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⑮ 카오창고성(高昌古城)과 후오이엔산(火焰山)

기자명 이재형

모래가 된 영화여, 화염이 된 구법열이여

<사진설명>소설 서유기에 나오는 불타는 산, 후오이엔산. 산줄기가 위로 솟구치는 불길 같다.

둔황의 아침이 뿌옇게 밝아온다. 오늘 달려야 할 거리는 약 900km. 이른 새벽부터 서둘러 출발했다. 숙소 앞에는 두 마리 개가 이리 저리 뛰놀고 있다. 우리나라의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둔황. 이곳은 불교미술에서 뿐 아니라 역경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800여 년전 지참, 구마라집, 현장과 더불어 중국 4대 역경가의 한 사람인 축법호(竺法護)는 둔황에서 태어났다. 8세 때 출가해 불법을 전하겠다는 뜻을 세운 그는 스승을 따라 서역 각지를 유람하며 불교를 배우고, 또 수많은 경전을 수집해 고향 둔황으로 돌아왔다. 당시 서역의 36개국 언어에 능통했다고 하니 가히 ‘어학의 천재’라 할만하다. 그는 일생동안 오직 역경작업에만 매달렸다. 경전의 한문 번역을 필생의 원으로 세웠던 까닭이다. 중생은 업력으로 살고 보살은 원력으로 산다고 했던가. 그렇게 40여 년의 세월 동안 번역한 경전이 150여 부에 이른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당시 둔황의 사람들도 그를 지극히 아껴 좬축법호전좭에는 사람들이 그를 ‘둔황의 보살’로 일컬었다고 전해진다.


고요한 그곳에 별들이 속삭이다

축법호의 고향 둔황이 조금씩 멀어진다. 대신 드넓은 사막이 시커먼 입을 벌리고 누워있다.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의 땅 타클라마칸에 들어선 것이다. 모래바람이 몹시 거세다. 현장 스님은 이 사막을 건너며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인적은 물론 하늘을 나는 새조차 없다. 밤에는 요괴의 불빛이 별처럼 번쩍이고 낮에는 모래바람이 소나기처럼 퍼붓는다. 5일째 물 한 방울 마시지 못했다. 이제 심한 갈증 때문에 서 있기조차 힘들다”고 적고 있다. 그 힘겨운 길을 자동차라는 문명의 이기에 몸을 싣고 내달리고 있는 것이다. 관세음보살을 염하며 납보다 무거운 걸음을 옮겼을 옛 사람을 떠올리니 죄스러움이 고개를 든다.

<사진설명>눈물로 현장법사를 배웅하던 카오창국 왕의 궁성은 이제 그 잔해만이 남아 있다.

길은 서역으로 뻗어있고 그 길은 달려도 달려도 끝이 없다. 제 몸뚱이의 몇 배를 실은 위태위태한 화물차들만 간혹 모습을 드러낸다. 얼마나 달렸을까. 멀리 거무튀튀한 산들이 환영처럼 나타나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다가 돌연 마을이 나타난다. 예전에는 이오(伊吾)라고 불렸던 오아시스 도시 하미다. 도로 주변에 과일가게들이 뱀처럼 늘어서 있다. 1호차에서 이 지역의 특산물 하미과를 몇 개 사 맛보라고 나눠준다. 명나라 황제 영락제가 가장 좋아했던 바로 그 하미과다. 수박 같기도 하고 호박 같기도 하지만 맛은 오히려 참외를 닮았다.

그렇게 또다시 몇 시간을 달려서 마침내 투르판에 접어들었다. 카오창(高昌)이라고 중국 역사서에 기록된 이곳은 사방이 1000미터 이상의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다.

해수면보다 150미터 가량 낮다. 그래서 인지 투르판이라는 이름도 ‘파인 땅’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텐산산맥으로 무려 3000킬로미터에 지하도랑 ‘카레즈’를 파 식수를 해결하고 있다고 한다. 계절이 여름을 비껴간 지 이미 오래건만 그 ‘가마솥 더위’명성답게 후텁지근하다. 여름에는 평균기온이 40도를 웃돌고 지열은 70~80도를 오르내린다니 지금의 30여 도 기온은 이곳 사람들에게 춥게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다. 1호차에서 곧 화염산(火焰山)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사진설명>포도 건조실을 개조해 관광객들이 차를 마실 수 있도록 만든 공간.

소설 『서유기』에 나오는 그 불타는 산이 실제로는 어떻게 생겼을까. 가까워질수록 호기심은 커진다. 사실 서유기는 중국여행 내내 봐왔다. 밤에 숙소에서 텔레비전을 켜 놓으면 어느 방송에선가는 꼭 서유기를 방영했던 것이다. 특히 며칠 전에는 후오이엔산에 사는 요괴가 불로 삼장법사의 길을 방해하자 관세음보살의 도움을 받은 삼장법사가 손오공을 시켜 파초선을 빌려오도록 해 이 거대한 불길을 제압한다는 부분이 방영됐다. 조잡한 분장에 과도한 연기가 별 실감은 나지 않지만 그래도 이 후오이엔산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도로 오른쪽 편으로 손오공을 그려 놓은 간판이 보인다. 거기서 한 200미터 쯤 될까. 갑자기 난생 처음 보는 특이한 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어쩌면 산이 저렇게 생길 수 있을까. 산줄기가 꼭 위로 솟구치는 불길 같다. 모두들 이 광경에 넋이 나간 모습이다. 휴게소에 차를 대고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산을 배경으로 낙타를 타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고 우두커니 앉아 산을 바라보는 이도 있다.


세월의 무상함이 흙더미에 녹다

우리는 자연의 신비로움을 마음에 담은 채 다시 카오창고성으로 향했다. 고성은 그리 멀지 않았다. 약 30여 분 정도 달리니 계곡물이 흐르고 길가로 가로수가 무성하게 자라있다. 카오창고성이다. 이곳 유적은 둘레가 5킬로미터, 두께가 12미터 정도이며 현재 남아있는 성벽의 최고 높이는 11미터에 이른다. 표를 끊어 성안으로 들어갔다. 무너져 내린 흙더미들이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주고 있다. 궁성과 사찰로 보이는 터도 보인다. 이 곳의 전성기는 국씨 고창국이라고 일컬어졌던 5~7세기 초까지였다. 현장의 『대당서역기』와 그의 제자들이 쓴 『삼장법사전』에도 이곳은 자세히 언급돼 있다.

현장이 이곳을 찾은 것은 그의 나이 30세 때였다. 고비사막과 타클라마칸 사막을 거쳐 이 지역에 이른 현장을 카오창국 왕은 사신을 보내 모셔온다. 현장을 그리워하며 침식조차 잊고 기다렸다는 그는 현장을 붙잡는다. 종신토록 공양하면서 이 나라 사람들을 다 법사의 제자가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현장이 인도에 가서 경전을 구해 와야 한다고 말하며 극구 사양했지만 왕은 막무가내였다. 왕은 연일 법회를 열어 현장으로 하여금 법문을 하도록 했다. 현장은 단식에 들어갔다. 자신을 서역으로 보내주지 않으면 이곳에서 죽겠다는 거였다. 하루, 이틀, 삼일…. 현장은 물 한 방울 마시지 않았다. 몸은 말라가고 숨은 점차 가늘어졌다. 왕은 마침내 눈물을 흘리며 보내드리겠다고 약속했다. 그 대신 인도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서 3년간 자신과 백성들을 위해 법문을 해 줄 것을 부탁했다. 현장은 승낙했고 왕은 수많은 선물과 편지를 서역 각국에 보내 현장이 편히 갈 수 있도록 했다. 십수 년이 흐른 뒤 현장이 귀국할 때 인도의 대제왕이었던 계일왕이 배편으로 장안에 데려다주겠다는 것을 만류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현장은 수천미터의 험한 파미르고원을 넘어 이곳 카오창성에 다달았다. 그러나 그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카오창국은 역사속에서 사라진 뒤였다. 이곳에 서서 현장은 자신이 법문할 때면 등을 딛고 오르게 했던 신심 깊은 왕, 수십리 길을 눈물 흘리며 배웅했던 카오창국의 백성들을 떠올렸으리라.

<사진설명>드넓은 사막이 검붉은 입을 벌리고 누워있다. 그 옛날 구법승들이 목숨을 걸고 건넜을 그 길을 우리는 자동차라는 문명의 이기에 몸을 싣고 내달렸다.

우리가 늦게 도착한 탓인지 고성 뒤로 주홍빛 노을이 진다. 현장과 왕, 그리고 한 줌 모래로 화했을 수많은 옛 사람들의 맑은 눈이 영상처럼 스쳐간다. 삶이 무엇일까. 아련한 슬픔에 괜시리 목이 메어온다.


글·사진=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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