관련 연구의 진가를 간파하고 음미할 수 있었던 곳은 역시 일본이었다. 예컨대, 아비달마연구의 중심지인 교토 오타니 대학의 사꾸라베 선생과 자이니 교수가 벌인 지혜 (prajna) 의 성격에 대한 논쟁은 지금도 일본 연구자들에게 회자될 정도이다. 하지만 아비달마 연구에 관한한 법상종 계열의 독자적인 주석전통과 사종 고전 언어 사이의 텍스트 비교 연구라는 근대적 방법론을 중시하는 일본 불교학계가 인도 아리안 문헌 중심의 자이니 교수의 연구에 결코 후한 점수만을 준 것은 아니다. 인도학 연구자로서의 불교학 연구가 보여주는 본질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우연일까, 필자는 2001년도 불교학 세미나라는 일본 잡지의 서평란에서 자이니 교수가 최근에 편집한 PTS본 빨리어 텍스트가 여전히 비중 있게 다뤄지고 관련분야 연구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또 하나의 기본 텍스트로 취급받는 것을 보고 입가에 스쳐가는 미소를 지울 수가 없었다.


박창환/ 교토 오타니 (大谷) 대학 연구원

chp@uclink4.berkeley.edu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