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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솔숲 바람에 번뇌를 씻고

기자명 이재형

팔공산 양진암


<사진설명>팔공산 자락에 자리한 고아한 자태의 양진암.

막바지 벚꽃이 눈꽃처럼 휘날리는 동화사 길을 따라 오르니 소나무 빽빽이 늘어선 오솔길이 나타난다. 다시 계곡을 끼고 뻗어 있는 산길을 후여후여 올랐다. 15분 쯤 됐을까.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 무렵 돌연 시야가 툭 터지며 고아한 자태의 도량이 모습을 드러낸다. 양진암(養眞庵)이다. 멀리 거대한 바위들과 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이 곳은 마치 팔공산이 둥지가 되어 곱게 품고 있는 알 같은 형상이다.

천혜의 비구니 도량

동화사 산내 암자로 팔공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양진암에 들어서면 처음 맞는 것이 큼지막한 비석에 세운 ‘중창 유공비’다.

“양진공부(養眞工夫)하고 나면 양진암이 어디던가. 너와 내가 둘이 아니리니. 그것이 참다운 양진공덕(養眞功德)이리라.”
유공비의 말처럼 양진암은 무상의 대도를 깨우치고 나면 온갖 만물과 둘이 아니라는 것, 또 참(眞)사람을 길러내는(養) 도량이라는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양진암은 1743년 무주(無住) 대사가 창건한 암자로 1898년 춘파 스님이 중창했다. 그 후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쇠락해가던 암자를 오늘날 비구니 수행의 요람으로 중창한 분이 바로 성련(性蓮) 스님이다. 14세에 해인사 약수암으로 출가해 참선 납자의 길을 걷던 스님은 1958년 이 곳으로 자리를 옮겨 수행에 매진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치열하게 정진한다는 소문이 햇살처럼 퍼져가고 참선 수행에 뜻을 둔 비구니 수좌 스님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그러면서 성련 스님은 수행자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선방 좌복 대신 거리 탁발을 택했다. 먹거리가 풍족하지 못했던 시절, 불자들의 공양만으로 절살림을 꾸려나가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새벽예불을 마치고 대구시내까지 몇 시간을 걸어 나가 하루 종일 탁발을 하고 돌아오면 별도 잠든 한밤. 잠깐 눈을 붙이고 다시 길을 나서야 하는 생활을 수년간 반복해야 했다.

그런 성련 스님의 노력에 힘입어 1978년 미소실을 시작으로 양진암 선원, 법보전 등 잇따라 들어섰다. 특히 지난 2000년에는 재가불자들이 수행과 신행생활을 할 수 있는 현대식 사원건축인 육화당과 관음전 불사를 마쳤다. 지금 현재 양진암은 총면적 2500여 평에 크고 작은 건물 7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람은 선원을 중심으로 ㄷ자형으로 이뤄져 있고, 선원 앞마당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5층 석탑이 신장처럼 서있다. 명실상부한 비구니 참선도량으로서의 사격을 갖춘 것이다.
<사진설명>양진암은 비구니 스님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찾아 수행하고 싶은 도량으로 손꼽힌다.

향곡 선사도 찾아 제접

여기에 무위진인으로 유명한 향곡 선사가 60~70년대 이곳을 자주 찾아 비구니 스님들을 독력하고 제접했던 것도 양진암의 수행가풍을 형성하는데 크게 일조했다. 지금도 결제 때면 동화사에서 향곡 스님의 제자이자 동화사 조실인 진제 스님의 상당법문을 듣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양진암은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던 시절부터 수행도량으로서의 역할을 해 왔던 까닭에 오늘날 제방 운수납자들 중 이 곳을 거치지 않은 비구니 수좌가 없을 정도로 그 유서가 깊다. 또 지금도 여전히 결제 희망자를 받을 때면 불과 30분 만에 신청이 마감되는 인기 선원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렇듯 많은 비구니 스님들이 양진암을 선호하는 것은 이 곳의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 때문이다. 스님들이 수행하는 선원은 일반 불자들이 찾는 관음전보다 훨씬 위쪽에 자리 잡고 있어 간혹 울어대는 산새나 솔숲을 지나가는 바람소리를 제외하면 적막하리만큼 조용하고 평화롭다. 여기에 산 아래 전경을 한 눈에 굽어볼 수 있는 탁월한 전망과 수좌들이 기도하고 발우공양 할 수 있는 법당이 따로 마련돼 있는 등 수행자들만의 공간이 확보되는 것도 큰 장점으로 꼽히고 있다.

이런 외적인 조건과 함께 수좌 스님들의 마음을 끄는 게 또 있다면 이 곳만의 독특한 수행가풍을 들 수 있다. 양진암은 매년 결제 때면 여름에는 한 달, 겨울에는 일주일 씩 용맹정진하는 기간을 갖는다. 새벽 3시 30분부터 밤 10시나 11까지 쉼 없이 정진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벽 대신 서로를 마주보며 앉고 장군죽비를 돌아가며 잡는 ‘대좌정진(對坐精進)’은 수좌들이 한 순간의 호흡도 놓칠 수 없는 긴장 속에서 수행토록 한다.

여기에 노납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수행정진하는 성련 스님과 입승 법해 스님의 지도와 도감 정묵 스님의 정성어린 뒷바라지도 수좌 스님들의 발길이 이어지도록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대좌정진’ 수행 ‘눈길’

이밖에도 양진암은 기본선원으로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 2000년부터 사미니 스님들의 참선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이곳은 매년 봄·가을 실시되는 기본교육기간 때면 20명이 넘는 스님들이 동화사와 양진암을 오가며 용맹정진을 하고 있다.

한편 양진암은 오는 5월부터 오래된 선방의 내부를 보수하는 한편 퇴락하고 있는 정묵당(靜默堂)도 새롭게 개축할 계획이다. 따라서 올 하안거와 동안거 때 스님들이 이곳에서 정진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내년부터는 스님들이 더욱 좋은 환경 속에서 정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선방 스님들을 외호하면서도 정진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양진암 도감 정묵(正默) 스님은 “이곳을 찾는 비구니 수좌 스님들이 수행에만 전념할 수 있는 도량이 될 수 있도록 사중에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구=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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