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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만 알면

기자명 법보신문
우물 속에서 하늘을 쳐다보면

하늘은 동그란 구멍에 불과해



봄이 오니 개나리, 목련, 벚꽃과 같은 봄꽃들이 하나 둘씩 세상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겨울의 어둡고 단조로운 색깔에 익숙해졌던 눈에 진노랑, 보랏빛이 나는 하양 그리고 연분홍의 꽃들이 들어오면서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뛴다. 이렇게 따스한 봄의 햇살을 받으면서 꽃나무 아래를 유유히 걷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신선(神仙)이라도 된 듯 몸도 마음도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다.

내 인생의 봄이라 할 수 있는 유년기에는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 많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에서 위인전을 읽고 독후감을 써 오라는 숙제가 있었다. 그땐 발명왕 에디슨을 참 좋아했는데 그 날 따라 독후감을 더 잘 써 보겠노라고 조금 색다르게 에디슨에게 직접 편지를 쓰는 양식으로 써서 제출했다. 그런데 담임 선생님께서 나의 독후감을 읽으시다가 갑자기 반이 떠나가도록 크게 웃는 것이었다.

한참을 웃은 후에 선생님께서 나를 불러 말씀하셨다. “미국 사람의 이름은 성(姓)이 이름 뒤에 온단다. 그리고 이름 전체가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딱 3글자로 돼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따라 세 글자보다 많을 수도 적을 수로 있단다.”

나는 그 때만 해도 에디슨의 성이 “에”씨이고 이름이 “디슨”인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독후감도 “만나고 싶은 디슨씨께”로 시작했던 것 같다.

이와 비슷한 사건은 초등학교 2학년때 또 일어났다. 미술 시간에 선생님께서 미래에 대한 상상화를 그려보라고 하셨다. 그림을 한참 그리던 중 내 옆 짝꿍의 그림을 보니 어찌된건지 사람의 머리 색깔을 노란색으로 그리는 것이었다. 달에서 우주기지를 만들어 사람들이 살고 있는 그림이란다. 달나라에는 외국 사람들도 같이 살기 때문에 그렇다는데 나는 그 친구에게 사람 머리가 어떻게 노란색일 수 있냐고 하며 크게 싸웠다. 그 때만 해도 금발 머리를 본 적이 없어서 그 친구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성인이 되어 외국에 나가 보니 내가 지금까지 알아온 견해나 믿음이 얼마나 편협되고 제한적이었는가를 느끼게 하는 일들이 종종 일어났다. 한국의 청명한 가을 하늘이 세계 최고라고 믿었었는데 미국 서부에 가서 보니 일년 중 4분의 3이 한국 가을하늘 색을 하고 있었다. 예전에 한 프랑스 사진작가가 한국의 대도시는 별로 아름답지 않다고 해서 기분이 상했는데 100년 이상된 건물을 잘 간직한 유럽의 도시들을 가보니 그 친구가 왜 그런 말을 했던가를 이해하게 되었다.

자기 자신 것만 알고 다른 사람의 것을 모르면 사실 자신 스스로의 모습도 제대로 모르는 것이다. 나의 모습이 남의 모습에 거울처럼 비추었을 때 본인의 특성이나 좋고 나쁨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있다 생각되면 말을 일단 아끼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일 것이다. 자신이 피력하는 견해가 본인의 무지만을 들어내는 경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항시 겸손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해서 들을 줄 알아야 되는 것이다.

혜민 스님 vocalizethis@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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