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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우루무치와 톈산천지(天山天池)

기자명 이재형

天山, 억겁의 침묵으로 무상 법을 설하다

카오창고성을 빠져나올 무렵에는 이미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우리는 길을 서둘렀다. 우루무치까지는 아직도 200여 킬로미터를 더 가야한다. 어스름한 창밖으로 검붉은 사막이 펼쳐져 있다. 이곳 타클라마칸의 흙빛은 고비 사막의 그것보다 훨씬 짙다. 날이 지고 있는 탓도 있지만 풍부한 광물자원 때문이다. 사실 위구르족의 자치구인 신장(新疆)은 실크로드의 요충지일 뿐 아니라 100억 톤의 석유와 석탄을 비롯해 엄청난 광물자원이 묻혀있는 중국의 보물창고다. 이런 까닭에 여기저기서 유전개발을 하는 모습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사진설명>하얀 솜사탕 같은 만년설을 머리에 인 톈산 보고타봉, 그 아래 자리 잡은 천지는 주변의 푸른 수목들과 어울려 기막힌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이국에서 듣는 ‘나그네 설움’

어둠이 한 줌 남은 볕마저 거두어 들였다. 차들이 깊은 심연으로 빨려들고 있는 듯 하다. 새벽부터 계속된 질주로 모두들 피곤한 기색이다. 밤 9시나 되서야 저녁 식사를 위해 휴게소에 들렸다. 식당은 상당히 커보였지만 늦은 시간 탓인지 장거리 운전자 몇 명만 눈에 띈다. 요리도 그런대로 푸짐하고 맛도 괜찮다. 허겁지겁 모두들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있다. 그 때다. 어디서 익숙한 음악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사진설명>화려한 우루무치 야경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지나 온 자국마다 눈물 고였다…’

‘나그네 설움’이다. 이역만리에서 듣는 귀에 익은 음악. 반평생 타향에서 떠도는 슬픔을 표현한 가사 내용과는 달리 우린 그저 오랠 것도 없는 여행이다. 그러나 낯선 땅 예기치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노래가 여행자들을 깊은 향수에 젖게 하는 걸까. 이제는 제법 옹알거릴 어린 딸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밤공기가 쌀쌀하다. 하얀 눈을 치켜 뜬 차는 다시 깊은 어둠을 헤치며 나아간다. 우리는 예불을 시작했다. 삼귀의, 천수경, 축원문을 끝내자 선방 스님이 자칭 ‘풋중 시절’들었다는 제선 스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일제 말기 어떤 사람이 일본 유학을 가게 됐는데 개를 끔찍이 아껴 데리고 갔다. 그러나 방 문제로 개를 떼놓을 수밖에 없었고, 떨어지기 두려워하는 개를 먼 곳에 버린 뒤에야 하숙을 할 수 있었다. 죄책감도 잠시, 세월이 흘러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아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렇게 여러 해가 흘러간 어느 날 눈에 넣어도 아플 것 같지 않던 멀쩡한 아들이 갑자기 죽었다. 그는 충격을 감당할 수 없었고 집도 직장도 버린 채 전국각지를 떠돌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금강산에서 한 스님을 만나 100일간 잠을 안자고 지장보살을 부르면 아이를 볼 수 있다는 말에 기도를 시작했다.

그러나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것 같았지만 이틀 밤도 새우기 어려웠다. 그는 무진 애를 쓰며 하루하루를 기도로 보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러 100일째 되는 밤 그는 꿈 속에서 그토록 보고 싶던 아들을 만났다. 그는 소리를 질러 아이를 불렀다. 하지만 아이는 반가워하기는커녕 냉정히 쏘아볼 뿐이었다. 그리고 아이가 뒤돌아서는데 갑자기 개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십수년 전 일본에서 버렸던 그 개였다. 순간 그는 자신의 업장이 수미산 같음을 깨달았고 출가를 결행했다. 제선이라는 법명을 받은 스님은 이후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근 채 안에서 몇 년이고 깨칠 때까지 정진한다는 무문관에 들어갔다. 그렇게 6년, 무문관을 나온 스님은 하산해 지금은 어느 강가에서 뱃사공을 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사진설명>조깅을 하는 젊은이들. 염색한 머리색이 이채롭다.

법문이 끝나고 반야심경을 봉독할 무렵 불쑥 야광주 같은 거대한 도시가 보였다. 우루무치다. 끝이 없을 것 같던 모래밭위에 신기루처럼 몸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우루무치는 위구르어로 ‘광대한 초원’을 뜻한다. 그런만큼 과거 실크로드를 따라 동서양을 오가던 카라반과 구도승들의 오아시스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 곳은 90년대 초반까지도 위구르, 몽골, 카자크족 등 소수민족이 뒤섞여 사는 볼품없는 변경도시였다. 그런데 불과 10년 만에 물류의 거점도시로, 국제공항을 갖춘 국제도시로 탈바꿈 한 것이다.


인구 백만의 국제도시로 급성장

늦은 시간이어서 그런지 거리는 한산하다. 비틀거리는 취객들이 간혹 보일 뿐이다. 꽤나 커 보이는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피곤이 혈관 구석구석까지 배어있는 듯하다. 내일 점심때께 톈산천지(天山天池)로 출발한다니 실컷 잠을 즐겨도 될 것 같다. 창밖으로는 우루무치의 화려한 야경이 불꽃처럼 펼쳐져 있다.

습관 때문인지 일찍 눈이 떠졌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1층에는 페스트 푸드(Fast Food)를 중국식으로 응용(?)한 ‘베스트 푸드(Best Food)’가 눈에 들어왔다. 어느 회사 직원들인지 단체로 조깅하는 젊은이들도 보인다. 머리에 하얗고 노란 물을 들인 이들도 있다. 이곳 노인들도 저런 젊은이들을 보며 혀를 찰까. 어느 도시나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처럼 이곳도 큰 차이는 없다. 수십 층이 넘는 빌딩들과 대규모 전자상가, 유흥장과 술집들이 곳곳에 들어차 있다. 거기에 노숙인과 걸인들까지도…. 지난 1996년 통계에 따르면 신장자치구의 인구는 1605만명이고 49개 민족으로 구성돼 있다. 이중 위구르족이 46%인 748만명이고, 한족은 38.4%인 616만명이다. 그러나 이곳 우루무치는 3분의 2 이상이 한족이라고 한다. 정부의 적극적인 한족 이주정책 영향이겠지만 어쨌든 화려한 도시의 주인이 변방인이 아니란 점은 분명하다. 1949년 신장이 중국의 종속국으로 전락한 이후 90년대 중반까지 계속됐던 위구르족의 치열한 독립운동도 어쩌면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듯싶다.

톈산천지는 우루무치에서 동북쪽으로 110km 떨어진 곳으로 텐산산맥의 두 번째 높은 5445미터의 보고타(博格達)봉 아래 위치하고 있다. 점심을 먹은 후 우리는 그곳으로 향했다. 사막을 가로질러 톈산의 입구에 도착하니 밑둥 굵은 호양나무들이 서있고 그 사이로 맑은 계곡물이 굽이치며 흐르고 있다. 지난 3000여 년 동안 이 지역에서 그토록 많은 전쟁이 있었던 것도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중요성뿐 아니라 초원이 주는 풍요로움 때문이었다. 당나라의 시선(詩仙) 이백의 ‘한하곡(寒下曲)’은 그 당시 군인들의 힘겨운 상황을 잘 보여준다.

<사진설명>천지에서 만난 카자크 아이들, 사진을 찍으려면 돈을 내야 한단다.

‘5월 천산에는 만년설 뒤덮였건만/ 한파만 거셀 뿐 꽃 한송이 없어라./ 애달픈 절양류에 피리소리 들리건만/ 화사한 봄기운은 찾아볼 길 없구나./ 쇠북소리 따라 새벽에도 싸워야하니/ 깊은 밤에도 말안장 껴안고 자는구나/ 어서 빨리 허리의 이 칼 끄집어 내/ 곧바로 누란의 오랑캐 쳐부수었으면’


소수민족들의 영원한 성지 톈산

톈산은 한족 뿐 아니라 이곳에 뿌리를 내린 모든 민족들에게는 영산(靈山)이었다. 흉노는 이 산이 하늘과 같다 하여 톈산(天山)이라 이름하고 지나갈 때마다 말에서 내려 머리를 숙였다 한다.

천지로 오르는 길가에 카자크족들의 큼지막한 파오가 서있다. 한가로이 거닐고 있는 양들이 간혹 길을 막기도 한다.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따라 30여 분을 더 올라갔다. 천지 입구에는 가게들과 양 꼬치를 파는 노점상들이 즐비하다. 다시 그곳을 지나 5분 정도 더 올라가니 ‘하늘의 연못’ 천지가 마침내 나타난다. 흰 구름 같은 만년설을 머리에 인 보고타봉, 그 아래 자리 잡은 천지는 주변의 푸른 수목들과 어울려 기막힌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모두들 황홀한 경관에 넋이 나간 모습이다.

길이 3.4킬로미터, 수심 105미터의 천지는 그 신비한 분위기만큼이나 온갖 신화를 담고 있다. 특히 이곳은 민중신앙의 대상으로 온갖 질병의 신을 거느린다는 서왕모(西王母)가 사는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람의 형상이지만 표범의 꼬리, 호랑이 이빨에 봉발에 휘파람을 부는 전설의 여왕 서왕모. 그녀는 좬서유기좭에서 손오공이 훔쳐 먹은 불로장생의 천도복숭아 주인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 숱한 전설의 현장에 서 있는 것이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말을 타라며 쫓아온다. 간신이 거절하고 물가로 내려갔다. 카자크 고유복장을 한 아이들이 있기에 사진을 찍으려니 돈을 내기 전에는 안된다고 손사레를 친다. 아이들의 상술이 그리 미워보이지는 않는다.

넙적한 돌 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대자연이 주는 벅찬 감동이 이런 것일까. 수만, 수십만 년 전부터 있어 왔을 하얀 설산과 천지. 그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들려주는 침묵의 가르침은 무엇일까. 푸르디푸른 하늘에 하얀 솜사탕 같은 구름이 무심히 흘러가고 있다.


글·사진=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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