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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국적 조각은 사양” 한국조각의 자존심 지켜

기자명 박영택

조각가 강용면

<사진설명>강용면 조각가는 한국인의 표정과 익살, 색채를 조각으로 끌어들여서 한국적인 조각의 위상의 당위성을 찾고 있다.

“우리 전통문화 속에 깊이 묻혀있는 민화, 무신도, 보자기무늬나 우리 조상들이 사용했던 일상의 기물들. 거기에서 우리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색과 조형성을 찾아내어 내면 속에 깊이 잠재되어 있는 특유의 여유와 은근한 모습을 조형적으로 구현하고 싶다”(작가노트)


미소-익살-오방색서 한국 美 조각

강용면의 작업은 무엇보다도 친근감이 돈다. 그 친밀성의 두툼하고 포근한 매력에 잠겨있으면 유머와 해학, 재미와 신명 같은 동일민족성의 깊고 보편적인 미의식의 질긴 띠와 만나는 느낌을 갖게 된다. 자잘한 공예적 손놀림과 장식적인 매력에서 은연중 풀려나가는 감각미, 달콤한 묘미에 지긋이 달구어진 작업에서 풍기는 안락함이 때로 너무 이쁘고 장식적이란 느낌도 들지만 필자는 이 작가의 이런 솜씨에 언제나 빨려 들어가고 있다. 느낌이 좋고 재미있고 그래서 구수한 인간성의 친밀감, 넉넉하고 인정 있는 인간의 특별한 정이 작업에도 배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이미지의 주술성을 여전히 새롭게 환기시켜내는 멋이 있다.

전북 옥구에 있는 농협창고를 개조한 그의 작업실에 두 번 찾아갔었는데 그 드넓은 평야지대의 고요와 푸근하고 유장함, 백제문화의 온화한 정신성이 어딘가에 묻어 있을 것 같은 그런 분위기가 배어 있다고나 할까. 창고, 작업실 안 이곳 저곳에 는 사당,단청,호랑이,동자상,장군상,돌장승,민화나 무신도 속의 인물, 보자기 등을 새롭고도 유머스럽게 연출해놓은 작업들이 사이좋게 어울려 있었다.

강렬한 한국적 오방 색의 색채감각이 살아있고 또한 불교적, 민화적, 신화적 도상들로 얼룩진 세계가 이야기조각으로 연결되고 잇대어지면서 독특한 상황을 연출해주고 있었다. 그곳에서 들려오는 울림이 풍부한 얘기란 것은 다름아니라 문화적 회고의 심층을 자극하는 것들이다. 우리 것에 대한 향수와 전통에 대한 작가의 모색, 한국적인 조각의 자리 찾기에 따른 탐색의 흔적이랄까 혹은 한국인이 심층 기저에 자리한 원형적인 미의식, 삶에 대한 인식과 사유 같은 덩어리들이 물질화 되어 자리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근작은 주왕신의 누런 밥그릇이 커다란 스케일로 만들어졌고 그 안에는 노란 종이꽃이 가득 담겨있다. 원래 주왕신 밥그릇은 놋그릇으로 만들어지며 앞으로 닥칠 일들을 대비해 한끼의 밥이 담겨지는데 식사를 하지 않고 불시에 찾아올 어떤 손님을 위해 끼니때마다 밥이 지어지면 솥에서 제일 먼저 이 그릇에 밥이 담겨지고, 곧바로 주왕신에게 바쳐졌다고 한다. 예측할 수 없지만 머지 않은 앞날을 대비해 누군가에게 기운이 될 수 있는 따스한 정성을 미리 부엌 한 켠에 마련하려 했던 우리 선조들의 간절한 믿음과 기복의 염원의 상징이다.

사실 따뜻한 기운이 모락거리는 밥 한 그릇만큼 소중하고 값진 것이 없을 것이다. 생명이자 기운을 만들어내는 것이며 나눔과 베품의 은유이기도 하다. 그 모양을 형상화한 것이 사실 ‘기(氣)’자에 다름 아니다. 강용면은 그 밥과 밥그릇을 둘러싼 한국인의 기층심리와 문화를 초현실적으로 드러낸다. 나아가 그 밥 그릇 안에 상여를 장식하는 노란 상여 꽃들이 밥알처럼 가득하다. 삶과 죽음이 한 밥 그릇 안에서 구별 없이 존재한다. 어쩌면 생사는 없는 것이다. 그 구분이나 경계는 무의미하다. 나는 그가 만든 저 거대한 밥그릇에 가득 담긴 상여 꽃의 노랑에 마냥 취하면서 삶과 죽음의 부질없는 가늠과 구분을 슬쩍 지워나가는 꿈을 꾸어본다.


불교-무속 소재 작품 인상적

그런가하면 나무토막을 깎아 뭇생명체를 만들고 그 위에 강한 채색을 한 작업이 눈에 들어온다. 개, 양, 돼지나 말, 나무와 꽃, 사람 등 삼라만상이 다 들어와 있는 듯 하다. 그는 자잘한 조각들을 짜맞춰 한데 뭉쳐놓거나 바닥에 늘어 뜨려 놓았다. 그런가하면 공간 이곳 저곳에 흡사 파종하듯이 그것들을 부려놓았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모여있고 얽혀있고 본래되로 공생한다. 그 작은 부분들은 그 자체로 완결적이고 자족적이자 동시에 그것들이 모여 군집을 이룬다.

그것은 일종의 연기적 생태계를 연상시킨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그렇게 서로가 유기적으로 연루되어 있다. 모든 것들은 인연과 관계의 그물망에 잡혀있다.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소중하다. 그러므로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나아가 하찮은 미물일지라도 부처님의 참 생명을 간직하고 있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메시지다.
초기에는 각기 독립된 개별적인 요소들을 결합시켜 무대와 유사한 공간을 창출하면서 짙은 민속적, 무속적인 분위기로 충만한 서술적 조각을 선보이면서 그로 인해 번져 나오는 채색과 그 형상의 변주에서 기인하는 낭만적 유머와 해학이 돋보였다면 최근에는 보다 정신적이고 심층적이자 동시에 설치 예술적인 연출과 전통의 깊이를 충격적으로 깨닫게 하려는 전략이 두드러지게 검출된다.

강용면의 작업들은 한결같이 우리 선조들의 민중적 신앙관, 인생관, 세계관을 함축해서 드러내놓는데 관심이 있다. 작가 마음의 배려가 충실하게 연출되어 있는 그의 목조조각은 고졸하고 소박하고 여유롭다. 거기에서 우리는 이 작가가 전통을 해석하고 그것을 조각으로 구현해내는 솜씨와 우리 것을 거의 체질적으로 농밀하게 드러내는 그 예사롭지 않은 문화적 인식의 강도와 밀도를 접한다. 동시에 그를 상대적으로 구분 지어주는 것은 단순히 전통적인 요소들의 차용이나 해석의 단조로운 선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조각의 정당성을 우리 전통조각에서 찾아보려 애쓰는 자세이다.

우리의 근대조각은 한국의 전통조각과는 관계가 없는 새로운 시점에서 출발했고 서구조형어법의 수용과정에서 단편적이고 무분별한 답습과 우리 조형언어에 대한 주체성의 확인이 없는 상황에서 이식된 관념과 양식 속으로 부단히 함몰해간 역사에 다름 아니다. 한국에서 현대조각의 정착은 삼국 시대 이래의 조각적 전통에 대한 자각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서구조각의 수용을 통한 조각예술에서의 각성을 통해 이루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서구조각에 대한 연구를 한 다음에 전통적인 우리 조각과의 접목을 시도하려는 노력이 그만큼 부족했고 또한 전통의 근거를 우리 나라에 두지 않는 무국적의 사고가 팽배한 결과인 것이다. 나아가 애초에 우리에겐 조각이라 부를 만한 것이 있지도 않은 것으로 교육되고 그래서 마음 편하게 일본을 통해 받아들인 서양조각으로부터 시작했다는 것이다. 모든 장르가 마찬가지지만 우리 미술의 근대는 ‘서양예술이 언제 소개되고 언제부터 한국인이 익혀서 재현하게 되었는가를 살펴 근대화를 축적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 온 것이다.


연기-공생철학 배어있어

최근 우리전통조각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아울러 한국성, 한국적인 조각 또한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형편에 필자는 강용면이 추구하는 우리 전통조각의 현대적 구현에 상당히 호감이 가는 편이다.

그는 우리 나라 근대이전의 조각들 크게 불교조각, 초상조각, 능묘조각, 민족신앙에 의한 조각 등으로 구분되는 것들을 탐구하면서 특히나 장승, 남근석, 당집의 신상, 무신도, 내소사의 꽃창살, 대둔사의 천불상, 나한상, 동자상, 민간신앙의 미륵불상 등을 끌어들여 이를 현대적으로 구현해 놓는다. 무엇보다도 그는 무속화, 무신도에서 엿볼 수 있는 특정한 신의 형태나 용모 등을 조각으로 구현해 그 한국적인 표정, 신체비례, 색채감과 우리민족의 기본적인 기복 신앙, 그 무의식의 기저에 깔려있는 보편적인 문화적 지층을 가시화 한다. 무엇보다도 따뜻하고 온화한 마음씨로 무던하고 부드러운 고졸한 표정, 모나지 않은 선과 화려한 색채의 미를 가장 솔직하게 표현해내고 있는 전통예술에 이 작가가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통화나 민화, 종교화인 무신도 및 신앙이나 장엄을 위주로 한 불교의 탱화나 불화 등을 자유롭게 차용하고 이를 세련된 연출로 부려놓으면서 문화적 환기를 자극하는 점이 그만큼 독자하다. 그 안에 한국적인 심성과 미의식이 질펀하게 녹아있다. 특히 이 작가가 무신도에 관심을 갖는 것은 바로 그 무교에 있다고 여겨지는데 사실 무교란 우리에게 가장 오래된 종교인만큼 무교 속의 무속화나 나아가 한국의 전래 토착신앙 및 그것과 불교와의 습합 과정에 주목하고 그 바탕 속에 깔려있는 의미나 상징성을 찾아내는 일이 그의 작업이다. 이는 민족정신을 찾는 일이며 우리 민족성, 미의식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아울러 그가 백제문화의 영향권내에서 온화하고 서민적인 백제미술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다고도 여겨진다. 익살스럽게 재현된 그의 조각은 한국인의 표정과 익살, 색채를 조각으로 끌어들여서 한국적인 조각의 당위성을 찾고 그를 바탕으로 현대적 조형체험을 가미해 우리조각을 찾아나가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전통이란 것이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에서 지난날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사상, 관습, 행동 따위의 양식 혹은 그것의 핵심을 이루는 정신’이라면 그 정신의 정체를 탐구하고 이를 조형적으로 담아내려는데 것이 그의 작업이다.


박영택/미술평론가·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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