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5]

기자명 법보신문
내 몸에 다른 사람 살을 붙였으니

이 몸은 내 몸인가 남의 몸인가

어떤 사내가 길을 걷다 낡은 오두막을 발견하였습니다.
‘오늘 밤은 여기서 묵자.’
들어서기가 바쁘게 뜻밖에도 귀신 하나가 뒤따라 들어섰습니다. 사내는 몸을 숨겼지요. 귀신은 금방 죽은 듯한 시체 하나를 어깨에 짊어지고 와서 집안에 있던 침상 위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러자 또 다른 귀신이 좇아 들어와서는 그 시체를 내놓으라며 소리쳤습니다.
둘 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 자기 것이라고 우겼습니다. 그러자 먼저 온 귀신이 제안하였습니다.

“이렇게 싸우기만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증인을 세워 결판을 내자.”
뒤에 온 귀신도 찬성하고는 몸을 숨기고 있던 사내를 끌어내었습니다.
“너는 처음부터 다 보고 있었지? 말해봐라. 이 시체를 누가 가져왔는지….”
사내는 난감하기 이를 데가 없었습니다.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주면 다른 편 귀신의 미움을 살 것이고 그리되면 제 목숨을 가져가려 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에라,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목숨이면 사실대로 말이나 하자.’
사내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저 분이 가지고 온 것”이라며 먼저 들어온 귀신을 가리켰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일은 벌어졌습니다. 시체를 빼앗기게 된 나중 귀신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사내의 손을 비틀어 뽑아버렸습니다. 순식간에 손이 달아난 사내…. 이 모습을 본 먼저 귀신이 시체의 손을 뽑아서 사내에게 붙여주었습니다. 그러자 더욱 화가 난 나중 귀신이 다리를 뽑았습니다. 먼저 귀신이 사내가 아파할 틈도 없이 시체의 다리를 뽑아서 사내에게 붙여주었습니다. 그러자 나중 귀신은 사내의 몸통을 뽑고 머리까지 뽑아버렸습니다. 먼저 귀신은 사내의 사지가 뽑혀나갈 때마다 시체에게서 같은 부분을 떼어내 붙여주었습니다.

사내는 아프기도 하거니와 귀신들의 조화에 얼이 나가 멍하니 보고 있을 수밖에는 없었지요. 그러다 두 귀신은 문득 싸움을 그치더니 주변에 흩어진 손발들을 먹고 배를 채운 뒤에 홀연히 사라져버렸습니다.

정신없이 싸우고 정신없이 먹어치운 뒤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귀신들…. 늦은 밤 외딴 오두막에서 벌어진 이 난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그제서야 사내는 천천히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저는 ‘자신의 몸’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십시오. 그 몸이 ‘사내의 몸’입니까? 부모에게서 받은 손과 발, 몸통과 머리입니까? 아니라구요? 그럼 ‘시체의 몸’입니까? 하지만 생각은 지금 사내가 하고 있지 않습니까? 도대체 나는 나인 것일까요, 내가 아닌 것일까요?

우리 사는 모습이 꼭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나야, 이건 내 것이야…라고 하면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사람들은 ‘나’와 ‘나의 것’을 확실히 점찍어두고 지키려고 애쓰고 더 좋고 튼튼하게 만들려고 안달입니다.

지금 당신의 몸은 당신의 것입니까? 당신의 것이라면 그 몸은 당신의 마음먹은 대로 다 된다는 이야기입니까? ‘병들지 말아야지…’라고 마음먹으면 당신의 몸은 병이 들지 않습니까?
태어나서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늦은 밤 낡은 오두막 속에서 한바탕 벌어진 귀신들의 조화 같은 이 세상에서 자신도 정신없이 휩쓸리다가 때가 되면 모든 것 그냥 다 내버려두고 업장 따라 떠나는 인간이 바로 ‘나’라는 말씀입니다. 사내에게 아주 멋진 화두를 안겨준 귀신들이 관세음보살임에 틀림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좥보문품좦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 용 야차 건달바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 마후라가 사람인 듯 아닌 듯한 것 등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모두 그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며, 집금강신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곧 집금강신을 나타내어 설법하나니…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lmrcitta@hanmail.net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