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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탕에 빠져도 물들지 않는 것이 禪”

기자명 탁효정
  • 사설
  • 입력 2004.03.22 13:00
  • 댓글 0

봉은사 육조단경 성본 스님 논강

3월 13일 봉은사 육조단경 강좌는 『돈황본 육조단경』(한국선문화연구원 刊) 역주를 집필한 동국대학교 선학과 교수 성본 스님이 직접 강의를 맡았다. 스님은 이날 강연에서 『육조단경』이 대승불교 역사에 있어서 얼마나 큰 역사적·사상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주로 설명했다. 편집자


우리가 오늘 공부할 『육조단경』은 대승불교 조사선의 모든 실천적 체계와 사상적 핵심을 종합한 책입니다.

중국에 불교가 처음 유입됐을 당시 중국인들에게 인도에서 발생한 원시불교의 교리는 ‘나와는 거리가 먼 석가모니의 체험담’ 내지 하나의 이상적 논리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혜능 선사는 『육조단경』에서 “반야의 지혜를 증득함으로써 내가 직접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합니다. 조사선은 중국 불교인들이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가기 위해 현실적 요청에 의해 이루어낸 종교개혁입니다.


조사선, 중국불교 개혁 이끌어

우리가 선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육조단경』에서는 무념(無念)을 수행의 도달점으로 상정하고 있습니다. 『육조단경』 좥반야바라밀의 법문좦에서 보면 “자기의 본성인 심지가 지혜로 관찰하여 안팎의 차별이 없이 분명히 밝아지면 자기의 본심이 청정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자기의 본심을 깨닫는 것이 곧 해탈이요, 일단 해탈을 얻으면 이것이 반야삼매이다. 반야삼매를 깨달으면 이것이 무념이다”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무념의 법문이란 일체의 모든 사물에 집착하지 않고, 일체의 모든 처소에 두루하면서도 일체의 모든 장소에 집착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번뇌망상이 없는 무념을 통해 깨달음을 이룬다 하여 남종선에서는 무념을 근본 종지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념이란 무엇인가? 여러분들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을 참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무념무사의 경지로 들어가야 한다”고 하니까 생각이 없는 경지가 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껍니다. 그런데 이게 禪일까요?

이런 선을 비판하면서 중국 선불교에서는 ‘고목송’이라는 유명한 화두 하나가 등장했습니다.

어느 노파가 훌륭한 스님을 잘 봉양해서 암자도 지어주고 평생 잘 모셔왔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노보살이 스님에게 시험을 겁니다.

이 노보살이 손녀에게 “스님을 찾아가서 꼭 껴안아봐라. 스님이 뭐라고 하는가” 하고 보냅니다. 그런데 그 스님이 손녀가 안기자 “고목나무에 매미가 붙어있는 것 같구나! 따뜻한 온기가 전혀 느낄 수 없다”고 하더랍니다.

네가 아무리 나를 유혹해도 나는 번뇌, 망념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죠. 손녀딸은 “아! 아주 훌륭한 스님이구나”하고 그 길로 내려가 할머니께 사실대로 고합니다. 그러자 노보살은 그 암자를 홀라당 태워버립니다.


본심 깨닫는 것이 해탈

여러분은 어느 쪽이 옳다고 보십니까? 할머니가 이 할머니의 안목은 대단한 안목입니다. 일체의 어떤 자극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고목이나 목석입니다. 선은 목석이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견문각지(見聞覺知)의 모든 인식을 하면서도 견문각지의 차별상에 떨어지지 않는 지혜가 선이지, 그렇지 않다는 것은 거짓말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일체의 연꽃이 진흙탕에 피면서도 진흙탕에 물들지 않는 부처의 지혜가 선인 것이지, 생명이 죽는 상태가 선이 아니란 것입니다.

그래서 『육조단경』에서도 “여러가지 생각을 하지 않고, 망념을 끊어버리려고 하지 말아라. 그것은 법에 속박된 것이며, 한족에만 치우쳐진 편견이라”고 설법하고 있습니다.


‘깨달음 상’에 빠지지 말아야

참선 수행은 번뇌 망념과 인식의 세계를 없앤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서 깨달음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인식의 세계가 없으면 우리는 구체적인 깨달음 지혜를 전개하는 방향과 방법을 실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식을 소화시켜서 지혜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이와 같이 지식을 지혜로 만드는 힘이 바로 선입니다. 깨달음의 지혜작용을 통해 불법의 지식을 지식의 한계를 지혜로 만드는 자신의 능력을 만드는 것이 선입니다. 일체 망념에 물들지 않고 불성의 지혜를 펼치는 것이 선입니다. 지혜가 없는 사람이 어떻게 지혜로 생활할 수 있겠습니다.

한소식이라는 ‘깨달음의 상’에 빠지지 말고 경전 어록을 통해서 체계적으로 공부하십시오.
깨달음으로 귀결되면 우리는 어떤 장소에 있던지 어떤 사람을 만나던지 걸리는게 없습니다. 이런 무애자재한 해탈의 경지에 이르도록 열심히 수행하십시오.


정리=탁효정 기자 takhj@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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