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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기자명 혜민 스님
갖가지 장난감에 정신이 팔려

아직 불타는 집에 머물러 있나


작년 봄 어느 신도분이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그동안 고마웠다고 선물을 주고 가셨다. 작은 선물이라 하니 큰 부담을 가지지 않고 감사해하며 받았는데 막상 선물을 뜯어보니 비싼 고급 디지털 카메라였다. 약 두 달 전부터 ‘디지털 카메라가 하나 있으면 여러 군데 유용하게 쓸 수가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하셨는지 카메라를 주고 가신 것이다. 또 신기한 것은 예전에 전자 상가를 둘러보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사야지’ 하고 마음먹었던 바로 그 제품을 골라서 선물해주신 것이다.

간만에 받은 선물에 신이 나 마치 어린아이처럼 아침 저녁으로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면서 이곳 저곳 사진을 찍어 보았다. 굳이 사진으로 찍을 만한 사물이나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저 새 카메라를 실험해 본다는 생각에 마구 찍어 대었다. 찍고 난 이미지를 더 멋있게 고쳐 본다고 컴퓨터 앞에서 많은 시간을 소비하기도 했다.

디지털 카메라 하나에 빠져 즐거워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있자니 문득 좬법화경좭 좥비유품좦의 한 예화가 생각났다.

불타는 집 안에서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아버지가 집이 불이 났다고 아무리 소리질러도 아이들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에 정신이 팔려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자 아버지는 집 밖으로 나오면 지금 갖고 있는 장난감보다도 더 좋은 장난감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하자마자 아이들은 더 좋은 장난감을 얻기 위해 바로 불 타는 집에서 나왔다는 그 구절이다. 부처님께서는 불타는 집을 비유로 들어 사바 세계를 설명하시고 또 집 안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는 아이들을 중생에 빗대어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고 보면 불타는 집안에서 정신을 팔면서 가지고 노는 아이들의 장난감과 내가 흠뻑 빠져 들고다니던 디지털카메라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우리 중생들은 어른이 되어도 ‘갖가지 다른 이름의’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아이들의 장난감과 다른 점이 있다면 가격이 좀 더 비싸지고 사용 방법이 교묘해진다는 것뿐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 면이나 또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싫증을 내면서 새로운 장난감을 찾게 되는 것 등은 어린이나 어른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어떤 이의 장난감은 좋은 오디오나 새 자동차가 될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는 비싼 명품 옷이나 보석이 될 수도 있다. 골프나 스키와 같은 운동 혹은 매일 아침 체크하는 주식 시장의 변동 사항이 우리 중생들을 사바 세계에 머물게 만드는 장난감일 수도 있다. 그 즐거움에 빠져 즐거워하다 또 새로운 ‘꺼리’를 찾아가는 똑같은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를 선물로 받은 지 일년 정도가 지난 지금에 와서는 그 카메라를 별로 찾지 않는 나를 발견한다. 그 카메라는 한 반년 정도를 그냥 내 옷장 안에서 조용히 묻혀 지내고 있다. 살다보면 제2, 제3의 디지털 카메라와 같은 존재가 내 삶에 분명 등장할 것이다. 다만 그런 장난감이 내 삶 속으로 파고들어 와도 그것들이 내 삶 안의 목표가 아닌 장난감이라는 것을 항상 인지할 줄 아는 여유와 지혜만은 잊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혜민 스님/vocalizethis@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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