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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01 만해 축전상 당선 詩 감상 - 고로쇠 나무를 찾아서

기자명 법보신문
  • 교계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산이

사람을 품고 열어준 길-할아버지는 그 길을 따랐다.



할아버지는 산사람이 되었다. 철따라 심메마니가 되고, 약초꾼이 되고, 수액 채취꾼이 되어도 산이 나누어준 만큼만 가져온다는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주머니에서는 동전 부딪히는 소리 하나없이 바람 지나가는 소리만 들렸다. 여기저기에서 깨어난 봄이 제 소식을 바람에 실어보낼 즈음에 할아버지는 고로쇠 나무를 찾곤 했다. 나무는 세월을 먹고 자란다는 할아버지의 말처럼 할아버지 키만 하던 나무는 어느새 할아버지의 키를 훌쩍 넘기고 하늘과 닿아 있었다.

해가 더해지는 만큼 더해지는 수액의 무게에 그렇게 나무는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발끝까지 뽑아올린 수액에 고로쇠 나무의 심장 소리는 잦아들었다. 세월은 할아버지의 어깨에서 가족들의 무게를 털어내었고, 산 사람이던 할아버지를 땅으로 끌어내었다. 가루가 된 할아버지는 바람에게 이끌려 산으로 되돌아갔다. 강을 거슬러 오르던 힘찬 연어의 몸짓을 닮아있던 할아버지는 하늘에 닿아 별이 되었다.



지나가는 말처럼 흘리고 간 할아버지의 말을 주워담아 산에 오르는 길, 불빛하나 발 디딜 틈이 없는 산의 새카만 어둠은 하나씩 나를 지워가고 손톱 끝에까지 가득 들어찬다. 어둠을 비집고 들어와 내 손안에 있는 고뢰쇠나무를 비추는 할아버지를 닮은 별빛이 어둠이 감춰놓은 길을 열어준다. 비로소 길이 다시 열린다.



전남 보성여고 3년 신전향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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