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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기자명 이미령
사기꾼을 만날 때는 더 큰 사기꾼으로

부처를 만날 때는 더 큰 부처로 나투리라


어제오늘 사이 당신이 만난 이들….
책상을 마주 놓고 일하고 있는 직장 동료, 옥신각신 물건값을 흥정하다 헤어진 시장 상인, 어젯밤 술자리에서 내 옆에 앉았던 사람, 지하철에서 좌석 하나 놓고 잠깐 신경전을 벌인 여자…

앞서 원효 스님의 경우를 비추어 보면 이런 사람들 가운데 어쩌면 관세음보살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관세음보살이 누구에게나 불쑥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다른 문제는 없는데 이성에게 자주 끌려.’
‘다른 건 관심 없어. 내 가족만 행복하면 되.’
‘왜 나는 운전대만 잡으면 거칠어지는지 모르겠어.’
‘주겠다는데 왜 돈을 거절해야해? 일단 받고 보자.’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왜 발칵발칵 성을 내는지 모르겠어.’
이런 사람들….

‘스님이 대신 기도 잘 해주시겠지. 하루쯤 내가 빠진들…’ 이렇게 자기 기도조차도 끝내지 못하고 꾀를 부리기 시작하는 사람.

‘불교? 그게 별거 아니더라구. 그저 자기 마음자리만 잘 찾으면 그게 불교더라니까…’라고 말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 사람.

관세음보살은 이렇게 내가 가장 약해지고 사악해질 때 나의 아킬레스건을 찌르며 나타납니다.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근엄하게, 때로는 천박하게, 때로는 단호하게, 때로는 너무나도 평범하게 말입니다.

그렇다면 관세음보살님도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저 사람들의 고통을 고스란히 내 것인 양 이해할 수 있을까?’
그래야지만 사람들에게 꼭 맞는 구제법을 내릴 것 아니겠습니까? 고민 끝에 내린 방법이 좥보문품좦에 이렇게 실려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무진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어떤 나라의 중생을 부처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관세음보살이 곧 부처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며, 벽지불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벽지불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며, 성문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성문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신다.”

남을 가르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어떤 질문에도 막힘없이 대답해낼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제자를 인격적으로 성숙시킬만한 덕망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런 자질을 갖추고 있다 해도 상대방의 수준을 정확히 갈파하고 있지 않다면 헛일입니다. 지금 저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저 사람이 가장 크게 마음을 돌리려면 누가 필요한지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세요.’
학습지 광고에 무진장 나오는 말입니다. 어른의 입장에서 아이를 가르치려 들기보다는 아이들의 수준으로 내려가서 함께 고민하고 길을 찾아보라는 뜻입니다.

관세음보살은 바로 이런 눈높이 구제에 가장 능숙한 분이십니다. 저 높은 곳에 고고히 머무시며 ‘수고하고 힘들면 이리로 오라’고 두 팔을 벌리거나 손짓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를 낮추고 망가뜨려 구제의 대상과 꼭 같이 하나가 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관세음보살이 세상을 살펴보시니 지금 구제를 바라는 어떤 이가 있는데 이 사람에게는 다른 누구도 아닌 부처님이 가장 필요하다는 판단이 내려졌습니다. 벽지불이 나타나서 일깨워주어야 정신을 차릴 것 같으면, 그리고 성문의 몸으로 가르침을 줘야 할 사람이 있으면 관세음보살은 망설이지 않고 그에 꼭 맞는 모습으로 자신을 바꿉니다.


이미령/동국역경원 역경위원

lmrcitt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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