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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은 곧 부처님의 자비심을 말합니다”

기자명 탁효정

‘선시집’ 발간한 재불화가 방 혜 자 화백

“우리가 억만겁의 시간을 거쳐 인간이 되기까지, 우주가 처음 생겨날 때 만들어진 티끌이 지상에 이르기까지 많은 길을 거쳤습니다. 내 작품 속에는 우주와 내가 결국 하나였다는 그리고 비로소 이 공간에서 하나가 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추상화가 방혜자 화백의 작품에는 빛과 빛이 서로 소통한다. 그녀와 만난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와 작품, 그리고 주위 공간이 하나의 빛으로 관통함을 느낄 수 있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추상화가 방혜자 화백이 한국 고승들의 선시(禪詩)를 프랑스어로 번역한 시화집 『Les Mille Monts de Lune 천산월(天山月)』을 들고 한국을 방문했다. 경허, 만공, 휴정 등 한국 고승들의 주옥같은 시를 프랑스어로 번역하고 자신의 수묵화를 곁들인 것으로, 지난해 12월에 동양 문화를 소개하는 알뱅 미셸 출판사의 ‘서예와 시’ 시리즈 중 한 권으로 출간됐다. 프랑스에 한국 고승들의 선시가 소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작가로서 내 조국의 문화를 프랑스인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고민은 줄곧 저를 따라다니는 화두였습니다. 그들에게 한국 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불교, 그 중에서도 제가 늘 암송해온 옛 스님들의 선시들을 소개하리라 마음먹게 된 것입니다.”

경허·만공·휴정 스님 시 佛 번역

자신을 낳아준 나라 한국, 그리고 자신의 정신세계를 완성시킨 불교를 프랑스에 소개하는 일은 그녀의 오랜 소망이자 사명이었다. 유학시절부터 프로 작가로 자리 잡기까지 한국 고승들의 선시는 이국의 향수를 달래주는 휴식처였고, 그녀의 작품세계를 가로지르는 나침반이었다.

최근 10여년간 프랑스인들의 불교에 대한 관심은 가히 열풍이라 부를 정도로 커지고 있건만 그 대열에서 한국 불교는 항상 열외임을 안타까워해온 방 화백은 수년전부터 한국불교를 프랑스에 전하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프랑스의 저명한 시인 샤를 줄리에와 함께 ‘비밀스러운 기쁨’이라는 시화집을 낸 데 이어 2년전에는 경주 남산의 불교유적을 소개하는 윤경렬 선생의 책 『부처의 땅』을 프랑스어로 번역해 출간한 바 있다.

『Les Mille Monts de Lune』에는 방 화백의 추상화와 함께 그녀가 직접 도안한 한글 형상화가 함께 수록돼 있다. 선시에 담긴 의미를 한글로 도안하는 작업을 하면서 그녀는 한글에 담긴 또 하나의 의미를 발견했다.

“한글에서 가로획(ㅡ)는 하늘과 땅을 만들고, 세로획(ㅣ)은 하늘과 땅을 이어줍니다. 동그라미(ㅇ)는 우주, 그리고 시옷(ㅅ)은 인간을 의미합니다. 이들을 잇는 점(·)은 모든 것을 생성시키는 씨앗이죠.”

방 화백은 1년에 한 차례씩은 꼭 한국에 마련된 작업실과 사찰을 찾곤 한다. 그녀에게 한국은 더할 나위없는 영감과 평화를 가져다주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영은미술관 한 켠에 위치한 그녀의 작업실에는 미술가의 작업공간에서 흔하게 나는 페인트 냄새 대신 이름모를 풀향기가 은은하게 번지고 있었다. 그녀는 화학재료 대신 풀과 송진, 나무의 수액, 조개가루 등 자신이 직접 자연에서 채취한 재료로 색을 표현한다.

1년에 한번 고국방문해 작품활동

“내 그림을 만나는 사람들이 순수한 자연을 보고 느끼고 냄새맡을 수 있도록”하기 위해서이다. 그녀는 자신의 그림을 보는 사람들 모두 평화롭고 청정한 마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공해없고 자연에서 우러나오는 색만을 고수한다.

“불교가 추구하는 정신은 물론 실생활과 문화에 이르기까지 청정함을 담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의 원리 그 자체죠. 제 작품에서 밝고 건강한 자연 그대로의 세상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방혜자 화백의 그림에는 항상 빛과 생명, 우주가 소재로 등장한다.

<사진설명>재불화가 방혜자 화백. 그의 작품은 오는 5월 9일까지 경기도 광주에 있는 영은미술관에서 감상할 수 있다.

“내면의 빛과 외면의 빛이 만나 하나의 조화를 이루고, 이렇게 형상화된 또 하나의 빛은 우주의 빛 속에 스며듭니다. 이 빛은 결국 우주의 숨결이며 우리 내면에 담긴 자비심입니다.”
그녀의 그림 기법을 짤막하게 설명하자면 한지에 자연 재료로 색을 칠하고, 그 뒷면에 또다시 색을 칠한다. 앞면의 색과 뒷면의 색은 서로를 관통하며 하나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저는 이 기법을 제가 처음 개발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고려 불화에서 이미 이런 기법이 사용됐더군요. 이게 바로 배채식이라는거죠.”

그녀에게 그림은 마음 안으로 파고들어가 자아의 본성을 캐어가는 길이며, 끝없이 껍질을 벗고 생명 본래의 모습으로 귀의하는 수행이다. 결국 그녀의 그림으로 형상화되는 빛은 결국 우주와 대화하는 수단이며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에 존재하는 자비심의 표현인 것이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마음의 눈으로 사물의 본성을 투시하여 영혼의 깊은 곳에서 이루어지는 영상들을 형태와 색으로 현존하게 하는 일입니다. 우주만상의 본질적인 것, 원초적인 것을 포착하여 그 본래의 실상을 세상에 드러나게 하여 살아 숨쉬게 하는 생명활동이죠.”

“유럽에 한국불교 美 전할 터”

프랑스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한국 미술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방혜자 화백은 1937년 고양시 능동에서 태어나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1961년 프랑스로 건너갔다. 40여년간 프랑스에서 활동하면서 그녀는 동양인 특유의 여백과 빛의 감각으로 프랑스인들의 시각을 사로잡았다. 그녀의 작품 ‘빛의 숨결’은 5월 9일까지 경기도 광주 영은미술관에서 전시된다.

광주=탁효정 기자 takhj@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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