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2 연재를 마치며

기자명 이재형

대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진 감동 12000km


<사진설명>실크로드는 무한한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특히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 곳의 대자연과 인간이 주는 감동과 여운은 대단히 크다.

여행은 힘과 사랑을
그대에게 돌려준다.
어디든 갈 곳이 없다면
마음의 길을 따라 걸어가 보라.
그 길은 빛이 쏟아지는 통로처럼
걸음마다 변화하는 세계.
그곳을 여행할 때
그대는 변화하리라.

잘랄루딘 루미의 ‘여행’



흐르지 않는 물은 곧바로 썩어버리듯 문화도 교류가 활발할 때 늘 새로워지고 풍성해진다. 실크로드는 지난 수천 년 간 문화와 문화를 이어주는 교량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이 길을 통해 로마, 중동, 인도, 중국, 한국의 문화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살찌워왔다. 인류문화의 대동맥으로 세계문화의 교량역할을 다해 온 실크로드가 없었다면 오늘날 동양은 물론 서구문화가 없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길은 황량한 사막과 수천미터의 파미르고원이 성난 거인처럼 버티고 있는 고난의 길이었고 눈물의 길이었으며 회한의 길이었다. 당시 문화교류의 선봉장이었던 구법승들도 이 길을 통해 서역을 오갔다. 물론 이 중에는 법현, 현장, 혜초 스님 등과 같이 이름을 남긴 이들도 있지만 사막의 모래바람이 된 수많은 순교자들의 넋이 어려 있기도 하다.

한중자동차문화교류협회가 실크로드 장정에 나선 것은 지난해 10월초였다. 한국의 자동차를 이용한 첫 탐사라는데 의미가 있었다. 다섯 명의 스님을 비롯해 일행들은 중국 웨이하이(爲海)를 시작으로 시안, 주취안, 둔황, 투루판, 우루무치의 톈산 천지까지 왕복 1만2000킬로미터의 길을 달렸다. 때로는 폭우 속을 질주했으며 산사태로 인해 한없이 먼 길을 돌아가야 할 때도 있었다. 새벽에 출발해 자정이 넘어 숙소에 도착한 적도 많았으며, 난폭한 차량과 불쑥불쑥 도로로 튀어나오는 소나 양떼들에 혼비백산했던 때도 한 두 번이 아니다. 물론 그 옛날 현장법사나 해동의 신라 사절들이 겪었을 죽음의 고행길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자동차 답사는 편리함에 길들여질대로 길들여진 우리에게 참으로 고된 여정으로 와 닿았다.

불교문화-구법승 숨결 곳곳에

하지만 우리는 그 길에서 수많은 만남을 이루었다. 중국 최고의 역경승 현장법사가 머물렀던 대자은사와 대안탑, 티베트불교의 수행체계를 확립했던 쫑카파 스님의 고향 타얼쓰(塔爾寺), 한 늙은 거사의 비원이 서려있는 법문사, 비련의 여인 을불황후가 있는 마이즈산(麥積山)석굴, 지상 최대의 미술관이자 사원인 둔황, 중국 유일의 여황제의 당당한 기상이 느껴지는 롱먼(龍門)석굴 등. 이들은 실크로드가 낳은 최대의 걸작품이며 오늘날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위안을 주고 있는 거룩한 성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유적보다도 더욱 인상적인 것은 그 길에서 만난 수많은 인연들이다. 아침에 양을 산으로 올려보내고 저녁때까지 양을 기다리고 있는 젊은이. 흰 수염 휘날리며 함께 실크로드를 달렸으면 좋겠다는 팔순의 노인, 오토바이를 타고 우루무치에서 시안까지 달리는 상인, 일당 1500원으로 하루종일 밍사산(鳴砂山)을 오르는 노총각, 술 한 잔 따르며 노래 부르던 설산의 몽골 여인들, 시닝에서 라싸까지 1800킬로미터를 삼보일배로 향하는 구도자들, 그리고 거리거리에 좌판을 깔고 물건을 파는 사람들까지 실크로드는 몽환의 이미지로서가 아니라 살아 숨쉬는 삶의 현장으로 와닿았다.

“호주에서 포교당을 운영하다보니 힘든 것이 많았어요.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참으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 옛날 구도자들이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땅을 죽음을 무릅쓰고 오갔습니다. 그에 비하면 지금 내가 하는 일은 힘든 것도 아니죠. 다시 원력을 세우고 포교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정오 스님)
“한 가정의 가장으로, 남편으로, 아버지로서의 생활에서 한 번쯤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생활에 갈수록 무기력만 더해 갔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때로는 그들의 삶의 무게에 마음 아파하기도 하고, 또 지나온 삶을 진지하게 돌아볼 수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동안 내가 했던 고민이 사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김제윤)
“이번 여행에서 정말 많은 부처님을 만날 수 있었어요. 이 때문에 환희심도 많이 느꼈지만 반대로 부서져 나간 수많은 불상들을 볼 때면 가슴이 아려왔습니다. 왜 문화재를 보존해야 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석재 스님)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 이번 실크로드 여행에 나선 것은 정말 모험이었습니다. 아마 내 남은 생애 중 이런 기회를 두 번 갖기 힘들 것 같아요. 그 먼 길을 절을 하며 가는 티베트 젊은이들에 대한 강한 인상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남은 삶을 나도 그 순례자들처럼 한 걸음 한 걸음 절을 한다는 생각으로 살려고 합니다.”(이정하)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운전할 때 양떼가 나타날까 걱정할 것 같아요. 또 이젠 텔레비전이 시시해 보여요. 그 광활하고 드넓은 사막을 봤더니…, 이번 여행을 통해 내게 너무나 필요했던 에너지를 충전한 느낌입니다.”(구자민)

실크로드는 여전히 삶의 현장

모두들 지칠대로 지쳤지만 표정만은 한결같이 밝다. 긴 여정을 마친 탓도 있지만 실크로드가 주는 긴 여운 때문인지도 모른다.우리 일행이 처음 중국땅을 디딜 때 한중자동차문화교류협회 현광민 회장은 “실크로드를 다녀오면 한국의 산하가 다시 보인다”고 했다.
정말 그랬다. 척박하디 척박한 땅, 그곳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사람들. 이들을 불행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어디서든 산과 물을 만날 수 있는 한국은 상대적으로 분명 축복의 땅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번 여행의 참가자들이 모두 공감하듯 실크로드는 무한한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그곳은 또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대자연과 인간이 주는 감동과 마주하기에 충분했다.
글·사진=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사진설명>식당이 없는 실크로드에서 컵라면은 필수품이다.


<사진설명>서왕모의 전설이 어려 있는 우루무치의 톈산천지


“10월에 2차 실크로드 순례 계획”

한중자동차문화교류협회 현광민 회장

“실크로드는 동과 서를 잇는 교역의 장이었고 불법을 전하던 구도의 길이었습니다. 이번 참가자들이 웨이하이에서 우루무치까지 1만2000km를 달리며 현장 스님이나 혜초 스님 등 그 옛날 스님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리라 믿습니다.”
한중자동차문화교류협회 현광민〈사진〉회장은 지난해 10월 7일부터 21일간 국내 최초로 한국의 자동차를 가지고 실크로드를 달리는 챌린지를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이번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그는 중국 정부의 협조를 얻어내고, 수차례 사전답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오는 10월 제2차 실크로드 챌린지를 개최하겠다는 현 회장은 “실크로드는 구도자들의 영원한 고향”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준 참가자와 스텝진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한다”고 말했다.
현 회장은 지난 92년 파리-모스크바-북경 랠리에 유일하게 참가해 27일간의 경기를 완주한 베테랑 레이서로, 실크로드를 계기로 불교와 깊은 인연을 맺기도 했다.
서왕모의 전설이 어려 있는 우루무치의 톈산천지.(옆)
식당이 없는 실크로드에서 컵라면은 필수품이다.(위)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