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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닦을 것도 없고 깨칠 것도 없습니다”

기자명 채한기

각화사 태백선원장 고 우 스님

<사진설명>각화사에서 10여분 산 위로 올라가면 고우 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서암이 있다. 고우 스님은 서암에 머물며 납자들을 제접하고 있다.

경북 봉화 태백산 자락에 자리잡은 각화사 태백선원. 이 선원에서 22명의 수좌들은 지난 2002년부터 15개월 동안 하루 3시간만 자면서 15시간씩 15개월 동안 화두를 참구해 왔다. 해제를 하루 앞둔 2월4일 가행정진한 스님들의 모습이라도 보고 싶어 교계와 일간지 기자들이 선원을 찾았지만 대중공사를 통해 통고된 것은 ‘취재 불가’였다. 사실 ‘불가’라기 보다는 ‘사양’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이유인즉 “아직 깨닫지 못했고 공부도 한참 멀었는데 무슨 할 말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급기야 태백선원장 고우 스님이 선원에서 내려와 “먼길 오셨는데 송구스럽게 됐다”며 선원 취재는 “다음 기회로 돌리자”고 부탁했다. 기자들은 스님과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고 이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고우 스님을 인터뷰 했다.



본래 깨치고 닦을게 없어

-.우리 선가는 ‘돈오돈수’와 ‘돈오점수’로 나누어 수행을 바라보는 것이 상례인데 스님은 ‘무돈무수’를 말씀하십니다. 깨달음이란 무엇이라 보시는지요.

<사진설명>범종루에서 바라본 각화사 대웅전.

“우리 지금 다들 차 마시고 있지 않습니까. 이게 깨달음입니다. 보고 듣고 하는 그 자체, 모든 존재를 그대로 보는 게 깨달음입니다. 모든 중생은 본래 부처입니다. 그러니 무엇을 깨치고 닦고 할 게 없는 겁니다. 무엇을 닦는다고 한 그 거기서부터 이미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깨달음이 무엇을 증득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 또한 착각일 뿐입니다. 우리 한국선은 그런 착각을 깨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스님은 납자들을 제접하면서 화두를 주시는지요.

“평소 화두를 주지 않지만 최근에 몇 분에게 주었습니다. 큰 스님들이 입적하시니 주위 사람들이 이젠 제가 화두를 주어야 한다고 자꾸 권하더군요. 그러나 저는 처음부터 화두를 의심하라고 주지 않습니다. 옛 선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본래 부처임을 지금 당장 깨달으라고 화두를 던지는 것입니다. 근기에 따라 바로 깨닫기도 하고 오래 걸리는 사람도 있는 겁니다. 당장 모르면 화두를 놓고 ‘이게 뭐지’하며 의심하는 것입니다. 의심할 때는 크게 의심해야지요.”

<사진설명>22명의 수좌 스님들이 15개월 동안 가행정진한 태백선원.

-.재가불자 중에도 선정에 드는 분이 많습니다.

“한국 선에서 말하는 선정과 보통 일반인들이 말하는 선정은 확연히 다릅니다. 보통 선정에 들었더니 몇시간 며칠이 잠깐사이에 지났다고 하는데 이것은 적적(寂寂)한 상태입니다. 문제는 그 때 화두가 살아 있었냐 하는 것입니다. 아무 생각도 없이 몇시간 몇날 지난 것을 두고 선정삼매에 들었다고 생각한다면 그 또한 착각입니다. 화두가 성성해야 합니다. 이를 일러서 성성적적(惺惺寂寂)이라고 합니다. 불자님들도 이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연기-중도 알아야 지혜 생겨

-.수행하고자 하는 불자가 갖춰야 할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요.

“정견(正見)이 생겨야 합니다. 정견이란 중도연기로서 모든 것을 이해하는 능력이 생긴 것을 말합니다. 팔정도에서 정견이 맨 앞에 있지 않습니까? 정견이 없으면 뒤의 나머지는 하나도 안 됩니다. 정견이 생겨야 연기에 대한 이해도 생겨납니다. 연기를 알아야 공을 알고 중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중도연기를 바르게 이해하면 지혜가 생겨납니다. 지혜가 생겨야 우리의 착각도 단박에 깨트려버릴 수 있는 겁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갈등으로 점철돼 있습니다.

“옛날에도 지역갈등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우리 한 번 다시 통합해 보자’는 말이라도 했는데 지금은 양극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내가 살아야 하니 너는 사라져라’는 식이지요. 그래서 저는 모든 사람들에게 ‘중도’를 강조합니다. 불교의 중도를 이해하면 그런 양극 현상은 없어집니다. 중도 입장에서 보면 모든 것이 연민으로 다가옵니다. 연민의 정이 솟으면 공생을 생각하고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됩니다. 우리사회도 중도사상에 입각해 조금씩 변해가야 합니다.”

-.경쟁사회에서 중도를 지키며 공생한다는 것은 실로 어렵지 않습니까.

“권력, 명예, 물질을 추구하는 것은 경계에 끄달리는 것입니다. 이 경계에 걸려들면 승진이니 경쟁이니 하는 것들이 차고 들어 오지요. 모두가 공인 줄 알고 집착을 버려야 합니다. 비교 안하는 마음, 실체가 없다는 그 자리, 공이라는 그 자리를 알고 나면 비교를 하지 않습니다. 실체가 없는 공심(公心)으로 바라보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 대립하는 마음도 사라져 공심으로 서로 협조하면서 보람과 즐거움을 갖게 됩니다. 그러면 스스로 향상되면서 매일매일이 즐겁습니다. 무한향상(無限向上)하는 거지요. 이 사회가 무한경쟁을 지양하고 무한향상을 지향한다면 아주 멋진 사회가 되는 겁니다.”



명실상부한 선센터 건립 기대

-.혹 한국불교계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대중과 좀더 가까이 할 수 있는 선센터가 많이 생겼으면 합니다. 최상승의 간화선을 좀더 대중과 가까이 다가가게 하려면 선센터가 많이 건립되어야 합니다. 명실상부한 선센터가 우리에게 있다면 우리 불자는 물론 외국인들의 참여도 많을 것입니다. 그런 선센터가 생기면 저도 한 번 직접 나서서 지도해 보고 싶습니다.”

인터뷰가 끝난 후 밖을 보니 몇 시간 전의 보름달은 온데간데 없고 각화사 경내에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고우 스님의 지도를 받은 22명의 수좌 스님들은 모두 달을 가르킨 손가락에 머물지 않고 달을 보았을 것이다. 결제 기간 동안 정진한 스님들 가슴에도 태백선원 도량에 내리는 눈처럼 멋진 함박눈이 내리고 있을 것이다.


봉화=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com


#고우 스님의 출가 인연

폐병 요양차 산사 왔다가 출가

고우 스님은 항상 “나는 장좌불와나 용맹정진 같은 그런 치열한 공부 경험도 별로 없어 내세울 게 없다”고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선방 수좌들로부터 한 몸에 존경을 받아 온 스님이다. 청암사 수도암으로 출가한 스님의 출가 인연은 의외로 간단하다. 1961년 세속 나이 25세 때 폐병에 걸려 청암사로 요양하러 절에 갔다가 수도암에서 그대로 출가했다.

용주사에서 관응 스님으로부터 기신론을 수학하고, 청암사에서 고봉 스님에게 금강경을 공부한 스님은 상주 남장사에서 혼해스님으로부터 금강경과 원각경을 배운 후 선원으로 들어갔다. 스님 세속 나이 29살 때 금강경을 공부하고 참선을 하겠다는 원력을 세웠다고 한다. 향곡 스님이 조실로 주석하고 있던 묘관음사 선방으로 간 스님은 당시 활안, 기성 스님과 함께 정진했다. 향곡 스님으로부터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한 물건도 아닌 이것이 뭣꼬?’하는 화두를 받았다. 스님은 이후 40여년을 수행에만 정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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