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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탄성 선풍 어린 修禪도량

기자명 채한기
  • 교계
  • 입력 2004.03.22 13:00
  • 댓글 0

공림사 감인선원

<사진설명>동안거 동안 하루 10시간 장진한 수좌 스님들. 간곡한 부탁으로 한 컷의 사진을 렌즈에 담을 수 있었다

충북 괴산 청천면 사담리 낙영산(落影山) 아래 단아하게 자리잡은 공림사 감인선원에 도착한 것은 해제 5일 전인 1월 31일 오후 1시 40분께다.

울창한 숲 사이사이로 큰바위들이 우뚝우뚝 솟아 있는 낙영산은 한 눈에 보아도 기세가 등등하다. 낙영산과 함께 크고 작은 산이 겹겹으로 둘러싸여 있어 연꽃 위에 선원이 살포시 들어앉아 있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다른 선방과는 달리 사찰 외각의 한적한 공간이 아닌 경내 중심 뜨락에 자태를 드러내 놓고 있지만 선방 수좌 스님 사이에서는 ‘기운이 생동하고 어느 도량보다 빨리 선정에 들게 하는 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월산 스님 조실로 1983년 개원

2시가 다 되어 가자 입선 운집을 알리는 목탁 소리가 한적한 산사의 바람소리와 함께 도량에 잔잔하게 울려 퍼진다. 몇 분의 스님은 다각실에서, 몇 분의 스님은 산으로 포행을 갔다 돌아오는 듯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잠시 후 ‘탁’하는 죽비 소리가 들려 온다. 그리고는 침묵! 선원은 금새 적적에 들었다.

함허 득통 스님의 선풍이 드날렸던 공림사에 감인선원이 개원된 것은 1983년 탄성 스님에 의해서다.

1980년 가을 당시 희양선원에서 혜묵, 명진, 도원 스님과 함께 수행한 탄성 스님은 10·27법난으로 희양선원을 나와야 했다. 이 때 탄성 스님은 서울로 올라왔으나 혜묵, 명진, 도원 스님은 공림사에 머물며 거의 쓰러질듯한 허름한 건물을 보수해 정진했다.

탄성 스님이 다시 공림사로 내려 온 것은 1981년. 탄성 스님은 정진 중인 세 스님과 함께 “신라 때는 법주사 보다 더 크고 수승한 도량이었음에도 퇴락해 가는 공림사를 보니 가슴이 아프다”며 새로운 원력을 세운다. 공림사 대작 불사를 통해 납자들의 여법한 수선 도량으로 거듭나자는 것이었다. 의기투합된 세 스님은 이 때부터 불사에 뛰어들었다.

어느 건물보다 제일 먼저 자태를 드러낸 것은 감인선원이다. 정면 7칸, 측면 3칸의 팔작 지붕으로 큰방과 지대방, 다각실이 들어서 있다. 1983년 동안거 때 20여명의 납자들이 선정에 들며 선원이 활짝 열렸다. 이 때 조실은 월산 스님이었으며 선원장은 탄성 스님이었다.


재가선원 선심당 발길 적어 아쉬움

공림사에는 감인선원 못지 않게 탄성 스님의 큰 뜻이 배어있는 선방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선심당이다. 감인선원이 청풍납자들을 위한 공간이라면 선심당은 재가불자들의 수행 공간이다.

수행의 대중화를 향한 탄성 스님의 뜻이 오롯이 배어있는 선원이다. 평소 마음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데 집착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그 마음의 쓰임을 온유하게 하고 맺히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설파했던 탄성 스님은 불자들을 향해 “삶이 힘들고 허망한 것이라 해도 그 속에 무궁한 법이 있고 그 법을 알면 최상의 열락이 있으니 열심히 참선해 마음자리를 흐트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었다.

<사진설명>감인선원은 외각 한적한 공간이 아닌 경내에 있지만 단아한 고졸미가 배어있다.

탄성 스님이 주석할 때는 40여명의 불자들이 이 선원을 찾았으나 입적한 후 선심당을 찾는 불자들이 줄어든다고 하니 안타깝기 그지 없다.

적정하고 청빈한 분위기의 도량 속에 본래면목을 깨우치려는 납자 7명이 동안거 때 감인선원을 찾았다.

감인선원(堪忍禪院)! 참고 인내해야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본래 부처임을 깨치는데 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련이 있을 것인가. 문득 세속 인연과 번뇌에 사로잡혀 당장 하산하고픈 마음이 있을 것이지만 참아야 한다. 순간적으로 쏟아지는 졸음과 세속의 티를 아직 벗지 못해 밀려드는 수많은 욕정도 인내하고 또 인내해야만 한다.


하루 10시간 정진

따라서 감인선원의 하루 10시간 정진 시간만큼은 그 누구라도 참고 인내하며 지켜야 한다.

지금 선원에서 좌복 위에 가부좌를 튼 수좌 스님은 어느 경지에 올라 있을까. 벽 앞에 앉아 있는 수좌 스님이 든 화두는 분명 살아 꿈틀거리고 있을 것이다. 아니, 이미 스님과 화두가 하나가 되어 화두삼매에 들어 있을 것이다.

이제 곧 해제가 되니 모두 어디론가 만행을 떠날 것이다. 견성하는 날이 해젯날이라고 했던가. 만행을 떠난 스님들은 또 다시 어느 선방에 방부를 들일 것이고, 다른 선원에서 동안거를 난 어느 스님은 올 하안거 때 감인선원을 찾을 것이다. 선방 수좌 스님들이 이 도량을 찾는 한 이 선원은 수령 990년 된 경내의 느티나무와 함께 낙영산 아래 우뚝 서있을 것이다.


괴산=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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