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心眼으론 반가사유상 미소 찍었을까!

기자명 채한기
지난 2002년 추상미를 비롯해 영화인들이 노 개런티로 출연해 탄생한 작가주의적 영화 ‘미소’(a smile of thinking Buddha·박경희 감독)가 제작 2년만에 지난 13일 동숭아트센터 하이퍼텍 나다에서 개봉됐다. 블록 버스터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가 한 편의 장편 소설이요, 한 장의 컬러 사진이라면 이 영화는 한 편의 단편소설이며 흑백사진이다.

영화는 어느 날 주인공인 사진작가 소정(추상미)이 튜블러비전(망막색소변성증)에 걸리면서 시작된다. 시야가 계속 좁아지면서 결국엔 실명에 이를 수 있는 병이다. 그 실명이 언제 올 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삶에 직면한 소정은 유학을 포기함은 물론 애인 지석과도 결별한다. 반가사유상의 미소에 천착해 셔터를 눌러 보지만 늘 초점은 빗나가 있다.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 보지만 가족사이의 끝없는 불화를 보고는 신라 고도 경주로 달려간다. 경주의 한 고분 벽화를 촬영하던 중 벽화 속 여인이 비상하는 환상을 본 소정은 하늘로 날고 싶다는 마음에 비행조종 교육을 받는다. 교관이 없는 바람 부는 날 소정은 비행하지만 곧 강으로 추락한다. 목숨만은 건진 소정은 추락한 비행기의 한 날개를 의지한 채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영화는 끝난다.

영화 흐름 속에 감정은 철저히 절제돼 있다. 이 영화가 주는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소정의 고통을 관객이 즐기거나 혹은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고통을 내 안으로 받아들여 자신을 관조해 보는 것이다. 과연 내게 이런 현실이 닥치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불행 이전의 나와 불행 이후의 나는 어떻게 달라지는 것인가? 영화는 우리에게 ‘삶의 본질’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를 관람하며 놓쳐서는 안 될 것이 소정의 애인 지석이 보낸 메일이다. 바로 서산대사가 입적 직전 읊은 시 한수.“80년 전에는 네가 나이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八十年前渠是我 八十年後我是渠).

소정의 절망과 서산대사의 시, 그리고 반가사유상의 미소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삶의 본질을 음미해 볼 수 있다면 이 영화가 주는 감동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사진 찍을 땐 못 보았던 반가사유상의 미소를 추락한 비행기 날개 위에서 소정은 보았을까?

자아를 찾아가는 종교-철학적 진실이 묻어나 있는 이 영화는 벤쿠버 영화제, 토론토 영화제 등의 여러 영화제에서 초청 받아 호평을 받았다. 02-3672-0181


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