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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선의 가풍(家風)

기자명 김태완
“지금 ‘무엇이’ 찻잔을 들어 올리는가”

범부의 뒤집혀진 견해 바로잡는 게 禪


조사선이라는 말에 속지 않고, 가풍이란 말에도 속지 않고, 조사선이라 하든 가풍이라 하든 한결같이 또렷한 하나를 가리켜 ‘조사선의 가풍’이라 한다. 조사선이 어떠어떠한 것이고 가풍이 어떠어떠한 것이라고 한다면, 조사선의 가풍에서는 하늘과 땅의 차이로 벌어져 버린다. 조사선의 가풍을 알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지금 이 순간 눈앞을 잘 살펴야 한다. 보고·듣고·생각하고·말하고·행동하는 가운데 한결같이 작용하고 있는 “이것이 무엇인가?” 모양 따라가고, 소리 따라가고, 생각 따라가고, 말 따라가고, 행동 따라가서, 온갖 이름과 모양을 분별할 줄만 알고, 이렇게 다양한 이름과 모양이 그저 한결같이, 이것뿐임을 알지 못한다면 조사선의 가풍이란 없는 것이다.

선(禪)이란 범부의 뒤집혀진 견해를 바로잡아서 실상(實相)을 바로 보는 것이다. 뒤집혀진 견해란, 이름을 그저 이름인 줄로만 알고 모양을 그저 모양으로만 알 뿐, 이름과 모양이 한결같이 평등하고 차별 없음을 알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禪)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자신의 뒤집혀진 견해를 바로 잡아서 말에 구속되지 않고 모양에 구속되지 않으려는 하나의 소원만 간절하게 가져야지, 말과 이름을 익혀서 이러쿵 저러쿵하는 견해를 세우려고 해서는 안된다. 실상을 바로 보지 못하는 것을 한스럽게 여겨서 오직 밝게 깨어나기만을 간절히 갈망해야 할 뿐, 견해 없고 말 못할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어떤 스님은 어떤 방편을 사용하고, 어떤 스님은 누구의 제자이고, 어느 종파에는 어떤 특징이 있고 하는 등등을 이야기하는 것은 공부하지 않는 사람이 호기심으로 물어볼 수 있는 말이지 공부하는 사람의 진지하고 간절한 물음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런 방편 저런 방편, 스승과 제자, 종파와 법맥 등을 말하고, 비교하고, 구분하고, 하는 일이 바로 사물을 따라다니는 범부의 어리석은 견해이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이런 어리석은 견해에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런 견해 저런 견해, 이런 말 저런 말을 하고 있는 “이것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일에 온 관심과 힘을 기울여야 한다.

지금 이 순간 눈앞에서 작용하고 있는 이것을 밝게 확인하면, 부처님과 조사스님들의 모든 말과 행동과 방편이 밝게 드러나 의심이 없어질 것이다. 지금 당장 손가락 한번 움직이는 것이 무엇인지, 눈 한번 깜빡이는 것이 무엇인지, 숨 한번 쉬는 것이 무엇인지, 말 한마디 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 한걸음 옮기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 한번 일으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면, 조사(祖師)니 선(禪)이니 마음이니 불법(佛法)이니 깨달음이니 도(道)니 하는 말과 생각들은 전부 망상(妄想)일 뿐이다.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도 모르면서 다시 무엇을 알겠다는 것인가? 생각 한번 일으키고, 손가락 한번 움직이는 것을 할 수 없다면 팔만대장경이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지겠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이 어떻게 나오겠으며, 조사의 방편이 어떻게 나타날 수 있겠는가?

참으로 조사선의 가풍을 알고자 한다면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한점 의심도 없이 밝아야 한다. 찻잔을 들어올리는 것은 손도 아니고 팔도 아니며, 차를 마시는 것은 입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찻잔을 들어올려서, 차를 마시고 있는가?


김태완/무심선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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