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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사명당이 日 겐끼츠 스님에게

기자명 이재형

조선 포로 구하려는 노승의 고심 엿보여

서역에서 온 한 가락 곡조를 일찍이 형들과 같이 불다가, 갑자기 헤어진 지 어제 같은데 두 번이나 봄과 가을이 바뀌었으니, 참으로 무정한 세월 번갯불처럼 빠르구려.

멀리서 생각하면 엔코우지(圓光寺)에서 노형(老兄)의 큰 법력으로 그 섬의 백성들을 구제하고 있으니 참으로 놀랍고 장한 일이오. 지난번 내가 선사(先師)의 명령으로 그대들의 나라에 가서 노형과 여러 스님들을 만나 임제(臨濟)의 선풍(禪風)을 담론했던 일들이 아직 생생하오.

당시 나의 소원은 우리 백성들을 모두 데리고 돌아와 ‘생명을 두루 구제하라’는 선사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었는데 그 원을 이루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와 매우 서운하였소.

나는 서쪽으로 돌아온 뒤로 몹시 병들고 쇠약하여 이내 묘향산에 들어가 스스로 분수를 지키면서 죽기를 기다렸더니 마침 그곳에 가는 사람이 있다 하기에 노형의 고요한 봄꿈을 깨우게 된 것이오. 부디 형은 중생을 구제한다는 원으로써 대장군에게 아뢰어 우리 백성들을 모두 돌려보내도록 한다면 못내 다행한 일이겠소. 이 변변찮은 물건이나마 웃고 받아 주기를 바라며 이만 그치오.




입적하기 두 해전

왜장의 군사고문에게

간곡한 당부의 글 보내



이 편지는 사명당 유정(1544~1610) 스님이 입적하기 두 해 전인 1608년 봄 무렵에 쓴 편지다. 교토의 겐끼츠(元佶, 1548~1612) 스님에게 보낸 이 편지에는 전쟁으로 끌려갔던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사명당이 만년까지 얼마나 고심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는 일본으로 끌려간 10만 여명의 조선인들이 그들의 무자비한 칼날에 목숨을 잃고 살아남은 사람마저 노예로 전락하는 상황 속에서 그들을 본국으로 송환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이런 까닭에 도쿠카와 이에야스의 군사고문으로 그의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는 겐끼츠 스님에게 조선인들을 돌려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달라는 당부의 글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사명당하면 임진왜란을 떠올릴 만큼 그는 난세에 맞서 가장 치열하게 살다간 사람이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심은 원래 중생을 구호(救護)하시기 위함인데 이에 도적이 심하여 백성을 함부로 해칠까 두려우니 내 어찌 앉아 있겠는가. 내 미친척 적진에 들어가 그들의 흉한 칼날을 휘두르지 못하게 하면 곧 자비의 가르침을 버리지 않음이라.”

수행에 전념하던 사명당은 전쟁이 일어나자 죽비 대신 칼을 들었다. 의병장 김덕령이 칭송했듯 공명심이나 국가의 명령 때문이 아니라 ‘옳음’을 위해서였고, 더 많은 생명들을 살리기 위한 자비심의 발로였다. 사명당의 수많은 공적을 전해들은 선조는 “사명당이 환속할 경우 삼군을 통솔하는 장군으로 임명하겠다”고 권유했으나 그는 출가자로서의 길을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고 오대산에서 정진하던 스님은 스승 서산대사의 입적소식을 듣고 묘향산으로 향하던 중 선조의 갑작스런 요청으로 일본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아마도 사명당은 스승의 장례에 참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소 ‘고통 받는 중생을 외면하지 말라’는 스승의 간곡한 당부를 잊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때가 스님의 나이 61세인 1604년. 노구를 이끌고 수만리 길을 떠난 사명당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의 담판으로 마침내 2년만에 조선인 3000여 명과 함께 귀국한다. 그러나 스님은 그곳에 남은 수많은 사람을 떠올리며 3000여 명이야 오히려 ‘빈손’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스님은 일생은 구도자, 전략가, 외교가, 시인의 다면불(多面佛)로 나타난다. 유독 스님과 관련된 신화적인 요소들이 많이 남아있는 것도 그에 대한 백성들 애정과 감사의 마음과 무관하지 않을 듯 하다. 출가자로서 칼을 잡았던 것에 대해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힘없는 사람들을 자신의 목숨보다 귀중히 여긴 스님의 생애와 사상은 후인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스님의 편지는 『사명대사집』에 실려 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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