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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법회에 대중이 없다

기자명 법보신문
윤 청 광

방송작가






부처님의 가르침은 말씀으로 시작해서 말씀으로 이어졌고 말씀으로 마무리되었다. 녹야원에서 다섯비구를 상대로 펴신 초전법륜에서부터 시작된 부처님의 말씀은 죽림정사, 왕서성, 기원정사, 영축산을 비롯한 곳곳에서 장장 45년 동안이나 계속 이어졌고 쿠시나가라 쌍사라수 밑에서 마지막 설법으로 마무리되었다. 29세에 카필리성을 떠나 출가하여 6년 고행 끝에 35세에 까달음을 얻으신 이후 무려 45년 동안, 동가식 서가숙하시며 펴신 부처님의 말씀을 통한 가르침은 그대로 제자들에게 의해 암송되었고, 수차례의 결집(結集)을 통해 오늘까지 전해진 팔만사천의 경(經)이 되었다.

경을 보거나 기록을 살펴보면, 부처님은 길을 가시다가도 말씀을 통해 가르침을 내리셨다. 저 유명한 부처님의 가르침 ‘향을 싼 종이에서는 향내가 나고, 생선을 꿰었던 새끼줄에서는 생선비린내가 난다’는 교훈도 부처님은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시다가 아주 쉬운 말씀으로 누구나 알아듣기 쉽게 가르침을 주신 것이었다.

어디 그뿐이랴. 부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에게는 어린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쉬운 말씀으로 가르침을 펴셨고, 농부를 만나면 농부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평이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전했다. 그래서 이르기를 부처님은 의사가 병에 따라 처방을 내리듯이 만나는 사람의 근기에 따라 근기에 맞는 설법을 하셨다고 해서 ‘대기 설법’이라 하지 않는가.

부처님이 말씀을 통해 펼쳐주신 가르침을 모아 놓은 것이 팔만사천 경(經)이라 하겠는데 어느 경을 보아도 부처님께서 보통 사람들은 알아듣기 힘든 어려운 말로 가르침을 펴셨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지극히 평범한 말씀, 누구나 알아듣기 쉬운 말씀, 제대로 글을 배우지 않은 사람도 알아들을 수 있는 비유를 들어 부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만고불변의 자비와 지혜를 골고루 나누어 주셨다. 만일 부처님께서 어려운 말씀이나 문자로 최고의 고등교육을 받은 특수층이나 알아들을까 말까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펼쳤다면, 부처님의 말씀은 당대에서 아마도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쉬운 가르침이 중국의 글자인 한문(漢文)으로 번역되고, 그것을 그대로 우리가 얻어다 답습한 관계로 불교의 가르침은 도무지 그 뜻을 알 수 없는 어려운 것으로 되고 말았다.

그나마 한국불교역사에 근세에 와서 용성대선사, 운허대선사 같은 분이 불경의 한글화에 심혈을 기울이신 덕분에 이나마라도 부처님의 말씀을 우리 글로 접할 수 있게 되었으니 천만다행으로 여긴다. 그러나 지금도 알 수 없는 일이 있다. 대부분의 속가 불자들은 모두가 우리말로 삼귀의 사홍서원을 외우고 있는데, 어찌하여 사찰법요식에서 스님들은 아직도 한문으로 된 삼귀의 사홍서원을 고집하고 계신가? 그리고 참선수행을 하고있는 수좌들만을 위한 법회가 아닌 대중법회에서도 고승법회의 고승(高僧)들은 어찌하여 한문으로 된 알아듣기 힘든 말씀들만 계속하시는가?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는 말이 있지만 아직도 우리나라 불교법회, 그것도 속가불자나 일반인들을 위한 ‘대중법회’에는 대중성이 없는 유식하고 고답적이고 알아듣기 어려운 한자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한마디로 해서 ‘대중법회에 대중성이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최근 ‘백고좌법회’니 ‘고승초청 대중법회’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지만, 지상에 옮겨진 설법내용을 들여다보면 속인들이 앉아있는 자리와 고승의 말씀은 십만팔천리나 떨어져 있다.
수좌들을 위한 법회나 불교학자들을 위한 법회라면 몰라도, 일반대중을 위한 ‘대중법회’에서만은 누구라도 얼른 알아들을 수 있고, 누구라도 얼른 가르침을 내 것으로 삼을 수 있도록 쉬운 말씀과 쉬운 비유를 들어줄 수는 없으시는걸까?

금년 초파일 법회부터라도 대중을 위한 대중의 법회가 열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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