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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현장의 생애 2

기자명 법보신문

20대에 석문천리마로 불려, 30세 때 인도로 구법여행

현장은 형주에서 북상하며 상주(相州: 하남성 안양) 및 조주(趙州, 하북성 조현)를 지나게 된다. 이 사이 조주에 있던 도심(道深)에게서 『성실론』을 배운다. 당시 현장의 구학 순례에 관해서 기록은 “두루 뭇 현인을 뵙고 들은 바를 곰씹었다.”(遍謁衆賢 備餐其說)(『대당대자은사삼장법사전』)고 전하고 있다. 현장이 당 나라 때 수도이자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던 장안에 입성한 것은 625년, 그의 나이 26살 때이다. 장안은 당시 세계적인 무역 거점 가운데 하나였으며 실크로드의 기점이자 종착지였다. 장안에서 현장은 도악(道岳) 및 승변(僧辯)에게서 『구사론』을, 법상(法常)에게서 『섭대승론』을 배우는데, 당시 명성이 자자했던 법상과 승변 두 사람은 현장의 그릇이 큼을 알고 ‘석문의 천리마(釋門千里駒)’(『대당대자은사삼장법사전』)라는 애칭을 붙여준다.

현장의 지적 순례는 『열반경』, 『법화경』, 유식사상, 아비다르마 불교 논서 등 폭넓은 영역에 걸쳐 있었지만, 그의 구도 지역이 주로 지론학과 섭론학이 성행했던 곳과 겹치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남북조 시대 불교 사상계의 지배적인 담론이었던 불성(佛性)의 문제가 그의 관심을 사로잡았던 것 같다. 현장이 인도로 긴 구법 여정을 떠난 이유도 바로 이 점에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장안을 떠나며 고창국의 왕에게 보낸 『계사고창왕표(啓謝高昌王表)』에서 현장은 “부처님께서 깨친 일미(一味)의 세계가 당상(當常)과 현상(現常)으로 갈리고, 대승의 한결같은 종지가 남도와 북도로 나뉘어, 쟁론이 분분한 지 이미 수백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결착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자신이 인도로 유학간 동기를 밝히고 있다. 현장은 유식 사상에 대한 좀 더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서 당시 시대 사상의 난문, 곧 지론학 남도파와 북도파의 이설, 섭론학과 지론학의 갈등을 해소하고 싶었다. 이 때문에 후에 나란다 사원에서 수학할 때 스승인 계현(戒賢)이 현장에게 유학 목적을 묻자, 현장은 “스승에 의지해서 『유가사지론』을 배우러”(『대당대자은사삼장법사전』) 왔다고 대답한다.

현장이 언제 장안을 떠나 인도로 갔는지 그 정확한 연도에 관해서는 학설이 구구한 편이다(정관3년 설, 정관2년 설, 정관원년 설). 양정복(楊廷福)의 『현장연보』(1988년, 중화서국)가 나온 후 정관 원년 곧 627년 설을 취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중국 학계나 일본 학계에서는 대체로, 『대당대자은사삼장법사전』, 『대당서역기』, 『법원주림』 등의 기술에 따라, 정관3년 설 곧 629년 설을 취하는 형편이다. 검토의 여지는 남겨놓기로 하고 여기서는 통례를 좇아 629년 설을 택하기로 하자.

629년(30살) 당나라 조정은 백성들이 장안성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몇 년 동안 굳게 닫혀있던 성문을 여니, 이 때를 틈타 현장은 인도 행에 나서게 된다. 현장은 주로 서역 출신의 상인들 및 서역 제(諸)국가의 왕의 비호를 받으며, 란주-고장(감숙성 무위)-돈황에서 이오(신강 합밀)-고창-아기니(신강 언기)-굴지(신강 고차) 등 실크로드 북도와 우즈베키스탄-아프가니스탄 등 중앙아시아 지역을 거쳐 북인도 카쉬미르에 이르렀으며, 이 후 633년(34살)에 유학의 최종 목적지였던 중인도의 나란다 사원에 도착한다. 나란다 사원은 당시 인도 불교문화의 중심지였으며 또한 불교의 최고 교육기관이기도 하였는데, 계현을 수장으로 삼아 승려 수천 명이 운집해 있었으며, ‘삼장법사(三藏法師)’로 떠받드는 뛰어난 학승만 해도 10명이나 되었다. 현장은 계현을 스승으로 모시고 전후 두 차례에 걸쳐 모두 7년간 나란다 사원에 머물면서, 원래의 유학목적이었던 유식 사상을 배우는 한편 타학파의 철학까지도 폭넓게 익혔으며, 사이사이 인도 각지의 불교 유적지를 순례하며 불상, 불사리, 그 외 불교의 범본 사본을 수집하는 등 치밀한 귀국 준비 작업을 하였다.


이종철(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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