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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서암 스님 (1917∼2003)

기자명 권오영

한국불교 중흥 이끈 선지식

2003년 3월 29일 입적

“서암 스님은 조계종의 종지를 선양하신 수행자요 지도자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불교의 중흥을 위해 일관된 신념으로 몸소 실천 궁행하신 정신적 지주였다”

지난 3월 17일 서암 스님 열반 1주년을 맞아 문경 봉암사에 건립된 ‘서암 대종사비’에 가산불교문화연구원 원장 지관 스님은 서암 스님의 열반을 애도하며 이 같은 비문을 남겼다.

서암 스님은 조계종 총무원장과 종정 등을 거치며 종단에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했으며 평생을 청빈한 수행자로서 무소유를 실천한 현대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선지식으로 추앙 받는 인물이다.

1917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스님은 1932년 경북 예천 서악사에서 화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37년 문경 김용사에서 당대 최고의 선사로 추앙 받던 금오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와 보살계를 수지했다.

특별선원 제정 선풍 진작

38년 김용사 불교전문강원 대교과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길에 올랐던 스님은 폐결핵말기라는 진단을 받고 학업을 중단하고 다시 귀국하는 시련을 겪게 된다. 사형 선고와도 같았던 병명에도 불구하고 스님은 구도에 대한 열정을 꺾지 않았다. 스님은 ‘죽음만을 기다리며 사는 것은 헛되다’며 ‘이제부터 생사의 근본 도리를 놓치지 않으리라’는 발원을 세우고 다시 김용사로 돌아와 수행정진을 거듭했다. 이후 계룡산 나한굴, 도봉산 망월사, 하동 칠불암 등을 찾으며 오후불식·장좌불와 용맹정진을 거듭했다.

조계종 8대 종정 역임

이후 스님은 종단이 내홍으로 심한 혼란을 겪던 75년 종도들의 뜻에 따라 조계종 제 10대 총무원장으로 추대됐으나 ‘수행 납자의 본분사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리고 취임 후 2개월만에 조계사를 빠져나왔다.

79년 봉암선원 조실로 추대된 스님은 종단 중흥의 핵심이 수행가풍을 진작시키는 것에 있다는 발원으로 봉암선원을 조계종 특별종립선원으로 지정하고 전국의 납자 100여 명이 결제에 들 수 있도록 대대적인 불사를 진행했다.

<사진설명>서암 스님은 평소 붓을 들어 가르침을 전했다.

93년 조계종 제 8대 종정으로 추대되기도 했던 서암 스님은 평생을 수행자로서 본분을 지키며 때로는 콘테이너 속에서 때로는 다리 밑에서 하늘을 이불 삼아 땅을 깔개 삼아 수행 하면서 청빈한 삶을 몸소 실천했다.

2003년 3월 29일 “그저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떠났다”는 말을 남긴 채 스님은 세수 87세로 입적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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