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⑭ 밍사산(鳴砂山)과 둔황고성

기자명 이재형

모래와 바람이 만나 순백의 성을 쌓다

<사진설명>둔황 막고굴과 함께 이 지역의 대표적인 명물 밍사산. 수많은 시안과 가객들이 이곳에 들려 밍사산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바람에 모래가 버석인다. 때문일까. 시원하기보다 오히려 숨이 턱턱 막혀온다. 일주문 뒤로 서 있는 막고굴이 떠나는 우리를 천년의 시선으로 굽어보는 듯 하다. 그 척박한 실크로드가 아직도 몽환의 이미지로 남아있는 것은 어쩌면 막고굴이 갖는 신비로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차에 올라 밍사산으로 향했다. 굴곡이 심한 도로에 차도 사람도 덜컹거린다. 20여 분 달렸을까. 멀리 하얀 모래산이 머리를 조금씩 내밀고 있다. 어떻게 이런 황무지에 저런 곱디고운 산이 솟아날 수 있었을까. 둔황에서 남쪽으로 약 4km 떨어진 밍사산은 50~60m 높이의 모래산이다. 남북으로 약 20km, 동서로 약 40km 되는 이 산은 막고굴과 함께 둔황을 대표하는 이 지역 명물이기도 하다. 강한 모래바람 탓에 밍사산의 산봉우리들은 늘 움직인다고 한다. 바람이 거칠게 불 때면 모래가 천둥치는 소리로 울고 바람이 부드러울 때는 거문고와 같은 아름다운 현악기 소리를 내기도 한단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바람 대신 모래가 운다하여 붙여진 이름이 밍사산(鳴砂山)이다.


벗은 여인을 닮은 모래산

매표소에서 각각 입장료 50위엔(한화 약 7500원)을 냈다. 직원들은 특별대우라며 차까지 들어갈 수 있도록 해 준다. 매표소를 통과했다.

햇볕과 바람의 무게에 떡가루처럼 하얗게 빻아진 모래 둔덕이 눈에 들어온다. 서해안 결 고운 백사장이 몸을 일으킨 것도 같고 알몸으로 누워있는 여인인 듯도 싶다. 이근배 시인의 말처럼 모래가 우는 것이 아니라 여인이 울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스쳐간다.

<사진설명>목화를 따는 처녀. 귀 먼 아버지와 둘이서 목화밭을 재배하고 있다.

모래산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수백미터 쯤 따라갔다. 그곳에는 중국식 누각과 초생달 같은 위예야천(月牙泉)이 모래밭 한 가운데 다소곳이 웅크리고 있었다. 인공천인지 아닌지를 떠나 지난 3000년간 단 한번도 물이 마른 적이 없다고 하니 신기할 따름이다. 우리는 신발과 양말을 벗어 던졌다. 모래를 느끼는 발의 촉감보다 맨발의 어색함이 먼저 와 닿는다. 푹푹 빠지는 길을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모래산 정상아래 섰다.

여기서부터는 꼭대기까지 뻗어있는 나무계단을 이용하든지 아니면 경사가 족히 45도는 됨직한 언덕을 기어 올라야 한다. 20위엔을 내고 계단을 선택했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나중에는 땀이 흐르고 숨이 턱까지 찬다. 계단 옆으로는 대나무 썰매를 타고 모래언덕을 내려가는 이들이 환호성을 내지른다. 후여후여 정상을 향해 올랐다. 꼭대기에서 바라본 풍경이 가히 장관이다. 산 너머 켜켜이 서 있는 우윳빛 모래산들. 삭막함이 주는 아름다움이 이런 것일까.

위에서 내려다본 위예야천은 중국 미인도에서 보았던 여인의 눈썹을 닮아 있다. 사진이라면 질색을 하던 강원도 선방 스님도 이번만은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이다. 모두들 칼날처럼 곡선이 뚜렷한 등성에 앉아 그저 한참을 앉아있었다. 여기에서 무슨 말이 필요하랴.

얼마나 지났을까. 그 유명한 밍사산의 저녁놀을 기다리기엔 너무 일러 어쩔 수 없이 우리도 썰매에 올라탔다. 30~40초나 될까. 짧은 시간이지만 기억은 어느새 어린시절 겨울야산에서 비료푸대를 타고 놀던 아련한 추억을 넘나들고 있다.


낙타는 ‘사막의 배’

미끄럼이 끝나는 밍사산 발치에는 낙타 20여 마리가 무리지어 앉아 있다. 입구에서 이곳까지 관광객들을 태우고 오가는 낙타들이다. 이렇게 가까이서 이들을 보는 것도 처음이다.

‘사막의 배’라는 이 녀석들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볼록 튀어나온 혹, 숱 많은 눈썹에 맑고 온순한 눈, 열고 닫히는 콧구멍, 넓적한 발바닥 등. 낙타 없는 사막 여행은 마치 배 없이 바다를 가는 것과 같다는 말의 뜻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낙타는 그 큰 덩치에 비해 온순한 성격이어서 사람이 쉽게 길들일 수 있다. 튀어나온 혹은 지방덩어리로 이로 인해 며칠을 먹지 않고도 너끈히 버틸 수 있고, 심지어 2~3주간 물 한 방울 마시지 않아도 살 수 있는 게 바로 낙타다.

또 눈가의 털들은 거센 모래바람을 막아주고 오무렸다 폈다 할 수 있는 발바닥은 그 육중한 몸이 모래에 빠지지 않도록 해준다. 이런 독특한 몸을 지닌 덕에 그들은 가마솥 더위에도 200kg의 짐을 진채 하루 30km 이상 걸을 수 있다. 만약 낙타가 없었다면 천산북로와 천산남로의 실크로드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 때 낙타 한 마리가 관광객을 태우더니 주인의 손에 이끌려 입구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저 녀석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대규모로 구성된 카라반의 한 일행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딸랑거리는 목의 방울소리가 애처롭다.

우리는 낙타 대신 자동차를 타고 밍사산을 빠져 나왔다. 시간이 남아 둔황고성(焞惶高城)을 들리기로 했다. 고성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허허벌판에 우뚝 서 있는 이 고성은 1987년 일본이 그들의 영화 ‘둔황’을 찍기 위해 만든 세트장. 이후에도 ‘봉신방’ ‘신용문객잔’ ‘사막왕자’ ‘천출혈’ 등 많은 영화를 촬영한 장소이다. 성의 입구 쪽에는 중일우호 결정판으로 철저한 고증을 거쳐 재현했다는 설명이 허술한 간판에 허술한 글씨로 쓰여 있다. 20위엔의 입장료를 내고 성 안으로 들어갔다.

술집(酒館)과 쌀가게(米店), 여관, 식당, 행정관청(歸義軍 節度府) 등이 복원돼 있고, 심지어 마약이나 안경을 파는 가게도 있다. 1000년 전 둔황의 거리가 이러했을까. 한 오래된 건물 안에는 역사극을 찍는지 중국 전통복장을 입은 사람들 몇 명과 카메라맨이 보인다. 거리 한복판에는 이곳 직원인 듯한 두 사람이 장기를 두고 있다. 장기에 얼마나 정신이 팔렸는지 무엇을 물어봐도 연신 고개만 내젓는다.

고성을 뒤로 하고 다시 둔황 숙소로 향했다. 검푸른 황무지를 지나니 하얀 솜이 탐스럽게 피어있는 목화밭들이 잇따라 나타난다. 요즘 이곳은 목화 따는 철인가보다. 밭마다 옆구리에 자루를 묶은 농부들의 손놀림이 부지런하다.


구수한 된장찌게에 고향생각

숙소에 도착하자 스님 몇 분이 오늘 밤 특별한 야식을 마련했으니 꼭 먹으러 오라고 귀띔한다. ‘특별한’이란 말에 솔깃해 스님들 방으로 가니 구수한 냄새가 솔솔 나는 게 아닌가. 한국에서 준비해 온 된장에다 시장에서 구입한 채소로 된장국을 끊인 것이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고향의 맛인가. 이 단촐한 만찬에 감격하지 않은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느끼한 중국음식에 이미 질릴 만큼 질려 있었던 탓이다.

언어만큼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 입맛인가보다. 둔황에서의 특별했던 하루가 된장 냄새에 섞여 그렇게 넉넉하게 저물어 가고 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 “하루 일당 1500원입니다”

밍사산에서 만난 한 노역자

밍사산의 저녁놀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경 중 하나로 손꼽히지만 모래산에서 대나무 썰매로 미끄럼을 타는 것도 관광객들을 유혹하는 큰 즐거움 중 하나다.

우리가 명사산에 도착했을 때 10여 개의 대나무 썰매를 등에 지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삐쩍 마른 체구에 안쓰러울 정도로 무거운 짐을 나르는 그는 개장시간부터 저녁 폐장할 때까지 하루 종일 이곳에서 일하는 인부였다.

“당연히 힘들죠. 그래도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일하는 것 그게 낙이예요.”
그의 하루 일당은 10위엔, 우리 돈으로 1500원이라고 했다. 그 돈으로 생활이 가능하냐고 묻자 그저 근근이 산다고 했다. 나이 삼십을 넘겼지만 아직 결혼도 못했다고….

그는 모래 썰매를 타는 사람들의 등을 밀어주며 자기가 노래를 불러도 되겠느냐고 말했다.

잠시 후 그는 둔황의 민요라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찌 저리도 구성지고 애달플 수 있을까. 순간 모래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고 젊은 인부의 울음 같은 노래가 밍사산의 적막을 깨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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