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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불수행을 하게 된 까닭

기자명 법보신문
  • 사설
  • 입력 2004.04.06 18:00
  • 댓글 0
시한부 선고 받고 임종 위해 산사 찾아

일심으로 관음사불…병도 갈수록 호전


지난 80년 1월 정권교체의 혼란한 회오리는 최루탄의 매운 가루를 뿌려 대고 선량한 시민들이 피눈물을 흘릴 때 20대 후반의 젊은이였던 나는 들 것에 실려 눈 덮인 태백산의 보림사로 향하고 있었다. 해질 녘 태백산의 시린 바람 속에서 겹겹이 덮인 이불 안에 웅크리고 있던 나의 희미한 의식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힘겨운 숨소리만 간혹 알아차릴 수 있었을 뿐이었다.

편안히 임종을 맞이하기 위해 찾은 보림사에서 부처님과의 첫 대면은 나의 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특히 법당 안의 화려한 관음보살 탱화는 아직도 눈에 선명할 정도로 깊이 각인돼 있다.

숱한 부처님이 조성된 법당 안에서 유독 그 관음보살님이 나를 전율시킬 수 있었던 것은 퇴원하기 전날 새벽 꾸었던 꿈 때문이었다. 밤새 머리를 쥐어짜는 고통에 시달리다 새벽녘 간신히 잠이 들었는데 비몽사몽간에 쇠창살 틈으로 서서히 밝은 빛이 바람과 같이 찾아드는 것이 아닌가. 나는 다른 중환자들이 행여 바람에 감기라도 걸릴까 하여 힘을 다해 창을 닫고자 일어서는데 그 강한 빛 속에 오색의 영롱한 구슬로 치장한 여인이 너무도 가까이 다가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나는 관음보살 앞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그저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그 여인을 바로 이곳 법당에서 만나게 됐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고통 속에도 나는 어머니의 도움을 받으며 날마다 관음전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점차 눈빛을 나누게 되고 나중에는 대화도 나누었다. 나는 눈물로 관음보살님께 나의 모든 고통과 젊음의 불안한 심상을 남김없이 보이고 드러냈다. 비록 고통은 크게 줄지 않았지만 내게 절집의 생활은 역한 소독 내 없는 세상이었고 주사바늘 없는 평화로운 곳이었다.

어느새 절을 찾은 지도 9개월이 넘어가고 있었다. 이미 의사가 내게 선고했던 마지막 계절을 넘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났다. 꼼짝 못하던 내가 법당에서 혼자 일어났을 뿐 아니라 천천히 혼자서도 걸어 그림 속 자비로운 여인을 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를 지켜본 어머니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작은 암자에서 총무보살을 할 정도로 신심이 남다른 내 어머니. 병이 눈에 띄게 좋아지기 시작하자 어머니는 산을 내려가셨다. 문밖에서 “관세음보살님이 널 꼭 지켜주실거야, 걱정하지마라”는 말만을 남긴 채…. 아픈 아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시지 않으려는 어머니의 깊은 배려였으리라.

혼자 기다시피 관음전을 찾을 무렵 나는 내게 도움을 주시던 지연 노스님께 간곡한 청을 드렸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관음전에 혼자 갈 수 없으니 제 처소에 관음보살도를 모실 수 있도록 해달라는 거였다. 노스님은 다음날 바로 붓이며 종이며 간단한 책까지 모두를 준비해 주셨다.

돌이켜 생각하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사불수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나는 관음전을 찾을 때를 제외하고는 모든 시간을 관세음보살님을 그리는데 몰두했다. 그것이 조금씩 고통을 줄여 주니 내가 죽는 날까지 이렇게 그리다가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병은 다시 악화되지 않고 오히려 몸이 가벼워졌다. 뿐만 아니라 그토록 먹기 힘들었던 음식물도 하나하나 먹고 소화할 수 있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사불을 하며 내가 꿈에 보았던 그 모습인지 살피고 또 살피며 그 동안의 잘못과 나의 오만도 덜어 놓았고 나의 고통도 그 날 그 날 어디가 어떻게 몇 분 동안 아팠는지 마음을 열고 털어놓기를 반복했다.

내게 있어서는 그것이 수행인지 기도인지 부처님을 가까이하는 일인지도 모른 채 태백산 산사의 계절은 새봄을 맞이하였다. 나는 일년 6개월만에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건강을 찾았고 그 해 오랜 항암 치료로 자를 것도 없는 민머리를 깎고 정식 출가를 했다. 그리고 티베트나 일본처럼 사불수행을 체계화할 것을 서원했다. 부처를 그리는 수행은 자신을 찾는 일이며 이미 모두가 내재한 불성을 확인하고 증명 받는 수행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서울 공덕사 주지 법인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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