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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보살이 화신으로 나툰 까닭은

기자명 이미령

중생의 근기에 따르기 때문이다

아주 큰 부잣집에 어린 외아들이 있었는데 무단으로 가출하여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한 시도 잊지 않았지만 아들은 자신의 신상에 관해서는 죄다 잊어버리고 거지처럼 떠돌아 다녔습니다. 수십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우연히 자신이 태어난 고향거리에 들어선 아들은 눈을 의심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갑부의 행차를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자신의 아버지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들은 고작 ‘어쩌면 왕보다 더 부자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세력도 막강할 텐데 만일 내가 왔다갔다 하는게 눈에 거슬리기라도 하면 나를 붙잡아다 학대하고 종처럼 부릴지도 모른다. 도망가자.’ 이렇게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도망치려던 아들을 알아본 아버지는 너무나도 반가운 나머지 아랫사람을 불러 무조건 잡아오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거지 아들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발버둥을 쳤고 그런 모습을 본 갑부 아버지는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꾀를 내었습니다.
일단 풀어준 뒤에 하인들을 다시 보내어서 딱 어울리는 일자리를 줄 터이니 가보자고 꾀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은 거지 신세만큼은 면하게 해준다는 하인들의 말에 솔깃하여 따라왔습니다. 아버지의 집에 들어와서는 가장 천한 일을 하며 지냈습니다. 그게 마음 편하였기 때문입니다. 한참 동안을 천한 일하며 지내다가 어느 정도 숙련되면 신분을 조금 높여 주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아들은 처음의 거지 신분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자신이 부잣집의 집사 정도 되는 신분이라고 여기게 되었던 것이지요. 빌어먹고 홀대받던 처지에서 완전히 벗어나 어엿한 재산관리인으로까지 승진하게 되자 임종을 앞둔 아버지로부터 엄청난 출생의 비밀을 전해듣게 되었습니다.
이때 그 아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오래 전에 무작정 잡아오려 했을 때 보인 반응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물론 놀라기는 하였겠지만 이미 아들의 마음자세는 매우 성숙해 있었기 때문에 담담하게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자신의 자리를 찾아 집안을 잘 이끌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법화경 신해품』)

‘방편’이란 말은 어딘가에 다가가게 한다, 또는 다가가게 하려고 내는 지혜를 뜻합니다.

부자 아버지가 처음에 거지 아들에게 보인 태도는 전혀 현명하지 못하였습니다. 만약 거지 아들이 냉큼 따라갔다 해도 그는 거지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여 아버지의 아들로서의 위상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취하였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합니다. 화려한 비단옷만 몸에 걸쳤을 뿐 그의 몸체는 한 끼 빌어먹는 것이 전부였던 거지의 습(習)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에게 아버지의 자리에 다가가게 하려고 내었던 꾀가 바로 방편입니다.

거지 아들이 본래는 고귀하고 부유한 집안의 외아들이었던 것처럼 우리들 각자도 나고 죽는 윤회의 갈래를 처음부터 벗어나 있는 부처의 씨앗(여래장)인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을 실감하지 못한 채 오래도록 익혀온 나쁜 습관에 젖어 태어나고 죽는 것이 당연한 듯 여기며 그 속에서 욕심내고 성내고 그릇된 견해에 빠져 있는 것은 마치 거지 아들이 자신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까맣게 잊고 지내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니 부처님이 얼마나 다양하고 단계적인 방법들을 생각해내셔야 했겠습니까?

석가모니 부처님이 중생들의 수준에 맞추어 법문의 내용에 차례를 두는 방편을 주로 사용하셨다면 부처님의 전령인 관세음보살은 구제를 청하는 중생의 수준에 딱 맞게 스스로의 겉모습을 바꾸는 방편을 주로 쓰셨습니다. 무려 30가지가 넘는 변화된 몸(化身)으로 말입니다.


이미령/동국역경원 역경위원

lmrcitt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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