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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만나는 보살들에게 손가락질하지 않으셨습니까?

기자명 이미령
당신은 지금 누구를 만나고 싶습니까?

영업직에 몸담고 있다면 실적을 올려줄 고객을 만나고 싶을 것입니다. 아직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였다면 꼭 이상형은 아니라도 좋으니 그럴듯한 이성을 만나고 싶을 것입니다. 헤어진 피붙이나 첫사랑, 내 일손을 덜어줄 사람 등등 지금 만나고 싶은 사람을 손꼽으라면 참 많은 이들을 들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거나 만날 예정이 되어 있는 사람은 대상에 맞게 스스로를 가꾸고 내보일 준비를 깔끔하게 합니다. 모든 준비를 다 마치고 큐 사인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텔레비전 뉴스 앵커처럼 말입니다.

상대를 만나면 정중히 명함을 건네고 깍듯하게 인사를 합니다. 가급적 고운 말을 쓰고 적당히 양보하며 최선을 다해 상대한 뒤에 그의 호주머니에 넣어진 내 명함이 그 사람에게 다시 한번 읽혀지기를 기대하면서 작별인사를 건넵니다. 이런 만남은 대체로 호의적으로 끝을 맺습니다.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 마디 미묘한 향이로다”라는 경전의 말씀을 충실하게 실천한 셈이니 좋은 결과를 남길 것입니다. 예정되어 있고 목적하였던 만남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사단은 꼭 예기치 못한 데서 터집니다.

혹시 당신은 자신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 어느 날 당신의 일상에 너무나 커다란 힘을 가해오는 일을 당한 적은 없습니까?

또는 나보다 수준이 한참 떨어져 보이는 이가 감히 나의 자리를 넘보거나 함부로 나를 비판하는 일을 당한 적은 없습니까?

여러분이 잘 아시는 원효 스님이 바로 이런 낭패를 당하였습니다.

스님이 기도를 하려고 동해안을 찾았다가 벼를 베고 있는 여자를 보았습니다. 장난기가 일었던지 “그 벼 좀 주지 않으려오?”라고 말을 건넸습니다. 그러자 여자는 “벼는 거칩니다”라는 무뚝뚝한 답을 던지고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스님은 좀 무안하기는 하였지만 크게 괘념치 않고 계속 길을 걷다 어느 다리 아래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여자를 만나게 되었지요. 빨랫감은 옛날 여성들이 사용하던 천 생리대였습니다. 이번에 스님은 물 한 그릇을 청하였습니다. 그러자 이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피가 섞인 물을 떠서 내밀었습니다. 누가 선뜻 그 물을 마시겠습니까? 원효 스님은 당연히 불쾌한 마음에 그 물을 쏟아버렸습니다. 그리고 직접 물가로 내려가서 맑은 물을 떠서 마셨지요. 목마름을 달랜 뒤에 둘러보니 빨래하던 여자는 간데 없고 여자의 신발 한 짝만 남겨져 있었습니다.

‘거 참 신기한 일일세…’라고 생각하면서도 금세 잊어버리고 부지런히 발걸음을 놀렸습니다. 그런데 기도처에 도착하고 보니 관세음보살의 좌대 밑에 여자 신발 한 짝이 놓여 있었습니다. 크기며 생김새를 보아하니 아까 보았던 그 신발과 짝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

그제서야 스님은 ‘앗차!’하며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습니다만 이미 때는 늦어버렸습니다. 신발의 주인은 바로 관세음보살이었던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은 기도하러 나선 스님을 시험해보려고 처음부터 스님 앞에 나타났던 것이지요.

결국 원효 스님은 기도처 앞에까지 갔다가 풍랑이 크게 일어서 들어서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강원도 낙산사에 얽힌 일화입니다.

당대의 최고 지성이라 할 수 있는 원효 스님과 이름도 없는 품팔이 여자, 남성 출가자와 생리대를 빠는 여자……. 이 얼마나 극과 극의 대비입니까? 대수롭지 않게 스쳐지나 기억도 나지 않는 여자가 알고 보니 그토록 친견하길 바랐던 거룩한 관세음보살이었다는 사실이 믿겨지십니까?


이미령/동국역경원 역경위원

lmrcitt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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