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박한영 스님 (1870∼1948)
25.박한영 스님 (1870∼1948)
  • 권오영
  • 승인 2004.03.2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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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 선종 3대 강백
1948년 2월 29일 입적

석전 박한영 스님은 선암사 금봉 스님, 화엄사 진응 스님과 함께 태고 보우 국사의 선맥을 잇는 태고 선종의 3대 강백으로 추앙 받는 인물이다. 삼장 강설을 주로 하면서 경사사집과 노장학설을 모두 섭렵하고 일제 강점기 만해 스님과 함께 불교 유신운동을 펼쳤는가 하면 올바르게 시대를 이끌 수 있는 후학들을 양성하기 위해 평생을 헌신한 근현대 대표적인 선지식이었다.

1870년 8월 전북 완주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석전 스님은 17세 되던 해 스님의 어머니가 전주 위봉사 금산 스님에게 들은 삶과 죽음에 관한 생사법문을 전해주자 크게 발심해 출가를 결심했다. 19세 되던 해 금산 스님에게서 계를 받고 정호라는 법명을 받은 스님은 이후 백양사 운문암에서 본격적인 수도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스님은 1895년 백양사 인근 구암사에서 주석하던 설유 스님으로부터 영호라는 법호를 받고 전법제자가 됐다. 이때부터 스님은 대흥사, 백양사, 해인사, 법주사, 화엄사, 석왕사, 범어사 등지에서 대법회를 열며 대중들에게 불법을 강론하기 시작했다.


만해와 불교유신운동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정열을 불태우던 석전 스님은 1908년 일제가 한국불교를 일본불교와 합종하려는 음모를 보이자 서울로 올라와 만해 스님과 더불어 불교유신과 민족자주의 뜻을 품고 불교유신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일제가 사찰령을 반포하고 본산제를 실시하면서 그 결실을 이루지 못하자 스님은 이때부터 민족의 계몽을 위해 앞장섰다.


45년 조선불교 초대교정

1913년 『해동불보』라는 잡지를 발간하면서 불교의 혁신을 주창했고, 1916년에는 불교중앙학림에서 후학 양성을 위해 강의를 시작했다. 또 1926년 성북구 안암동 개운사 대원암에 불교강원을 설립해 20여 년간 청담, 운허 스님을 비롯해 미당 서정주 등 수많은 불교지도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사진설명>불교전문학교장 재직시절 집무실의 석전 스님.

1929년 조선불교교정에 취임해 한국불교의 최고 지도자로서 승려와 신도를 이끌었으며 1931년 동국학교의 전신인 불교전문학교 교장으로 선임돼 고등교육의 일선에서 불교를 전하는 일에 앞장섰다.

1945년 광복과 함께 새롭게 조선불교중앙총무원 총회에서 제 1대 교정을 추대된 석전 스님은 한국불교의 새로운 종단을 이끌기 위해 노력했지만 1948년 2월 29일 정읍 내장사에서 입적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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