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⑭ 美 펜실베니아대 하루나가 아이작슨 교수

기자명 안성두

인도-티베트 밀교 사본 연구 세계적 권위

“깊이 있는 불교 이해

사본연구 있을 때 가능”


하루나가 아이작슨 교수는 세계 인도학 불교학계의 촉망받는 젊은 학자다. 그의 약력이 보여주듯 코스모폴리탄으로서의 삶은 숙명적으로 정해진 듯하다. 미국인으로서 태어났지만, ‘펜실베니아 대학에 가기 전에는 한번도 미국에 가본 적이 없었다’는 그의 말처럼 오랜 기간 외국에서 생활했다. 그의 출생지는 일본의 한적한 산촌이었고 그곳에서 그는 일본인 특유의 겸손함과 타인에 대한 배려를 배웠다. 그렇지만 그는 전적으로 유럽에서 교육받았고, 그의 지적 관심은 인도 고전문헌으로부터 티베트의 탄트라 불교에 이르기까지 불교적 세계관의 바탕을 이룬 바로 그 세계로 향하고 있다.


인도학 1인자로 급부상

그의 학문적 경력은 고전인도사상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었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인도의 정통철학체계의 하나인 바이세시카 학파의 중심경전의 비판적 편집과 이에 대한 번역으로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그의 관심은 단순히 하나의 학파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인도학도로서의 그는 인도의 고전시와 푸라나라고 하는 담시(譚詩)에 매우 해박하다는데 강점이 있다. 실제 그는 굽타 왕조의 유명한 시인인 칼리다사의 「라구밤샤」에 대한 현존 최고(最古)의 주석을 비판적으로 교정, 편집하고 있다. 이 시는 산스크리트 문학에서 가장 장문 시 중 하나로 유명하다. 또한 푸라나 계통에서 중요한 「스칸다푸라나」에 대한 비판적 교정작업을 바커 교수와 함께 수행하고 있다.

1995년부터 그의 관심은 인도불교의 대미를 찬란히 장식했던 탄트라 불교로 넘어간다. 그가 탄트라를 새로운 연구주제로 택한 이유는 이 분야가 인도종교와 티베트불교, 나아가 동아시아 불교를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 불가결한 영역이었지만, 현대의 불교학자들에 의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7세기 이래 인도불교에서 탄트라는 주류로 등장했고, 이런 경향은 티베트불교로 그대로 전해지게 되었다. 따라서 만일 우리가 탄트라 연구를 제외한다면 우리의 불교이해는 역사적으로 매우 제한되게 될 것이다. 이러한 탄트라의 중요성은 남아있는 사본의 양에 의해서도 계량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추정에 따르면 현존하는 사본의 3분의 2 이상이 탄트라와 관련돼 있다. 실제 거대한 분량의 사본이 아직도 남아있고, 그 대부분이 교정·출판되지 않았다고 하는 사실이 그가 이 분야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슈미트하우젠 교수가 필자에게 개인적으로 말했듯이 실로 그는 인도학도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본을 읽은 사본연구자 중 한명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사본연구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불교학, 특히 인도불교학을 진지하게 공부하려고 한다면 그는 2차 자료만 갖고 만족할 수는 없을 것이고, 어느 단계에서는 출판된 책 형태인 1차 자료에 관심을 돌릴 것이다. 그렇지만 마찬가지로 출판된 1차 자료도 어떤 의미에서는 2차적인 것에 지나기 않기 때문에, 보다 근원적으로 불교 자료들을 읽고자 한다면 사본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물론 지금까지 신뢰할만한 학자들에 의해 매우 조심스럽게 편집된 여러 편집본이 출판되었지만, 그러한 좋은 편집본도 개선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출판본에 대한 무조건적 신뢰는 위험하다. 기존의 편집본은 새로이 발견된 사본이나 티베트역 또는 한역과의 대조를 통해 개선될 수 있고, 이를 통해 불교학과 불교의 역사에 대해 조그만 이해를 덧붙일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현재 우리는 얼마나 많은 불교사본이 존재하며 또 어떤 사본이 남아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최근 아프간에서 발견된 초기불전의 사본이 매우 중요한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티베트 불교사원이나 중앙아시아 등지에서도 사본이 발견되리라 기대하고 있다. 또한 최근 함부르크 대학 인도학과에서 진행되고 있는 ‘네팔-독일 사본보존프로젝트’에서 보다 많은 자료들이 새로 발굴되리라 생각한다.


범어-티베트어도 정통

인도의 고전문헌에 대한 그의 각별한 관심과 애정은 산스크리트 문헌을 사랑한다는 의미에서 스스로를 산스크리트 문헌학자(sanskrit philologist)로 자처하게 만들었다. 그의 관심은 불교 산스크리트 문헌뿐 아니라 인도 정통학파들의 문헌까지도 포괄하고 있다. 이점에서 그의 관심분야는 실로 인도학 전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매우 광대하다. 그가 19세기와 20세기 서구에서 이룩한 인도학의 위대한 전통을 계승하고 있으며, 금세기의 가장 뛰어난 인도학도의 한 사람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는 좁은 관심의 영역에 자신을 묶어두지 말고 다른 인접분야의 문헌도 다양하게 섭렵할 것을 권고한다. 비록 연구자의 관심이 주로 인도불교에 향하고 있을 때에도 불교문헌에만 국한해서 독서해서는 안되며, 또 철학적 문제에만 관심이 있다고 해서 시와 같은 다른 분야의 문헌을 완전히 도외시해서는 안된다고 충고한다. 왜냐하면 시는 불교도이든 비불교도이든 산스크리트를 사용했던 모든 인도의 학자들이 읽고 훈련받았던 분야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시의 관용적 표현에 익숙하지 않다면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인유(引喩)가 있기 마련이다.


고대 문헌 이해 수준 탁월

연구자가 관심영역을 확대해야하는 보다 중요한 이유는 만일 그가 자신이 전공하는 한 사상가 내지 한 학파에만 초점을 맞추고 다른 학파에 속하는 사상가의 작품을 읽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이 택한 사상가조차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구자가 택한 사상가의 사유세계 속에 몰입하고, 그가 염두에 둔 반대론자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와 동시대인의 작품은 물론 선행하는 사상가를 알고 있어야 한다. 탄트라와 관련시켜 설명해 본다면, 만일 누군가 후기불교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인식논리에 초점을 맞추어 라트나카라샨티 또는 즈냐냐슈리미트라를 연구한다고 할 때에도, 이들 저자가 매우 중시했던 탄트라 불교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해서는 그를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아이작슨 교수는 할프화스(Halbfass) 교수의 후임으로 부임한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연구와 강의에 매진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대학이 자랑하는 위대한 인도학도 조지 카도나(George Cardona) 교수의 세미나에 즐겨 참석하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환상적인’ 산스크리트 문헌의 아름다움에 젖어있을 것이다. 필자는 동료와 제자들에 대한 그의 ‘보살’과 같은 자기희생과 겸손함, 학문적 성실함에 대해 종종 생각하곤 한다. 그러면서 슈미트하우젠 교수가 일종의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감정을 갖고 찬탄했던, 그러한 학도가 우리나라에도 자라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안성두/금강대 전임연구원 sdahn@gg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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